작은 아이는 학교로 출발하기 전, 꼭 빠뜨리지 않고 하는 행동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애착 이불을 붙잡고 냄새를 맡는 것. 이불은 아기 겉싸개만 한 작고 얇은 이불이다.
흠흠,
킁킁.
아이는 옷을 입고 책가방까지 짊어지고 나면 마지막으로 소파나 침대 위에 널브러진 이불속으로 코를 파묻는다. 현관 앞에 서서 배웅해 주는 엄마, 아빠를 먼저 안아주거나, 양 볼에 뽀뽀를 해주는 일은 없다. 좋아하는 냄새를 맡는 것으로 새롭지만 낯선 하루를 여는 아이. 학교 생활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겨내려는 아이. 그 모습이 아직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이는 그 이불을 빨지도 못하게 한다. 이불을 빨면 자신이 좋아하는 특유의 냄새가 사라질까 봐서이다. 지저분하다고, 이불 좀 빨자고 하면 아이는 내 말에 질색하며 무조건 안된단다. 꼬질꼬질 때가 탄 이불이 내 눈에는 그저 냄새나는 이불이건만 아이에게만큼은 어떻게 그리 '향기 나는 물건'으로 거듭난 것일까.
"아, 이불 냄새 좋다!"
어느 날 밤에도 아이는 그 향기에 취해 감탄사를 내뱉었다. 나는 살짝 장난기가 발동해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 냄새가 좋아, 아니면 이불 냄새가 좋아?"
아이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은 듯 잠시 뜸을 들이며 말했다.
"음... 음... 엄마 냄새가 뭐야? 아, 맞다. 엄마 냄새!
생각났어!
근데 나는 이불 냄새가 조금 더 좋은 거 같아."
그럴 줄 알았다. 아이는 조금 미안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대답을 듣고선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떠오른 엄마 냄새란 어떤 냄새일까. 나는 향수도 뿌리지 않고 샤워할 때도 맹물로 씻는데. 그렇다면 샴푸 냄새나 옷에 배인 세제 냄새를 기억하는 것일까. 아니면 부엌에서 나는 밥 냄새나 특정 반찬의 냄새를 떠올리는 것일까. 나도 미처 정확히 알지 못하는 '나의 냄새'란 무얼까. 머릿속에 물음표가 크게 그려졌다.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향을 풍기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의 엄마를 떠올려본다. 다행스럽게도 내겐 오랜 시간 기억하고픈 엄마의 향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들기름에 구운 김이나 꽈리고추 멸치 볶음 같은 반찬 냄새다. 어릴 적 종종 간식으로 만들어주셨던 도넛 냄새도 내겐 엄마의 향기다.
가장 최근에 기억하는 엄마의 향은 봉숭아 꽃향이다.
지난해 여름, 친정집에서 머물던 날이었다. 북적대며 아침을 차려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챙기던 중이었다. 모두들 정신없는 와중에 엄마는 부엌 한쪽에 쪼그려 앉아 방망이로 무언가 찧고 계셨다. 엄마의 손 안에서 곱게 빻아지고 있던 것은 하얀 백반과 불긋한 봉숭아 꽃이었다. 마당 한 편에 펴있던 봉숭아 꽃을 손주들 손가락에 물들여주시려고 엄마는 하루 전날부터 잘 말려두셨던 것이다.
"어젯밤에 물들여준다는 걸... 그냥 잤네!
집에 가서 애들 손톱 위에 올려줘."
엄마는 한 숟가락도 안 되는, 봉숭아꽃 빻은 것을 작은 약통에 넣으시며 당부하듯 말씀하셨다.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봉숭아꽃이 들어있는 통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선명히 붉었던 꽃잎은 적갈색으로 변해있었고 형체를 알 수 없이 동그랗게 뭉쳐져 있었다. 이게 뭐라고, 바닥에 앉지도 못한 채 황급히 꽃을 찧던 엄마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짓이겨진 꽃에서 참 좋은 향이 났다. 그 향은 싱싱한 꽃에서 나는 향기 보다도 더욱 진하고 독특했다. 내가 미처 다 보지 못한 엄마의 시간이 그 향기 안에 뒤섞여 있는 듯했다. 친정집 마당에 봉숭아 꽃이 피기까지 주변 잡초를 골라내고, 누군가 담장 안으로 던져버린 담배꽁초를 줍고, 가문 날에는 호스로 물을 뿌렸을 엄마. 그런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봉숭아꽃 향. 나는 다시 약뚜껑을 닫아 그것을 냉장고 안에 감추어두었다. 그렇게 하면 한동안이라도 엄마의 향을 꺼내어 맡을 수 있을 거란 믿음으로. 아이 같은, 아니 다시 아이로 돌아간 행동이었다.
향기란 '좋은 냄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코로 맡는 어떤 향은 특정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함께 했던 시간과 장소까지 기억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니 향기는 시간의 갈피다. 수 천, 수만 겹으로 포개진 과거의 시간 속에서 향기는 어떤 애틋한 기억을 가장 빨리 찾게 만드는 갈피가 된다. 향기는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지만 누군가를 속일 수도 없는, 정직한 사랑의 무기다.
나는 어떤 향기로 아이들에게 기억될까. 훗날, 아이들이 '향기 정말 좋다! 엄마 생각 나.'라고 말할 수 있는 향기가 여러 가지 있다면 좋겠다. 올여름 어디선가 봉숭아꽃 향기를 맡는다면 내가 다시 엄마를 떠올리게 될 것처럼. 사실 나의 말과 행동이, 매일의 삶이 조금씩 쌓여 이미 어떤 향기를 만드는 중일 것이다.
이왕이면 머무른 흔적마다 좋은 향기가 남아 누군가의 마음을 산뜻하게 만드는 사람. 그렇게 잔향이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