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엄마, 화가 무지무지 많이 난 것 같아."
큰 아이 EH는 관찰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 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작은 아이 SH 역시 풀이 죽은 얼굴로 주섬 주섬 아일랜드 식탁 위의 물건을 들고는 형의 뒤를 따랐다.
아이들을 재우기 전, 나는 거실 바닥 여기저기에 어질러진 물건들에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꾹꾹 누른 채 말했다. 여기 누가 어질렀어, 얼른 정리해 놔. 물건의 대부분은 장난감 블록과 종이접기 해 놓은 드래곤, 미니카 등이었고 이런 것들을 접느라 잘라놓은 색종이 조각, 그리고 가위, 테이프 등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다. '누가'라고 묻지 않아도 90% 이상이 종이 접기 덕후인 작은 아이가 흘려놓은 것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거 다 접고 정리할게."
SH는 샐샐 웃으면서 여전히 접고 있던 드래곤 한 마리를 놓지 않았다.
"아니, 정리부터 하고 색종이 접어. SH는 끝도 없이 종이접기 하잖아."
내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 분위기가 쌔한 것을 감지한 SH는 일어서더니 거실 바닥에 있던 자기 물건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런데 모든 물건을 주방 아일랜드 식탁 위에 대충 얹어 놓는 것이 아닌가. 내가 보통 도마질을 하고 식재료를 다듬으며 식사 준비를 하는 유일한 공간에 말이다. 아, 평소에도 이 아일랜드 식탁에 아이들의 자질구레한 장난감들이 올라와 있으면 한숨부터 나왔더랬다. 그래도 당장 반찬을 만들어야 해서 아쉬운 내가 정리해버리곤 했다. 하지만 오늘 밤은 아이의 반복되는 행동에 참을 수가 없었다.
"누가 여기다가 올려놓으래? 여기는 엄마가 쓰는 공간이잖아.
정리하라는 건 물건이 원래 있던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는 거지."
내가 이렇게 말하자, 큰 아이는 엄마가 화가 무지무지 많이 났다고 동생에게 상황 정리를 해 주었던 것이다. 문장의 마지막에 느낌표 열 개쯤 붙이며 소리를 빽 지르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마침표를 찍으며 낮은 목소리로 차분히 얘기했는데.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 이미 폭발한 화를 숨길 수는 없었나 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오후 시간 내내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화가 난 일은 없었다. 그저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아이들과 버틴 주말 하루가 힘들고 버거웠던 것 같다. 바깥에 나가지 못한 것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방에서 놀거리를 찾아 알아서 잘 놀아주었다. 단지 무술 놀이를 한다며 노는 과장된 몸짓과 시끄러운 목소리가 내 정신을 산란하게 했을 뿐이다.
나는 잠시 장을 보러, 아니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려 밖을 나갔다 오기도 했다. 마침 저녁 찬거리가 계란 하나 없이 똑 떨어진 상태였다. 남편은 더운데 어떻게 나가냐 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럼 누가 저녁밥을 위해 총대를 메리오? 반문하면서 집을 나섰다. 오후 5시. 해는 여전히 뜨거웠다. 횡단보도 위에서 나는 고작 밖을 나와 갈 곳이 집 앞 마트 밖에 없음에 더 우울한 마음이 들었더랬다.
그때 가장 먼저 생각난 곳은 결혼 전 나의 최측근, 나의 가장 가깝고도 안온했던 세계인 친정이었다. 그곳엔 여전히 나와 닮은 형제들이 살고 있다. 문득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싶었다. 엄마가 생각났지만 엄마와는 며칠 전에 통화했으므로. 아직 결혼을 안 한 언니는 주말이면 우리 자매들 카톡 방에 이런저런 사진을 올리며 안부를 먼저 묻곤 했다. 그런데 한동안 연락이 뜸하니 궁금하면서 일이 바쁜가 싶었다. 통화버튼을 누르려다가 관두었다. 마스크를 낀 채 뜨거운 햇볕 아래서 전화하기도 마땅치 않았고, 무엇보다 친정 식구들을 떠올린 순간 목울대 안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다.
간단히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나는 아일랜드 식탁을 경계 삼아 거실의 남자들(남편, 큰 아이, 작은 아이)과 주방의 나를 분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 때문인지, 무표정한 내 얼굴 때문인지 세 사람 중 누구도 내 곁에 다가오는 이가 없었다. 마음이 가라앉을 때 음악을 틀어놓으면 탄수화물을 섭취한 듯 금방 기분이 풀릴 때가 많았다. 탄수화물 같은 마법의 힘을 얻고자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 OST를 틀어놓고는 감자채 볶음을 만들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이번엔 음악도 마음을 풀어주진 못했다. 남편, 아이들 밥을 차려준 뒤 정작 나 자신은 입맛이 떨어져 버려 밥을 먹지 않았다. 식사까지 거부하며 울적해있는 내게 남편은 집 앞 공원을 나가자고 했다. 언제 해도 좋은 산책이련만 나가고 싶지가 않았다. 애들 데리고 나갔다 와, 혼자 있고 싶다.라고 말하며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아이들은 내 옆에 앉아 엄지와 검지 손가락에 딱풀을 묻혀가며 풀거미 줄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사실 아이들은 놀고만 있는 것 같아도 어느새 엄마의 표정을 살필 만큼 자라 있었다. 나만해도 어릴 적 딱 지금의 작은 아이만 할 때, 엄마의 동정에 예민하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할아버지나 할머니 생신 전날이었을 것이다. 집 안은 왁자지껄했고 마루에는 잔칫상이 다리가 휘어져라 차려져 있었다. 큰 고모네부터 막내 고모네 식구들까지 네 가정과 우리 식구들까지 더하면 스무 명도 넘게 한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고모부들은 특히나 음주 가무를 좋아하셨다. 그날도 둘째 고모부는 술에 취하신 채 자신의 십팔 번인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을 목청껏 부르셨고 친척들은 다 같이 "브라보~ 브라보~~!"를 외치고 있었다.
그때 일곱 살이었던 나는 그 자리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사촌들이랑 노느라 정신이 팔려있거나 개그우먼 저리 가라 입담이 뛰어난 고모들 틈에 끼어 어른들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내가 즐겁지 않았던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많은 식구들 틈에서 엄마의 표정만 즐겁지 않았다. 생신 전야 파티의 피크였던 저녁 시간이 지나갈 무렵, 엄마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잠시 뒤 나도 엄마를 따라 쫄래쫄래 그 방으로 들어갔다.
당시 엄마의 방은 마루에서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었다. 아궁이가 있고 바깥처럼 신발을 신은 채 조리를 했던 옛날식 부엌이 그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마루 옆 할아버지, 할머니 방과 부모님 방을 이어주던 부엌 툇마루를 생쥐처럼 쪼르르 오가곤 했다. 엄마의 방에서 나는 일곱 살 무렵까지 종종 밤잠을 잤던 것 같다. 이불 위에 누워 심심해 뒹굴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분홍색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크고 명랑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시곤 했다. 중간중간 뭐가 재밌는지 박장대소를 터뜨리시면서. 엄마는 아마도 하루의 고단함과 피로를 그렇게 자신의 최측근들과 전화로 이야기꽃을 피우시며 떨쳐내시지 않았을까 싶다. 전화통을 붙들고 기분 좋아 보이는 엄마의 얼굴에 안심하며 어린 나도 스르르 잠들곤 했다.
하지만 생신 잔치 전날 저녁, 홀로 방에 들어간 엄마는 전등 아래 누워만 계셨다. 작은 방은 적막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서늘해진다. 어디가 아프셨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음식을 만들고 차려내며 그 많은 식구들 뒤치다꺼리에 몸살 날 만큼 지치셨던 것은 분명하다. 나는 누워 있는 엄마 품 속으로 몸을 웅크리며 비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엄마에게 했던 말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다.
"엄마, 나 배 아파..."
내 말에 엄마는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래? 왜, 어떻게 아파?"
사실 나는 배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당시 어렸던 나는 엄마의 안색은 살필지언정 위로할 말은 할 줄 몰랐을 것이다. 다만 엄마를 힘들게 한 상황들이 어렴풋이 짐작이 갔고, 그것을 알고 나자 더 이상 흥겨운 잔치가 벌어지는 마루에 있을 수 없었다. 엄마가 힘들고 지쳐 보였으니 나 역시 엄마 옆에 그저 딱 붙어 있으려면 아프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엄마는 나를 귀찮아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가의 많은 식구들 챙기느라 엄마는 몸이 바쁜 만큼 마음도 늘 외로웠을 것 같다. 다른 가족들은 1박 2일로 생신 잔치를 치렀어도, 유일한 며느리였던 엄마는 이미 앞서 일주일은 전부터 손님맞이 준비에 벅찼을 것이다. 내 기억엔 고모들은 기껏해야 생신 전날 오후에 오셔서 이미 다 된 잡채나 과일 사라다를 버무리는 정도의 일만 하셨으니. 엄마는 천천히 내 머리와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딸아, 넌 내 편이지?라고 말하듯 여느 때처럼 내게 부드럽고 상냥해진 얼굴로.
큰 아이는 안방에서 아빠와 함께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내 화를 돋우었던 작은 아이는 자기 방에서 등을 돌린 채 여전히 뭔가 접고 있었다. 작은 방구석에 앉아 종이접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처연해 보였다. 마음을 풀어주고 싶었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와 하루 종일 잘 지냈든, 못 지냈든 잠들기 전만큼은 서로 좋은 감정으로 잠들 수 있도록 하는 데 크게 신경 쓴다고 한다. 나 역시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만큼은 하루 동안 서로에게 쌓인 앙금이 남아있지 않도록 하고 싶다.
아이와 화해할 때 내가 주로 쓰는 방법은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엄마 개구리와 아들 개구리가 등장하는 그림책을 골랐다. SH, 종이접기 언제 끝나? 엄마가 책 읽어 줄게.라고 말하자, 작은 아이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하지만 종이 접기는 다 끝낼 거라고 했다. 나는 아이가 종이 접기를 끝낼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결국 빨간 색종이로 20분 걸리는 드래곤 한 마리를 다 접고 나서야 아이는 나에게 등을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개구리 그림책의 마지막 장은 엄마 개구리와 아들 개구리가 서로 마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동화가 다 끝나기도 전에 나도, 아이도 마음이 스스륵 녹은 듯했다.
불을 끄고 이불 위에 아이와 나란히 누웠다. 우리 집 세 개의 방 중에서 가장 작은 공간이라 둘이 누우면 방이 꽉 찬다. 형제 침대도 놓지 못해 아이들은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잔다. 공간이 작으니 아늑하기만 하다. 아이들을 양 쪽에 눕히고 가운데 누우면 나는 항상 잠이 잘 왔다. 보통 큰 아이는 등을 긁어달라는 정도 말고는 잠잘 때 다른 부탁이 없었다. 하지만 작은 아이는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엄마를 잘 부리고, 또 잘 누린다. 발~! 그러면 발바닥을 내 손가락으로 간질간질 해줘야 잠을 자고, 손~! 그러면 손바닥을 똑같이 해줘야 잠을 잔다. 그런데 요즘은 엄마의 입장을 생각해주는 건지 한 마디 덧붙인다.
"엄마가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돼. 정말 그래도 돼."
그러면 나는 보통 아냐, 해줄게.라고 말하며 원하는 대로 해준다. 그러다 어떤 날은 장난으로 그래, 그럼 안 할게!라고 거절한 뒤 가만히 자는 척을 하면 아이는 금세 아차 싶은지, 근데 등~! 등은 지금 꼭 해야 돼! 그런다. 몸의 일부 어딘가는 꼭 엄마의 손길을 누리고 잠이 드는 아이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특이하게 귀를 만져달라고 했다. 응, 귀? 그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지. 하면서도 손, 발을 간질이는 것보다는 귀가 좀 수월해서 나도 흔쾌히, 아이가 꿈나라로 갈 때까지 간질여주었다.
먼 훗날, 아이는 이 작은 방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하다. 오늘 같은 날, 형과 땀을 뻘뻘 흘리며 무술 놀이를 하고, 웅크리고 앉아 종이 접기를 하던 방이었음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을까? 바라건대, 느슨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간질여주던 엄마를 조금이라도 떠올려주면 좋겠다. 거실과 주방에서는 시시때때로 딱딱한 엄마 표정이었을망정, 이 작은 방 안을 생각할 때만큼은 엄마의 웃는 얼굴이나 따뜻한 손 같은 것도 기억해주면 좋겠다. 어느 울적한 날, 누군가에게 먼저 통화 버튼을 누를 여유도 힘도 없는 그런 날, 아무런 수고 없이도 떠올리기 좋을 만한 추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