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동틀 무렵 노을이 하도 붉어서 커튼의 일부까지 그 강렬한 색으로 물든 아침이었다.
큰 아이가 엉엉 우는 꿈이었다. 대부분의 꿈이 그렇듯 맥락도, 결말도 없었지만 아이가 우는 모습이 너무 서럽게 느껴져서 마음이 쓰였다. 분명 이전 날 있었던 일의 영향이 꿈에까지 미친 것이었다.
전날 오후에 작은 아이와 친구, 그리고 큰 아이는 셋이서 레고로 블록 놀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잠깐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나는 큰 아이의 낌새가 이상하단 것을 곧바로 느꼈다.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한눈에 보아도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았다. 내가 EH, 왜 그래?라고 묻기도 전이었다. 아이의 손은 동생들이 만든 레고 블록을 사정없이 부수며 망가뜨리고 있었다. 몇 초 전까지 동생들이 꽤 공들여 만든 블록 놀이터를 말이다.
작은 아이는 날벼락을 맞은 듯 얼굴이 일그러지며 울음을 터뜨렸고, 아이 친구도 씩씩거리며 같이 블록을 부수고 던졌다. 평화로웠던 아이들의 놀이 풍경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이 쿵쾅거렸다. 무엇보다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큰 아이의 모습에 흠칫 놀랐다. 동생들에게 신체적으로 직접적인 폭력을 쓰진 않았지만 블록을 부숴버리는 모습 자체가 폭력적이었다. 나는 내 마음이 얻어맞은 것 같았다.
평소엔 친구나 동생에게 먼저 시비를 걸거나 때린 적이 없는 아이였다. 동생에게 어깨를 물려 벌겋게 상처가 나도 "엄마, 얘가 나 물었어!" 하고 말할 뿐, 그냥 넘어가는 아이였다. 동생 장난감은 "나 이거 한 번 갖고 놀아도 돼?"라고 물으며 먼저 허락을 구하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예의 바른 형이었다.
그런 아이가 왜 이러나. 요즘 고기를 너무 많이 먹였나. 고기만 구워주면 제 입으로 먼저 게걸스럽게 욱여넣던 최근의 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열 살쯤 되어가니 식탁에서 밥 먹는 모습이 이젠 너무 사내아이 티가 나서, 나는 황당한 웃음을 짓기도 했었다. 그 모습이 처음 보는 아이처럼 생경했기 때문이다.
"동생들이 만들고 있는데 왜 망가뜨려?"
"얘네가 먼저 내가 만든 블록이 이상하다고 놀렸어. 그리고 블록 쓰려고 하면 자기 거라고 안된다 그러고..."
나는 여기까지 아이의 말을 듣고 속으론 그래, 그래서 속상했구나.라고 아이의 화를 인정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행동에 이미 실망했기에 겉으로 나온 말은,
"그렇다고 열심히 만들고 있는데 부수면 어떻게 해? 그건 잘못한 거야."
"그런데 얘네들이 내 거 이상하다고... 블록은 자기 거라고 그러고..%&*@#*+%%&"
아이가 울면서 반복된 말만 늘어놓으려고 하자, 나는 나대로 화가 나서 딱 잘라 이야기해버렸다.
"그만 얘기해, 엄마 다 알아들었어."
그리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아이 셋은 각자가 알아서 화를 삭이며 한동안 함께 놀지 못했다. 큰 아이는 몇 시간 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동생들과 놀기 시작했지만 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이에게 다 알아들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아이의 무슨 말을 들어주었는지 스스로 자문했다. 아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했던 말을 계속 반복했다. 그건 상대에게 호소한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의 반응이었다. 나는 겉으로는 아이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형이면 형답게, 잘못은 인정하고 동생들 말인데 그냥 넘어가 줘.'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가 바라는 '형 다움'을 아이에게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말에 영향받지 않을 수 있는 '쿨함'을 갖추기란 어른인 나도 힘든 일 아닌가.
며칠 전에도 큰 아이는 놀이터에서 자신만 계속 술래를 했다며 울먹울먹 했다. 눈은 이미 벌게져 있지만 우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써 눈물을 참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밤이었고, 피곤해진 아이는 마음속에 싸 두고 있던 감정들을 봇물처럼 쏟아놓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겉으로 나온 말은,
"술래를 계속하는 게 부당하다고 느껴졌으면 네가 친구들한테 그때 바로 이야기했어야지. 네가 계속 아무 말도 안 하고 참고만 있었던 게 잘못이야."
아이의 억울함이 느껴졌지만 나는 아이가 스스로 단단해지기를 바랐기에 일부러 이렇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후회했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그렇게 말하지 말고 그냥 안아주고 토닥여줄걸.
큰 아이가 처음 말을 하기 시작하던 때를 떠올렸다. 귀여움이 전 재산인 아이의 입에서 '아빠'라는 말이 먼저 터져 나왔다. 내 기대와 예상을 뒤집고 '엄마'보다 '아빠'를 더 빨리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답게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고 기적이던 순간이었다. 이때가 불과 6여 년 전.
아이의 씨앗 같던 말은 그동안 쑥쑥 자랐다. 한 마디, 두 마디, 세 마디... 새로운 말들이 고 작은 입에서 나올 때마다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우고 활짝 열었다. 이제 아이는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말속에 뚜렷하게 담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 말들을 얼마나 제대로 들어주었는지. 아이의 말은 여전히 자라고 있는데 나의 듣는 귀는 몇 년 사이 벌써 시들어버린 게 아닌가.
나는 평소에 잘 듣는 편이라고 줄곧 생각했다.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 앞에서 말을 하는 쪽보단 듣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정말 제대로 들어준 것이 맞는가. 어쩌면 그동안 타인의 수많은 말들은 내게 파도의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이내 썰물처럼 빠져나갔는지 모른다. 내게로 와서 이해받지 못한 말들이.
마흔이 되고 보니, 내 안에 또 다른 모습의 내가 살고 있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 동의하고 싶은 말만 받아들이려고 하는 작은 검열관이.
아이가 학교에 다녀온 시간, 달콤한 간식을 내어주며 다시 제대로 듣기로 했다. 어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너는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말이다. 아이는 동생 친구의 말에 크게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아이는 이미 하루가 지났기에 전날의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 주었다.
"OO 이는 내가 형인데도 계속 나한테 '쟤는~', '야야'라고 그래. 그리고 내가 만든 걸 옆에서 건들면서 이상하다고 놀렸어."
"그래서 속상했구나! ... 그런데 동생들 블록 망가뜨리고 어떤 기분이 들었어?"
"속이 시원했지."
아이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지만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미 인정하고 있었다. 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다음부터는 말로 해결이 안 되면 그렇게 화를 내기 전에 엄마 아빠나 주변 어른들에게 먼저 알려달라고, 도와달라 요청하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는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듣는 일인 줄 알았다. 너무 쉬운 일이라는 생각에, 상대방에게 소극적인 사람으로 비칠까 노심초사하며 할 말을 쥐어짜 보기도 했다. 하지만 듣고 나서도 내가 할 말부터 앞세우는 게 결과적으로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적어도 육아에 있어서는 그렇다.
제대로 들으려면, 말 뿐만 아니라 상대의 속마음까지 들어야하지 않을까. 듣는다는 것은 어쩌면 말하는 것 이상으로 적극적이고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말만 듣고 제대로 살핀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계속 '듣는 공부'를 할 수밖에. 아이들을 키우며 세상 도(道)는 혼자서 다 닦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