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스타벅스

휴대폰 대신 기억을 따라 걷는 시간

by 혜일

26년의 해가 두 번째 뜨던 날. 새해 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 같은 대학을 다녔고 한 때 같은 교회 공동체에서 날마다 마음 모아 기도했던 사이라 더없이 소중한 친구들이다. 대학 졸업 후, 멀리 바다 근처에서 줄곧 근무해 자주 만날 수 없었던 친구. 그 친구가 최근 서울로 발령받은 덕분에 성사된 만남이었다. 마침 다른 한 친구도 쉬는 날이었기에 만나기 하루 전, 번개처럼 약속이 잡혔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겨울아침이었지만 기온은 영하 10도였다. 기모가 들어가 꽤 두꺼운 청바지를 입었음에도 찬바람이 파고들었다. 한파의 위엄을 느끼며 미리 챙긴 니트장갑을 꼈더니 한결 따뜻했다. 다행히 버스가 오기까지 남은 시간은 오 분. 하아, 하아. 숨을 크게 내쉬며 시선은 파란 하늘에 두었다. 여유가 생기자 친구들과의 만남이 설렜다.



하지만 버스에 올라탄 뒤 자리에 앉은 나는 금세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약속 장소를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찾았는데 그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정류장까지 걷는동안 너무 추웠기에 한 번도 휴대폰을 꺼내보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작은 숄더백 안에는 지갑과 이어폰, 핸드크림과 립밤, 벗어놓은 장갑만 나올 뿐이었다. 코트 양쪽 주머니 마저 텅 비어있는 걸 확인한 순간, "아앗, 저 좀 내릴게요!" 정류장도 아닌 곳에서 크게 외칠 뻔 했다. 버스는 유유히 고속도로를 진입하고 있었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어 약속장소가 어디었는지 기억해보았다.



'서울역, 스타벅스!'



두 단어가 떠오르자 친구가 보내 준 링크 속 카페 이미지까지 선명해졌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루 전, 대강이라도 약속장소를 확인한 것이 다행이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서울역 광장 근처에 위치한 스타벅스. 서울역 몇 번 출구였더라. 거기까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오고가는 곳이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모르는 골목 어귀, 이름도 낯선 식당이나 카페가 아님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서울역까지 도착하는 사이 친구들이 다른 장소로 옮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사람들이 많아 자리가 없거나 더 좋은 만남의 장소라도 발견한다면. 그렇다면 약속 장소가 바뀔 가능성도 있었다. 서울역 스타벅스에 도착했는데 두 친구가 보이지 않는다면. 상상하니 아득했다. 친구들 전화번호는 당연히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게다가 공중전화도 없는 요즘, 휴대폰없이 통화 한 번 하려면 모르는 누군가에게 신세를 져야할 일이므로.



하필 책도 챙기지 않아, 가는 길 내내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주변 승객들은 휴대폰을 보거나 좌석에 머릴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차창 밖에 두었다.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와 휴대폰이 없다는 불안이 뒤섞여 잠은 오지 않았다. 버스 창가에 달린 커튼을 반쯤 열어젖혔다. 창 밖으로 빈 가지뿐인 나무들 곁을 버스는 빠르게 지나쳤다. 다시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보이는 하늘 면적이 차츰 넓어지자 마음에도 다시 여유가 깃들기 시작했다. 약속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한 시간도 더 남았다. 친구들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지는 어차피 가봐야 안다. 걱정은 접어두고 당장 주어진 시간을 만끽하기로 했다. 휴대폰을 챙기지 않아 출렁였던 불안이 잠잠해지자 오히려 마음 한 구석이 가뿐해졌다. 해방감 비슷한 것일까. 친구들만 별탈없이 만난다면 휴대폰과는 반나절 지나 해후한다해도 괜찮았다. 꼼짝없이 앉아있는 일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버스 창가의 냉기는 어느 새 사라지고 겨울햇살이 따스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승강장 벽에 붙은 '사랑의 편지'가 눈에 띄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지하철로 다닐 때면 스쳐지나가지 않고 읽었던 글이었다. 빨간 색상으로 쓰인 '사랑의 편지' 글씨. 정겨웠다. 내가 읽은 편지는 신경근육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포함, 세 자녀를 둔 엄마가 쓴 글이었다.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전에는 오로지 내 아이만 불쌍하고 자신만 힘들다 여긴 엄마는 이제 상황을 받아들였다 했다. 그러자 지금은 자신의 아이들만 챙기는 것이 아닌 다른 아픈 아이들까지 돕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의 여유는 늘려보고 망설이며 후회하는 시간은 줄이고...'



와닿았던 구절을 마음에도 담았다. 세 아이 엄마의 담담한 다짐을 읽으며 '새해가 정말 밝았구나' 비로소 실감했다. 만일 여느 때처럼 손안에 휴대폰이 들려있었다면 그저 스쳐지나갔을 글귀였을지 모른다. 휴대폰 없이 걷는 동안 나는 주변 풍경을 세심히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귀하고도 그리웠던 경험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여덟 정거장을 지나가자 서울역에 도착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사람들이 숱했다. 낯선 얼굴들 틈에서 다시 헤매는 마음이 되었다. 스타벅스로 향하는 출구는 어디일까. 어디에도 상세히 쓰여있지 않은 듯했고, 누군가 정확히 말해주기 전까진 알 길이 없었다.



사람들 속에 뒤섞여 광장 쪽으로 향하는 2번 출구로 발길을 내딛었다. 이 쪽인지 다른 쪽인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선택이었다. 내게 새롭게 찾아온 한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차게 출발했지만 나는 이내 두리번거리고 헤매며 한 해를 보낼지 모르겠다. 다만, 한해의 끝자락 즈음엔 덜 망설이고 덜 후회하기를. 그래서 누군가에게 마음 한 켠 내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기를.



지금은 그저 출구 바깥에 스타벅스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 간절하다. 간절한 마음은 순전한 마음일까. 출구 밖을 나오니 조금 멀리 있었지만 전방에 스타벅스라 쓰여있는 간판을 금세 찾을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 카페 안으로 들어서니 빈 자리가 없을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카페 끝쪽에 마주앉아 있는 두 친구를 단 번에 찾았다. 이내 한 친구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약속 시간보다 십 분이 지나있었다. 그래도 잘 찾아왔다. 안도감과 함께 어떤 장한 일이라도 해낸 사람처럼 감격이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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