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에게 우산이 되어줄 것인가
읽는 마음 (노리나 허츠, '고립의 시대')
각종 미디어 매체와 스마트폰, SNS의 발달은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소통 가능한 세상을 열어주었다. 이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기가 거미줄처럼 긴밀하게 연결된 '초연결 사회'를 살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여 년 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19 사태는 비대면 관계가 장기화되면서 초연결 사회가 지닌 한계와 인간의 외로움, 그리고 소외감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노리나 허츠는 자신의 책 '고립의 시대'를 통해 외로움이란 무엇인지 정의한다. 또한 외로움 문제가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개인의 차원을 넘어 지역 사회와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고찰하도록 돕는다.
휴대전화 화면을 몇 차례 두드리면 손쉽게 치즈버거를 주문하듯 우정을 주문할 수 있다는 것, 외로움을 타는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때로 이용하기 위해) 내가 '외로움 경제'라고 부르는 것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징후다.(p.15)
책 초반에 등장한 '외로움 경제'라는 말은 내게 생소했지만 의미 있게 다가왔다. 노리나 허츠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외로움은 이제 성별과 나이, 사회적 위치나 경제력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사회적 질병'으로 진단하고 있다. 외로움 문제가 야기하는 사회적 비용이 커져만 가는 시대, 외로운 이들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 기술과 서비스 산업 역시 날로 확장되고 있음을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의 경우 가족이 곁에 있고 정기적으로 만남을 갖는 선후배와 지인, 이웃들 덕분에 정서적으로 외롭다고 느끼는 빈도수는 적다. 하지만 나와 반대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살거나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이들에게는 외로움이 갈증처럼 느껴질 것 같다. 목이 마르면 돈을 지불하고 음료수를 사서 마시듯이 외로움이 가시지 않으면 스마트폰 앱을 통해 함께 시간을 보낼 친구를 몇 시간 '살 수 있는' 세상.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야기 같지만 이와 같은 방법이 간절한 이들도 존재하겠구나. 책을 읽으며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해 볼 수 있었다. 한편, 지금 시대는 외로운 마음도 가시화, 데이터화하여 일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스마트한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서는 밀레니얼세대 다섯 명 중 한 명을 살짝 넘는 수가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18세에서 34세까지 연령층은 다섯 명 중 세 명 그리고 10세에서 15세까지의 아동과 청소년은 거의 절반이 자주 또는 이따금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한다.(p.18)
전 세대 중에서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세대는 어떤 연령층일까. 나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활동이 감소하는 고령 세대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저자는 전 세대 중에서 가장 외로운 집단을 가장 젊은 층으로 보고 있었다. 그녀가 대학원생들을 지도하면서 경험한 학생들은 면대면 상호작용을 힘들어하고 상당수가 극심한 외로움과 고립감을 호소했다고 한다.(p.18) 영국의 아동과 청소년이 느끼는 외로움의 빈도 수도 생각보다 많아서 놀라웠다.
어린 시절부터 미디어 매체와 모바일 문자, 메신저 등으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했던 젊은 세대들이 대면 관계를 힘들어하고 전화 통화조차 기피하는 현상(콜 포비아)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스스로 익숙하고 편한 방법을 따라 적응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코로나 시기까지 덮치며 수업과 과제, 친구와 소통하는 일도 비대면 방식에 길들여진 젊은 세대들. 이들이 겪고 있는 대인 관계의 어려움은 학교와 가정 중심으로 잘 살펴주고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면 관계의 회복 문제는 전 세대가 함께 고민해야 할 사회 문제가 아닐까.
체르니코브스키는 하레디 사람의 높은 기대수명에 신앙이 일정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족과 공동체의 강한 유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은 수명을 줄이고 우정은 압박감을 줄입니다."그는 간단하게 말한다. 하레디 사람들이 서로에게 제공하는 돌봄과 지지가 그들이 길고 건강한 삶을 사는 비결이다.(p.44)
저자는 외로운 시대, 공동체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특히 정통 유대교 지파인 하레디의 삶을 통해 공동체 활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들이 좋지 못한 식습관과 운동 부족, 비타민 D가 결핍될 만큼 햇빛 노출을 꺼리는 복장,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전체 이스라엘 인구에 비해 기대 수명이 평균보다 7년이나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하레디를 연구하는 학자 체르니코브스키는 이와 같은 결과는 하레디가 공동체 중심의 삶을 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종교나 봉사활동을 함께할 뿐만 아니라 비상시나 힘들 때 서로 실질적인 도움과 지원을 제공한다. 설문조사에서 하레디 사람들 중 11%만이 외롭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하레디 연구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 공동체는 돈으로 살 수 없을 만큼 의미가 크고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하나의 공동체가 공동체 바깥의 사람들에게 배타적이 되지 않도록 연습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에도 공감했다. 내가 속한 모임과 공동체, 지역 사회를 잘 돌아보고 세워나가되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나가는 일에 힘써야겠다.
나 역시 누구 못지않은 죄책감을 느낀다. 휴대전화는 우리의 애인이자 불륜 상대다. 오늘날 우리는 옆에 사람을 두고 노골적으로 휴대전화와 바람을 피우며, 어찌 된 일인지 이러한 부정을 다 같이 수용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여기 있지만 여기 있지 않으며, 함께이지만 혼자다. (p.157)
한편 저자는 스마트폰에 빠진 이들이 겪는 피상적인 인간관계에 대해서 우려한다. '여기 있지만 여기 있지 않으며, 함께이지만 혼자'라는 문장이 내 마음에도 콕 박혔다. 나 또한 잠 자기 전, 종종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세상을 유영하곤 한다. 남편 역시 바로 옆에 있지만 눈은 스마트폰 화면으로 향한 채여서 서로 말이 없을 때가 많다. 우리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짧고 자극적인 영상들에 그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지 않았나 반성했다. 필요할 땐 사용하더라도 남편 그리고 아이들과 대면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우선순위에 두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우리의 관계들이 이상화된 아바타들의 상호작용으로 바뀐다면 우리가 맺는 관계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 필연적으로 우리는 관계를 기이하리만치 경쟁적이고 얕고 허허롭게 만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진정한 우리 자신을 공유하기보다는 공유하는 연기를 펼치는 온라인 페르소나로부터 점차 분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p.186)
노리나 허츠는 SNS 상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주기보단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온라인 페르소나'를 만드는 현상을 지적한다. 현실을 보다 근사하게 포장 가능한 스마트폰 기술은 평범한 대중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거나 불필요한 경쟁 심리를 부추기기도 한다. 하지만 SNS를 잘 관리하고 활용한다면 저자의 우려는 기우가 될 수도 있다. SNS에 게시된 사진이나 글, 영상 등은 상대방을 새롭게 알아가고 서로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유익한 면이 많다고 본다. 관건은 개개인이 SNS상에서 바라보는 타인 때문에 비교 의식에 잠식당하지 않는 것이다. 각 개인이 외적인 부분에 지나치게 신경 쓰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단단히 가꾸어나가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면 SNS를 통한 소통과 기술의 발전은 고립의 시대를 극복해 나가는 데 오히려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중요해 보이는 것을 남과 소통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관점을 남들이 인정해주지 않을 때 느낀다.(p.74)
노리나 허츠는 외로움을 타인과 단절된 기분, 제대로 지지받지 못하는 느낌일 뿐만 아니라 정치나 경제, 사회적으로 배제된 느낌이라 말한다. 그녀는 외로움을 내면적 상태인 동시에 실존적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p.23) 외로움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는 저자의 통찰에 공감되었다.
고립의 시대, 저자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기업과 지역 사회, 정부가 함께 서로 돌봄의 기회를 만들어 나갈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책을 읽으며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구멍가게, 19세기말의 이발소가 마을 공동체를 육성하고 결속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새롭게 배웠다. 동네 카페나 슈퍼, 서점 등 지역 상점만이 갖고 있던 고유한 역할들이 인터넷 상거래의 발달로 인해 심각하게 축소되었음을 깨닫는다. 더불어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큰 타격을 입고 스러져간 지역 상점들이 생각나 안타깝기도 했다. 지역 상권을 살리는 일은 경제적 차원을 넘어 외로움 문제를 해소하는 일에도 중요한 열쇠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또한 도서관이나 청년 센터, 커뮤니티센터 등 공동체의 기반을 복원하거나 우리 사회를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들(예술가, 작가, 음악가)에게 작업을 의뢰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고립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라고 본다.(p.369)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경제적 지원이 가능한 기업이 나서서 이와 같은 일에 힘써주면 좋겠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있는 한, 외로움 문제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황정은 작가의 소설 '디디의 우산'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라는 두 가지 이야기가 엮인 연작 소설이다. 서로 다른 두 이야기 속에는 공통적으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을 참고 견디는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d>가 끝나고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시작되기 전, 이야기 사이에 삽입된 다음 문장이 인상적이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작가는 비가 오면 그 비를 나만 피하기 전에, 주변의 누군가 우산이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함께 살피자고 이야기한다. 외로움은 비처럼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외로움이 인간의 실존이라는 노리나 허츠의 말대로라면 그것을 인간 스스로 완벽하게 해소하기란 실상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타인의 외로움을 알아보는 마음이지 않을까. 나 자신에게만 향한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넓게 던져 또 다른 누군가의 외로움을 돌아보는 마음. 그래서 그 또는 그녀가 잠시나마 외로움을 피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우산이 되어주는 일. 바쁘고 벅찬 일상이지만 이와 같은 마음의 여유를 잃지 말자고 되뇌어본다.
노리나 허츠는 책의 마지막 문단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있어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가는 세계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다.(p.394)
나는 누구에게 우산이 되어줄 것인가. 매일 하루를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던질, 중요한 질문거리를 '고립의 시대'를 읽으며 새롭게 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