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체질이 아니라서

by 혜일

초등학교 6학년 때 일기장에 등장했던 교회 오빠가 있었다. 나보다 두 살 많았던 그 오빠는 짙은 쌍꺼풀 눈에 하얀 피부, 훤칠한 키에 잘 웃는 인상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외모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악기인 플룻까지 배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춘기 소녀의 살랑이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그 누구도 쓰라고 강요하지 않았던 일기를 밤마다 열심히도 썼던 나는 OO오빠를 향한 야릇한 감정과 함께 '나도 플룻이란 악기를 배우고 싶다.'는 바람도 나란히 적어놓았다.


당시 중학교를 준비하던 주변 친구들은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을 공부하는 보습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학원은 다 제치고, 엄마에게 슬쩍 플룻을 배워도 되겠느냐고 여쭈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 플룻을 가르치는 학원은 딱 한 군데였고, 그곳에선 OO오빠가 플룻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조심스레 여쭈었는데 엄마는 곧바로 그래, 배워. 하시는 게 아닌가. 요즘은 아이들이 취미로 다양한 악기를 배우는 것이 일상이지만 당시에는 플룻을 배운다고 하면 주변에서 다들 음악의 길을 걷느냐고 물어봤다. 플룻이 그만큼 흔한 악기는 아니었다.


음악인의 꿈같은 것은 1도 없었지만, 나는 OO오빠와 일주일에 한두 번 학원에서 마주치고 어쩌다 함께 간식을 먹는 순간을 고대하며 플룻을 배웠다. 칸칸이 나뉜 연습 방에서 삑삑거리며 플룻을 불다가도 이 오빠가 학원에 도착한 것을 감지하던 순간, 방 안에서 최대한 고운 플룻 소리를 내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그 뒤 플룻을 배운다는 이유만으로, 날라리 신자였던 나는 교회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서 그 오빠는 소프라노를, 나는 알토를 함께 연주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나의 큰 그림은 대략 이 정도로 무난하게 이루어졌는데 난감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역시나 플룻을 배운다는 이유만으로, 시 음악 대회에 학교 대표로 출전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솔로로 말이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는 플룻을 배우는 아이가 나 밖에 없었다. 아마추어 교회 오케스트라 안에서는 플룻은 들고만 있어도 폼이 나는 악기였다. 게다가 여러 악기들이 함께 연주되기 때문에 묻어갈 수 있었던 나는 이 악기를 사력을 다해 연습해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시 음악 대회 출전은 차원이 달랐다. 뭔가 학교의 명예 같은 것이 달려있다고 생각한 나는 어깨가 무거웠다. 대회를 위해 한 달 동안 플룻을 연습했다. 내가 준비했던 곡은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라는 클래식 음악이었다. 나는 연습을 위해 주중은 물론, 토요일까지 학원으로 달려갔다. 얼마나 달달 외웠는지 25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곡의 잦은 꾸밈음까지 생각이 난다.


대회에 출전하던 날, 막상 연주회장 안에서 플룻은 예사로운 악기에 불과했다. 호른, 콘트라베이스, 마림바 등 나는 음악 교과서에서만 보던 다양한 악기들의 실물을 접하며 기가 눌렸다. 다른 학교 아이들이 대기실에서 자신들의 악기를 튜닝하는 소리보다 두근대는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무대에 나가 연주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다. 이전까지 대회라고는 피아노 학원 정기 연주회 경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도 무대 체질이 아니다. 남 앞에 서서 무언가 보여주는 일을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내성적인 성향이다. 게다가 대회에 출전하기 전 날, 나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대회는 이틀간 진행되었는데 같은 학교 친구가 클라리넷으로 출전했다가 너무 떨어서 무대에 올라가 첫음절 '뿌-'소리만 내고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아 곧바로 퇴장했다는 것이다. 나라고 별 수 있을까. 두려움이 몰려왔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붙잡으며 기다린 끝에 내 순서가 되었다. 당시 피아노 반주를 맡아주었던 친구와 함께 무대 위에 조심조심 올랐다. 플룻을 안고 90도로 인사하자, 관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 심장도 터질 것 같았다. 연습하는 동안 플룻 선생님은 자기 실력의 70%만 발휘하고 내려와도 무대체질이라고 하셨다. 긴장한 내게 완벽하게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그렇게 에둘러 말씀하셨던 것 같다. 피아노 반주를 해주던 친구가 내 뒤에 있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지만 무대 위,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명 아래 관객들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관객들은 대부분 출전 학생들의 부모님이거나 학교, 학원 선생님 들이셨겠지만.


반주가 시작되고 '노래의 날개 위에' 첫 소절을 부는 데 마음이 계속 쿵쾅거렸다. 호흡이 떨리면 플룻은 거칠고 탁한 소리가 나온다. 플룻의 대명사는 맑고 고운 소리인데, 게다가 이 곡은 감미롭고 낭만적인 분위기인데. 어쩌지, 어쩌지. 머릿속에 저장된 음표를 운지하는 손가락이 떨렸다. 이대로 클라리넷 친구처럼 제대로 연주하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까.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폼나는 일들의 실상은 자기 몫의 책임을 오롯이 홀로 지는 일이었다. 선 고독, 후 명예. 그것이 무대였다.




그때였다. 관객석 중간에 앉아있던 누군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안경을 쓴 채 크고 동그란 두 눈은 무대 위의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 눈빛이 나를 안심하게 했다. 편안해졌다. 나는 그분을 계속 바라보며 연주했다. 떨리는 마음 때문에 흔들렸던 호흡이 가라앉고 거칠 뻔했던 플룻의 음색도 이내 맑게 터져 나왔다. 다른 학교 음악 선생님이었을까, 아니면 나처럼 대회에 나온 학생의 어머니였을까. 지금까지 알 수 없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그 여자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음악의 장단을 맞춰주었다. 거리가 멀었지만 나와 마주 보고 함께 연주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따뜻한 시선 때문에 나는 연습한 곡을 온전히 연주했고 무사히 무대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시선이 해보다 강하고 조명보다 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엄마, 엄마랑 선생님은 어디 계셨어?"


"응? 엄마 못 봤어? 엄마는 맨 뒤쪽에 있었지. 근데 관객석에서 널 보니 검은색 운동화가 더 크게 보이더라. 대회 나간다며 왜 교복에 운동화를 신고 갔을까. 다른 애들은 나비넥타이에 구두가 반짝거리던데. 옷이랑 신발 좀 신경 쓸 걸."


대회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엄마는 내가 연주하는 동안 신고 있던 검은 운동화가 신경 쓰이셨나 보다.


다음 날, 학교에서는 음악 선생님이 날 흡족하게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대회 결과, 나는 장려상을 받았다.


"중간 부분에 긴 트릴(꾸밈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아쉬웠지만! 그래도 잘 연주했어."

아주 높은음에서 낮은음으로, 계단에서 미끄러지듯 열 손가락을 모두 빠르게 움직여야 완성되는 고난도의 꾸밈음. 연습할 땐 해냈어도 무대 위에서는 손가락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까지 완벽히 체크하신 음악 선생님. 그리고 내 발 사이즈보다 커 보이는 운동화를 신경 쓰셨던 엄마와 무대 위에서 눈 마주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 조마조마한 마음들이 눈빛으로 새어 나왔다면, 그래서 연주하는 동안 내가 알아챘다면 나는 더 불안해졌을 것이다. 엄마, 왜요? 선생님, 왜 그러세요? 하면서.




무대 체질이 아니라서, 살면서 시선을 끌기보단 시선을 보내는 쪽이 맞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우선 무대 위에서 잘 알아볼 수 있게 관객석 중간쯤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인공을 바라보며 평가하고 판단하는 시선이 아니라, 그저 끄덕여주는 시선을 보내주고 싶다. 지금 무대 위에 선 사람은 그런 시선만이 간절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무대에서 고군분투한다. 그 무대에 서기까지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당사자가 아니면 모른다. 관객석에 앉아있으면서 나는 모든 것을 아는 양 심사위원 같은 눈빛을 보낼 때가 많다. 내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멀리 있는 가족과 이웃에게,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마음은 한 방향이 아닌, 양 방향으로 동시에 흘러나오는 것 같다. 말뿐만 아니라 눈빛으로도.


개학을 앞둔 큰 아이도 한창 구구단을 외우는 중이다. 1부터 9까지 순서대로 외우기 뿐만 아니라 9부터 1까지 거꾸로 외우는 과제도 있다. 아이가 외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속으로, 왜 이렇게 반복해도 못 외우지 싶었다. 그 마음이 내 눈빛으로 흘러나올 찰나, 얼른 내 입도 소리 내어 아이와 함께 외워본다. 순서대로는 쉽지만 거꾸로는 나도 쉽지 않다. 함께 해보니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당장 아이가 잘 외우는지 못 외우는지 판단하는 눈빛을 거둘 수 있었다. 대신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힘껏 구구단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날에, 두렵고 떨렸던 내가 발견했던 단 하나의 시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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