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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Sep 05. 2024

괜찮아?

풍선 안듯 조심스럽지만 포근해지는 말

큰 아이가 눈 수술을 했다. 왼쪽 결막에 어려서부터 자리 잡고 있던 붉은 점을 제거하는 수술이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붉은 점은 아이가 두세 살 무렵, 결막염을 앓고 난 뒤에 생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릴 땐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점도 커지고 피곤한 날이면 심하게 충혈되는 왼쪽 눈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진료를 위해 한동안 병원을 들락거리다가 올여름,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다.  



하필 수술일 아침에 태풍이 올라왔다. 30분 거리의 대학병원까지 이른 아침에 도착해야 했는데 비바람을 뚫고 갈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집에 남아 작은 아이를 등교시키고 퇴원할 즈음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출발하니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차창 밖으로는 폭우가 쏟아졌고 아이는 밤잠을 설친 탓인지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잠든 아이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말없이 운전하시던 기사님이 이렇게 일찍부터 병원은 왜 가냐고 물으셨다.



"아이가 오늘 수술을 받기로 해서요."

"어휴, 병원에는 웬만하면 안 가야 하는데. 우리 아내도 허리가 아파서 꼼짝 못 해요. 아프니까 사는 낙이 없네요."



예상치 못한 말씀에 나는 "많이 힘드시겠어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어 마음이 조금 더 무거워지려던 찰나. 기사님은 "이런 날엔 딱 집에 들어가면 좋겠네!" 하시며 빙긋 웃으셨다. 그 말에 '저도요, 기사님. 아이 수술 마치고 얼른 집에 들어가면 좋겠어요.'라고 속으로 맞장구쳤다.



배테랑 운전기사님 덕분에 무사히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입원 수속을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아이가 옷을 갈아입고 병실에 누워 수액을 맞는 동안 나는 전신마취와 그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담담하게 보호자 확인란에 사인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만약에….'라는 불안도 엄습했다. 입원실 안에는 이런저런 수술을 위해 대기 중인 또 다른 아이들이 있었는데 다들 큰 아이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유튜브를 보여달라 떼쓰는 아이, 병원이 무서운 듯 울상인 아이, 뭐 재밌는 일 없나 심심한 표정의 아이. 모두 당일 퇴원이 가능한 수술이었지만 제 몸보다 큰 환자복을 입고 주사 바늘을 꽂은 아이들 모습은 그저 안쓰러웠다.  



수술이 진행될 동안 아이 곁에 있을 수 없으니 마음만 타들어갔다. 보호자 대기실에는 환자를 기다리는 가족들로 가득했다. 휴대폰 화면만 묵묵히 바라보는 이, 함께 가족과 차를 마시며 초조함을 달래는 이, 수술실 문 앞에서 두 눈이 충혈된 채 인형을 들고 있는 이, 누군가와 부둥켜안고 서서 엉엉 우는 이. 어떤 사정인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모두 애타는 심정일 터였다. 영상 클립의 재생 속도를 늦춰놓은 듯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갔다. 매일 얼마나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이런 시간들 애써 견뎌냈을까. 가늠하기 어려웠다.  



모니터 화면 속 아이의 이름이 '수술 중'에서 '수술 완료' 칸으로 옮겨지고. 무사히 수술을 마친 아이를 보러 회복실로 들어갔다. 함께 입원실에 있던 다른 아이들이 큰 아이 양 옆에 조르르 누워있었다. 마취가 풀리며 짧은 잠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멍한 얼굴로 뒤척였고 간호사는 5분마다 심장 박동 같은 것들을 바삐 체크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한쪽 눈에 희고 커다란 안대를 붙인 채 쿨럭거리며 앉았다가 눕기를 반복했다. 입원실로 돌아와서도 기침을 하거나 눈과 목이 아프다고 말하며 비몽사몽, 아이는 한참을 잠에 취해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지나며 다른 아이들은 죽도 먹고 침대 위에 앉아 컨디션이 돌아오는 모습이었는데. 큰 아이 여전히 끙끙 신음 소리를 냈다. 금식 시간이 한참 지나 아이의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시게 했다. 하지만 물도 내키지 않는지 아이는 잘 마시지 못했다. 간단한 수술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들어하는 아이를 마주하니 마음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더 커서 수술해도 괜찮았을 텐데 괜히 아이만 고생시키고 있지 않나. 미안함과 후회, 피로로 뒤섞인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런데 그때 고요한 병실 안에 한 여자아이 목소리가 동그랗게 울려 퍼졌다. "오빠, 괜찮아? 오빠, 오빠! 괜찮아?"



옆 침대의 여자 아이였다. 수술을 준비할 때부터 뭐, 재밌는 일 없나 주변을 기웃거리던. 물론 병원에서 처음 본 아이였는데 수술 후 한쪽 볼에 상아색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아이는 책상다리를 한 채 걱정스러운 눈길로 우리 집 큰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이쪽에서 바로 대답이 없자 연거푸 같은 말로 되물었다. 큰 아이는 신음이 반쯤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겨우 대답했다. "아, 안 괜찮아."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여자 아이는 당장 눈에 띄는 안대를 붙이고 있는 큰 아이가 걱정되었나 보다. 같이 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테고. 그 아이 역시 전신마취 하고서 수술을 마친 상태였는데도 모르는 오빠 걱정을 다 해주다니. 기특하고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그 아이에게 괜찮은지, 아픈 데는 없는지 먼저 물어봐주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여유가 없어 이제껏 풍경처럼 바라만 보던 옆 침대 아이에게 그제야 나도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종알종알 말하길 좋아하던 여자 아이. 자기는 열 살이고 친구 OO이가 있는데 얘도 어디가 다쳐서 아프대요, 라며 내게 또 다른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퇴원한 아이는 매일 안약을 넣으며 관리 중이다. 아직 충혈된 눈에 안약을 넣어줄 때마다 나도 똑같은 말을 어김없이 되묻곤 한다.



괜찮아?



병원에 있던 날, 옆 침대 여자아이의 입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내게로 온 말. 어느 순간 하루가 벅차서 나도 모르게 꾹 다물고 있던 입을 동그랗게 열어본다. 나 자신에게 먼저, '괜찮아?'라며 묻는다.  번 물어봐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씩씩해진다. 



괜찮아. 가볍고 통통한 풍선을 안은 듯 조심스럽지만 포근해지는 말이다. 한번 세 글자를 천천히 발음해 본다. 이번에는 '아' 뒤에 우표 붙이듯 물음표를 달아 멀리 날려 보낸다. 괜찮아? 몸이든 마음이든 여전히 아프고 힘들 누군가에게. 그도 이 말을 받아 안고 조금은 포근해졌으면 좋겠다.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다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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