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속에 구멍을 갖고 있지 않은가
'몬스테라'를 키우며
식물은 아름답지만 참 예민하다. 그것을 잘 몰랐던 신혼의 나는 욕심만 앞서서 화분을 '떼'로 샀던 경험이 있다. 살아있는 식물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러니 줄줄이 사들였던 화분 속 식물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햇빛과 통풍, 물 주기를 매일같이 신경 썼어야 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아이비나 트리안 같은 공기정화 식물들은 신혼집 창가와 선반 위에서 조용히 시들어갔다. 차츰 말라가는 화분 속 식물을 바라보며 나는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생명은 아무렇게나 키울 수 없다고. 작은 꽃화분이라도 관계를 맺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신혼집을 떠나, 첫 번째로 옮긴 집에서는 그래서 함부로 화분을 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3년 전, 결혼 후 두 번째로 옮긴 집은 유난히 앞 베란다가 컸다. 너무 휑해서, 나는 화분 하나라도 빨리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화분 하나'로 심사숙고해서 고른 식물은 바로 몬스테라라는 식물이었다. 어른 손바닥만큼 크고 진한 초록빛을 가진 몬스테라는 숭숭 뚫린 구멍과 찢어진 잎 모양이 또한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식물의 생김새 정도만 알았지 어떻게 자라는지 또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나. 화분이 도착했던 날, 잎 하나가 유난히 얇고 돌돌 말려 있어서 뭐 이리 시원찮은 것을 보냈나 생각했었다. 하루가 지난 뒤 그것은 나의 착각임을 알았다. 몬스테라는 특이하게도 연둣빛의 새 잎이 돌돌 말린 채로 나온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잎은 점점 펴졌고, 색도 진해지고 두께도 두꺼워졌다. 시든 것으로 잘못 생각했던 그 잎은 나중에 지름 20cm 정도로 쑥쑥 컸다.
몬스테라의 첫 번째 새순은 이사한 집에서 맞은 첫겨울에 돋아났다. 화분에 물 주기를 신경 써서 하던 참이었다. 몬스테라는 물을 많이 주면 줄기가 물러지고, 이파리가 갈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울을 보내며 식물의 잎 끝자락과 줄기 아랫부분이 이전보다 더 누렇고 갈색으로 변한 것을 관찰했다. 신경을 쓴다고 썼는데도 온습도가 맞지 않아서 그런가, 겨울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화분 키우는 것에 지식은 부족하고, 오며 가며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적잖은 근심을 했다.
그렇게 한 해의 끝을 보내고 새해를 맞은 1월의 어느 날, 나는 몬스테라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흙 위로 새로 난 줄기가 힘 있게 솟아올라있는 게 아닌가. 화분을 맞이했던 첫날 대면한 돌돌 말린 몬스테라 잎이었다. 그것을 본 아이들은 "엄마, 아가 잎이 태어났어!" 하며 화분 주위를 방방 뛰며 함께 좋아했다.
몬스테라가 새 줄기와 잎을 돋게 하는 일에 겨울 내내 참 많은 에너지를 쏟았겠구나 싶었다. 새 잎이 나오는 데 에너지를 몰아주느라 다른 잎과 줄기들이 그렇게 마르고 누런 빛으로 변해갔을까. 나는 식물도 산고를 겪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겨울, 새 생명을 틔워낸 몬스테라를 위해 한동안 아껴둔 식물 영양제를 가만히 꽂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몬스테라는 다행히 지금까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일 년이 넘도록 화분에서 새 잎이 돋아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몬스테라를 들이고 첫 해와 그다음 해까진 새 잎을 자주 구경했는데 말이다. 그 사이 몇 개의 잎들은 누렇게 변해 떨어지기도 했고, 아이들의 드센 발길질에 차여 가지가 꺾이기도 했다. 살아남은 가지들은 딱 세 줄기였다. 가지들의 방향도 중구난방, 그 모양새도 처음보단 볼품이 없어 보였다. 이제 더 이상 새순이 돋아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몬스테라는 성장을 멈춘 것 같았다.
그런데 며칠 전, 베란다에서 놀던 큰 아이가 고함을 쳤다. "엄마, 몬스테라 잎이 새로 나왔어!"
하던 일을 멈추고 화분 곁으로 바싹 몸을 붙여 앉았다. 사실 몬스테라에서 새 줄기가 나올 듯한 모습은 일 년 전부터 보였다. 어미가 자기 새끼를 업고 있는 모습처럼 그렇게 새 줄기는 기존에 나와있던 줄기 위로 돋아있었다. 그런데 이 상태로 멈춘 게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갔던 것이다. 하루 이틀 못 본 사이, 새 줄기가 끝까지 돋고 한 동안 잊고 있던 돌돌 말린 잎이 나와있었다. 하루가 지나자, 뽀얗고 반질반질한 잎이 활짝 펴졌다. 잎사귀 중간중간 숭숭 뚫린 구멍이 새삼 반가웠다. 그 특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새로 돋은 잎을 어루만졌다. 흙 속 뿌리 위로 이제는 네 개의 줄기가 서로 어우러져 있었다.
비좁은 화분 안에 가만히 뿌리를 내리고, 너는 수 년째 몇 번의 산고를 치렀는가. 소리 없이 생명을 틔워내는 식물이 슬프고 아름답게 보였다.
식구들을 떠나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 일상의 구석구석이 비로소 천천히 눈에 들어왔다. 이사 온 첫 해, 베란다에는 몬스테라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남편의 운동 기구와 아이들의 장난감, 그리고 빨래 건조대 등이 더해져 공간이 꽉 찬 느낌이다.
베란다를 바라보는 기쁨은 여전히 몬스테라를 통해서 얻는다. 맑은 날이면 이제는 좀 나이 들어 보이는 초록잎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채 햇빛을 쬐었다. 그 곁으로 보송하게 말라가는 아이들 옷에서 새물내가 났다. 만일 주부가 아닌 다른 일상을 살았더라면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음미하며 하루를 보냈을까.
문득 그 숭숭 뚫린 구멍은 어째서 그럴까 싶다. 벌레가 먹은 것도, 누가 일부러 뚫어놓은 것도 아닌데. 그 태생적인 생김새가 신비롭다. 찾아보니 몬스테라는 '사랑과 배려의 나무'라 불렸다. 직사광선에 약한 이 식물은 원래 울창한 열대림의 큰 나무 아래 드는 빛으로 서식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빛을 다른 몬스테라 잎에게 나눠주기 위해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다.
인간과 더불어 살고 있는 자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이런 다정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내 눈에는 하트 모양에 구멍 난 몬스테라 잎이 사람 마음처럼 보였다. 누구나 마음속에 구멍을 갖고 있지 않은가. 고독과 불안, 허무라는 이름의 구멍. 내 힘만 갖고서는 온전히 메울 수 없는 그 빈 공간. 남들 앞에 들키지 않으려고 감추고 살았던 마음속 구멍이 선명히 떠올랐다.
큰 아이가 어릴 적 쓰던 컵에 정수된 물을 가득 채워 몬스테라 줄기 주변으로 쏟아부어 주었다. 흙 사이로 꼭 '꿀꺽꿀꺽'하고 물 먹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