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들다

단풍처럼 사과처럼

by 혜일

폐렴으로 입원한 작은 아이는 여섯 명이 함께 쓰는 병실 안에서 밤새 울고 보챘다. 아이가 11개월이라 2인실을 찾았지만 병실이 부족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이는 수유를 해도 잘 먹지 않았고, 잠깐 자다가 다시 깨서 울음을 반복했다. 집 밖의 낯선 환경이 아픈 아이를 더 힘들게 한 것이다. 자고 있는 다른 환자와 가족들의 잠까지 깨울 수는 없었다. 아이를 안고는 로비로 나와 하염없이 서성였다. 며칠 간의 입원 생활은 꼭 세상과 우리를 격리시켜 놓은 듯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일이 내려앉은 눈꺼풀만큼 버겁기만 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다음 날 아침, 같은 로비에서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밤 사이엔 보이지 않았던 공원의 나무들이 단풍빛으로 곱게 물들어있었다. 비로소 눈이 부셨다.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고 마음껏 걷고 싶었다. 하지만 링거를 꽂은 채 내게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저 안에서 바깥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그 풍경 하나에 마음을 뉘인 채, 나는 아이와의 병원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11월, 베란다 밖으로 펼쳐진 단풍 풍경이 꼭 5년 전 병원에서 바라본 모습과 비슷했다. 그 풍경은 여전히 눈이 부셨고 무언가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함께 시간을 보냈던 친한 후배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온 가족이 자가 격리를 했다. 다행히 후배는 며칠 동안 집중 치료를 받으면서 차츰 회복되었다. 우리 가족은 밀접 접촉 대상자였지만 음성이 나왔다.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까지는 불이 번지지 않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백신 2차 접종을 하루 앞둔 날에 격리 통보를 받게 되었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지역구 북 페스티벌에도 참가할 예정이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소설가와 뮤지션이 나오는 북 콘서트를 코 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놓쳤다. 무더위 속에 끙끙대며 만들었던 책 소개 영상이 이 페스티벌에서 작은 상을 받았다. 하지만 시상식도, 상영회도 참석할 수 없었다. 내일 일에 대한 계획과 기대, 그리고 걱정마저도 격리 통보를 받고는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격리 생활을 하는 동안 할 수 없게 된 일들이 많았지만 집 안에만 머물렀기에 가능해진 일들도 있었다. 학교와 유치원을 가지 않아도 되는 아이들은 가을 방학이라도 맞이한 것처럼 좋아했다. 무엇보다 온종일 온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은 넘치지만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 모자랐다. 작은 아이가 태어날 무렵, 이직을 한 남편은 현재까지 주 5일 야근 모드를 이어오고 있는 중이었으니.



재택근무를 하던 남편이 방 문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작은 아이는 "아빠, 이제 퇴근했어?"라고 물으며 강아지처럼 졸졸 따랐다. 격리 기간이나마 저녁 6시 칼퇴를 지킬 수 있었던 남편은 이후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는 데 집중했다. 혼자였다면 지루했을 11일간의 격리 기간은 가족이 똘똘 뭉쳐 지낸 결과 수월하게 굴러갔다.





영화를 보고 빙고게임을 하며 하루 세 번 끼니를 나누는 사이,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드디어 격리 탈출! 쌓여있던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려고 아파트 1층 현관문을 나섰을 때였다. 사방에서 비바람이 치고 단풍잎들은 속절없이 나뒹굴고 있었다. 격리 기간 동안에는 날씨가 그렇게 맑고 좋더니. 가뜩이나 짧은 가을을 놓쳐버린 것만 같아 순간 허무한 마음이 일었다.



그때 현관 출입구 앞에서 아래층에 사시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큰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손자를 도맡아 키우고 계신다. 손자에게 작아진 옷을 우리 집 작은 아이에게 벌써 여러 번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손자를 얼마나 살뜰히 돌보시는지 이미 여러 번 입은 옷들이지만 얼룩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주머니네는 충주에서 사과 농장을 하신다. 마침 올 가을 마지막 사과를 따서 올라오신 길이라고 하셨다. 아주머니는 혹시 사과가 필요하냐고 물으셨고, 나는'마지막 사과'라는 말씀에 이미 마음이 동요했다. 작년에도 아주머니네 농장 사과를 맛본 기억이 있어 나는 삼 만원 어치를 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아주머니는 차 트렁크를 열어 내게 사과 상자를 보여주셨다. 갓 수확한 싱싱한 사과가 가득했다.



"고마워요. 괜히 부담 준 게 아닌가 몰라. 지금 비 오니까 내가 갖다 줄게요."



"아녜요. 작년에도 사과가 너무 맛있었어요. 제가 가지러 내려갈게요."





몇 시간 후, 아주머니는 양 손 가득 사과를 챙겨 들고 오셨다. 삼 만원 어치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양이었다. 덤으로 작은 사과가 가득 든 봉지까지 얹어주시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이번에도 쇼핑백 하나에는 손자가 입던 옷까지 가득 챙겨 주셨다. 삼 만원을 넣은 봉투를 드리기가 민망했다. 격리 생활을 끝내자마자, 나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들어와 거저 주신 사과 한 개를 먼저 먹어 보았다. 보기엔 작고 흠도 있었지만 당도가 엄청 높았다. 무엇보다 농장에서 갓 따온 사과답게 신선했고 향이 살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과부터 찾는 우리 가족이다. 당분간 사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연둣빛 풋사과가 노랗고 붉게 익어간 시간을 상상해 본다. 사과 하나에도 더위와 추위, 햇빛과 비바람이 갈마들었을*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상황도 늘 변화무쌍하다. 내 삶에도 예고 없이 갈마드는 일들에 희비가 엇갈리고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한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 맞다. 다만 대비하며 살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한계를 지니기에 한 치 옆에 있는 누군가를 챙기고 위로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마음을 함께 나누는 사이, 서로의 인생은 단풍처럼 물들어가고 사과처럼 익어갈 것이다.



* 갈마들다 : 서로 번갈아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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