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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Nov 24. 2023

'다니자키 문학'이라는 별자리

읽는 마음 (다니자키 준이치로, '슌킨이야기')


문학(文學)의 문(文)은 원래 무늬 문(紋)이었다고 한다. 즉, 쌍둥이조차 서로 다른 지문, 이 세상에 똑같은 것 없이 무수히 많은 사람의 결, 또 사람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무늬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 문학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사회의 윤리, 규범의 틀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 사람의 모든 행동, 생각, 모습이 대상이 된다.

(‘슌킨이야기’ p.321 「작품해설-일본 제일의 탐미파 작가를 읽다」 중에서)     


2023년 초, 문예출판사에서 출간된 ‘슌킨이야기’는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대가로 알려진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단편 소설집이다. 예닐곱 장 분량의 짧은 소설인 ‘문신’에서 시작하여 ‘호칸’, ‘소년’, ‘비밀’, ‘길 위에서’, ‘갈대 베는 남자’, 그리고 전체 소설집에서 가장 긴 분량을 차지하는 ‘슌킨이야기’까지 총 7개의 작품이 실려 있다.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일본 근대화 시기에 쓰인 그의 문학은 오래되었지만 낡은 느낌이 없고 진부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문체가 부드럽고 섬세하며 ‘갈대 베는 남자’처럼 계절의 정취를 아름답게 그린 이야기는 근사한 동양화 한 점처럼 우아하다. 사회적 통념과 상식을 벗어난 사건 전개 방식이나 인물 관계는 대체 어디로 뻗어가는 것인지 읽는 내내 마음을 졸이게 한다.      



그 시절에는 아직 사람들에게 ‘어리석음’이라는 고귀한 덕이 있어서 세상이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았다. 영주님이나 도련님의 훤한 얼굴이 흐려지지 않도록, 또 대갓집 하녀나 게이샤에게 웃음거리가 끊이지 않도록 웃음을 파는 차보즈*나 호칸** 등의 직업이 버젓이 존재했을 정도로 세상은 태평하고 한가로웠다. 당시 많은 연극이나 소설에서도 아름다운 자는 모두 강자이며 추한 자는 약자였다. 너도나도 아름다워지려고 애쓴 나머지 타고난 몸에 물감을 넣기에 이르렀다. 강렬하고 현란한 선과 색이 당시 사람들의 피부에서 춤추고 있었다.(p.9)



‘문신’은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191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다쓰미’라는 에도 시대의 유곽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시절’은 아마도 1800년대 무렵인 듯하다. 요즘 시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타투이스트, 즉 문신사를 예술가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라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의료인 이외의 문신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한다. 미용을 목적으로 눈썹 문신이나 타투를 하려는 대중의 수가 늘고 있음에도 말이다. 보수적인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에서 볼 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문신 풍경’은 상당히 파격적이다. 많은 이들이 문신사를 찾기 바빴고 피부에 그림을 새겨 넣는 일이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힘으로 작용했던 시대. 문신의 고통보다 태평하고 한가로운 세상이 주는 권태를 사람들은 더 견디지 못했던 것일까.    

     


주인공 세이키치는 문신사로서 뛰어난 기량을 갖춘 인물이다. 본래 화가였던 그는 타인의 몸에 문신을 새기는 일에 큰 자부심과 예술적 욕망을 품고 있다. 그의 궁극적인 소원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의 몸에 ‘자신의 혼을 찔러 넣는 것’(p.12)이었다. 그 대상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헤매던 그는 어느 여름 저녁, 가마의 주렴 밑으로 드러난 여자의 새하얀 발을 보게 된다.



예리한 그의 눈에는 사람의 발이 그 얼굴처럼 복잡한 표정을 가진 듯 비쳤다. 그에게 그녀의 발은 귀중한 살로 만들어진 보석이었다. 엄지에서 새끼까지 가지런하게 이어진 섬세한 다섯 발가락의 형태, 에노시마 해변의 연분홍 조개 같은 발톱의 색, 구슬처럼 동그스름한 뒤꿈치,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에 씻은 듯한 피부의 윤택...(p.12~13)


  

세이키치는 여자의 발에 온 신경이 쏠린다. 사람마다 구애의 대상에게서 느끼는 매력이 다를테지만 발만 보고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니. 신체 일부 중에서도 발은 누군가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은밀한 부위에 가깝다. 그런 발에 주목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천착하듯 묘사한 작가의 시선이 독특했다. 세이키치는 아름다운 발을 가진 여자와 수년의 세월이 흐른 후 재회한다. 그리고 소원대로 그녀의 등에 모든 혼을 쏟아 밤새도록 문신을 새겨 넣는다.



강을 오르내리는 배의 노 젓는 소리에 봄날의 밤은 밝아오고, 아침 바람을 품고 내려오는 흰 돛의 꼭대기부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나카스, 하코자키, 레이간지마에 늘어선 집들의 기와지붕이 반짝일 무렵, 세이키치는 그제야 붓을 놓고 소녀의 등에 새겨진 거미를 바라보았다. 그 문신이야말로 자기 생명의 모든 것이었다. 그 일을 마친 후 그의 마음은 텅 비어버린 듯했다.(p.18~19)

      


다니자키 소설에서 주목할 것은 여성을 탐미의 대상이자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로 그린다는 점이다. 세이키치는 여자의 등에 살아 움직이는 듯한 무당거미를 새긴 후 그녀가 ‘비료’라는 제목의 그림 속 여인처럼 될 거라고 예언하듯 말한다. 이전에 읽은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헨리 경’이 젊은 청년 ‘도리언 그레이’를 쾌락과 타락의 길로 안내했던 것처럼. 세이키치의 모습 위로 헨리 경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다니자키가 자신의 소설보다 앞선 시대에 발표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고 영향을 받아 그만의 동양적 탐미주의 문학을 그려낸 것은 아닐까.  소설이 나아가는 방향이 비슷하여 자연스럽게 연결짓게 된다.  



다니자키가 소설을 발표했을 무렵 일본은 세계 식민제국이었다. 전쟁의 주체였던 남성은 자신들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환상도 가졌을 법하다. 다니자키는 당대 사회의 무자비함과 잔혹함을 바라보며  작가로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현실과 반대로, 완전히 다른 세상을 꿈꾸기라도 한 것일까. 남성을, 남성이 지배하던 세상을 전복시킬 무언가가 필요하다 생각했을까. 그가 만든 소설의 세계에서는 여성이 힘의 주체인 경우가  많다. 문신으로 무장되어 ‘찬란하게 빛나는’(p.21)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몸속에 새겨져 지울 수 없는 여자의 문신은 그 누구도 함부로 뺏지 못할 아름다움이자 권력으로 통한다.  

 


다니자키만의 유토피아는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 ‘슌킨이야기’에서 더욱 공고해진다. 화자인 ‘나’는 ‘모즈야 슌킨전’이라는 책자를 읽고서 슌킨과 그 주변 인물에 대해 연구한다. 슌킨은 약재상 집안에서 태어나 단정하고 고아했고, 무용과 음악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소녀였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아홉 살에 안질을 앓아 두 눈의 빛을 잃게 된다. 그 뒤로 슌킨은 무용은 그만두고 일본의 전통 악기인 고토와 샤미센을 연주하며 남다른 기예를 연마한다. 이러한 슌킨에게 사스케라는 소년이 찾아온다. 그는 모즈야 가에서 일을 배우기 위해 온 점원인데 훗날 슌킨의 제자가 되고 그녀를 위한 수발을 도맡아 함께 지내게 된다.



손을 잡고 길잡이를 할 때 사스케는 왼손을 슌킨의 어깨 높이로 올리고 손바닥을 뉘어 그녀의 오른쪽 손바닥을 받았는데, 슌킨에게는 사스케라는 존재가 하나의 손바닥에 불과한 듯했다.(p.239)



슌킨은 사스케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를 의지한 삶을 산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의 관계가 스승과 제자 사이를 넘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다. 사스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하며 그를 종 부리듯 함부로 대한다.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도 사스케는 슌킨을 처음 본 날부터 그 용모와 자태에 마음이 이끌려 진심과 정성을 다해 그녀를 돌본다. 슌킨은 자신에게 샤미센을 배우러 오는 다른 제자들에게도 까탈스럽고 엄격한 스승이었다. 슌킨 곁에는 샤미센으로 예술적 경지에 오른 그녀를 존경하면서도 그 오만한 성격에 앙심을 품은 제자도 있었다. 그중 한 명의 범행이었는지, 슌킨은 어느 날 밤, 자다가 괴한의 침입으로 인해 얼굴에 화상을 입게 된다.



그녀는 흉측하게 변했을 자신의 얼굴을 그 누구보다 사스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을 알게 된 사스케는 결국 스스로 눈을 찔러 슌킨을 안심시킨다. 그리고 기뻐한다. ‘이제 마침내 슌킨과 같은 세계에 살게 되었노라’고.(p.304) 시각을 잃은 뒤에도 사스케는 변함없이 슌킨을 보필하며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을 지킨다.    

  


지금까지 육체의 교섭은 있었지만 사제의 차별로 가로막혔던 마음과 마음이 비로소 서로 꼭 껴안고 하나로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소년 때 벽장 안의 암흑세계에서 샤미센 연습을 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으나, 그것과는 마음 상태가 전혀 달랐다.(p.304)      



슌킨을 향한 사스케의 충성은 ‘헌신’의 범주를 뛰어넘고 상식적으로는 도통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결’, 서로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무늬를 표현해 낸 것이 문학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스케가 슌킨을 위해 보인 행동은 사랑이 가진 수많은 결 중에 하나. 어쩌면 이성의 판단을 뛰어넘어 스스로도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는 일이 사랑의 본질이자 속성 아닐까. 맹목적인 사랑도 사랑이다. 그 결정판을 보여준 사스케의 마음이 내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일본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당대 활발히 활동했지만 한국에는 덜 알려진 작가인 듯하다. 탐미주의 계열의 작품을 쓴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을 받고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것과 달리 말이다. 아마도 다니자키가 표방했던 탐미주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보다 그 농도가 짙고 수위가 높은 까닭에 일반 대중문화로 수용되기 어렵지 않았을까.



이 한 권의 소설을 읽고나니 ‘다니자키 문학’이라는 별자리 하나를 발견한 듯하다. 그 별자리의 모양은 생경하고 낯설어 익숙한 감탄보다는 신비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세상에, 이런 이야기도 있네!’ 하면서.



호불호가 나뉠만한 인물들을 만나며, 그 인물만이 가진 하나의 결을 찾아내고 이해하려는 노력.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며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만의 렌즈를 얻게 되는 것.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에서, 나는 문학이 주는 이와 같은 부요함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차보즈: 무사 집안에서 내객 급사와 접대 담당. 머리를 삭발하여 승려를 뜻하는 보즈가 붙었다.

**호칸: 연회석에서 손님의 시중을 들며 만담 등을 하여 좌중을 흥겹게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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