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칠십된 엄마. 그런 엄마의 양쪽 무릎은 칠십 년 세월 동안 자연스레 닳고 낡아갔다. 왼쪽 무릎은 연골이 파열되어 한 번 수술한 이후로 통증이 가시지 않는다. 그나마 버팀목이 되어주던 오른쪽 무릎을 얼마 전 부상당한 엄마.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현관 앞에서 쪼그렸다 무심코 일어선 엄마는 강렬한 무릎 통증에 병원을 갔고 당분간 목발을 짚고 생활하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다. 오른쪽 무릎 연골이 튀어나왔다 했다.
곧 11월이 되었고 연례행사였던 김장이 떠올랐다. 예년 같으면 아이들까지 모여 함께 김치 속을 넣으며, 수육에 보쌈 먹을 생각에 들떴을 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김장을 떠올리니 마음에 먹구름부터 꼈다. 아빠는 무슨 김장이냐며 펄쩍 뛰셨다. 엄마의 현재 무릎 상황을 봐서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맛있는 김치 파는 곳을 수소문해 주문할까. 아니야. 엄마 손길이 닿은 김치만큼 여태껏 맛있는 김치를 먹어본 일이 없었다. 절임배추 사다가 조금만 만들어볼까. 아니야. 집 안에는 김장할만한 대야조차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는 제대로 된 배추김치 한 번 담가본 적 없었던 것이다.
며칠간 혼자 소심하게 고민하던 중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절임배추 다섯 상자 주문해 놨어. 갓이랑, 무도. 니들이 모이면 김장 하나 못하겠니.
바깥 활동은커녕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다던 엄마의 목소리는 의외로 활기가 넘쳤다. 나 홀로 고민하던 시간이 무색해졌다. 아빠의 반대도 엄마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엄마 사전에 김장 없는 11월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장이 결정되자 최대한 빨리 엄마 곁에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금요일 아침, 서둘러 친정행 버스에 올라탔다. 하원하는 아이들과 퇴근을 해야 올 수 있는 남편은 아무리 빨리 와도 저녁 늦은 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평일에 홀로 친정에 가는 일이 처음이다. 멀리 떨어진 지방도 아닌데 말이다. 송도에서 합정까지 가는 버스는 파란색, 합정에서 친정집이 있는 파주까지는 빨간색 버스로 갔다. 파란색은 최근에 노선이 생긴 직행버스이고 빨간색은 내가 대학생 무렵에도 줄곧 이용했던 옛날 버스다. 신식이든 옛날식이든 금요일 오후, 막히는 시내를 피할 길은 없었다. 바깥 기온이 높아서인지 버스 실내도 더웠다. 스웨터를 입은 탓에 땀이 나고 답답했다.
느릿느릿 움직이던 버스 안에서 엄마와 엄마의 김치, 그리고 김장이 끝난 토요일 오후를 생각했다.
-엄마, 내가 갈까?
-뭐 하러 와?
-엄마 수발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지. 밑반찬이라도 만들게.
-아이고, 애들은 어쩌고. 너네가 오면 나는 더 힘들어!
휴대전화 너머 엄마의 목소리는 무릎을 다쳤다는 날에도 톤이 높고 명랑함을 잃지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에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말뿐이었지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엄마는 아픈 다리로 어떻게 계단을 오르내릴까. 목발을 짚고 서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 수 있을까. 무릎을 구부릴 수 없는데 세탁기에 빨래는 어떻게 넣을까.
남동생 아침으로는 꼭 따뜻한 밥과 국을 먹이는 엄마. 그러느라 여태껏 늦잠 한 번 자본 적 없는 엄마는 날마다 어떤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일까. 돌보고 먹여야 하는 식구가 있는 한 살림을 멈출 수 없는 게 주부의 현실이다. 끼니는 외식으로, 집안일은 간소화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칠십이 되어도 마음껏 아플 수 없는 엄마였다.
버스 밖으로 한강이 보였다. 선유도공원 즈음을 지나는 것 같았는데 강가 주변으로 가지런히 늘어선 단풍나무가 선연한 빛을 뿜고 있었다. 계절마다 받아 들었던 엄마의 김치도 그 빛깔이 단풍만큼이나 고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에게서 떨어져 내 살림을 꾸려나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마의 김치는 빛을 발했다. 갓 담가져 적당히 익은 김치는 어김없이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냈다. 주재료가 배추든 열무든 상관없이 엄마의 김치는 엄마만의 맛과 색을 갖고 있다. 새 살이 돋는 느낌이랄까. 갈증이 해갈되는 순간이랄까. 김치 몇 조각에 허기와 생기가 채워지는 걸 경험할 때마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빨간 버스는 파주 출판 단지를 지나 친정이 있는 동네로 진입했다. 합정에서부터 한 시간은 더 지나서야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 남동생이 드나들기 좋아하는 편의점과 검정간판의 고깃집 사이, 골목길에 들어섰다. 고요한 친정집 마당에는 꽃과 잎을 떨군 장미덩굴이 겨울맞이 중이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기분이 이상했다. 어색하면서도 뭉클해지던 순간 익숙한 온기와 조도에 마음이 놓였다.
왔니, 왔어!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나왔다. 엄마 몸에도, 근처에도 목발은 보이지 않았다. 순간 다행이다 싶었다. 두 팔 벌린 엄마의 품에 와락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