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kg, 2.5kg, 5kg...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늘어만 간다. 겨울 과일의 대표 주자, 귤을 사는 양이 말이다. 아이들이 길을 가다가 "귤이다!"를 외치며 과일 가게 앞을 지나치지 못할 때는 이제 막 귤이 나왔을 시기다. 하지만 그때는 한 바구니 정도 사는 것도 고민스러울 만큼 귤이 비싸다. 일 년 만에 각별한 친구를 만나듯 귤을 반가워하는 아이들 때문에 사주긴 하지만, 그야말로 적은 양에 맛만 볼 수 있다. 주부이자 엄마인 나는 호시탐탐 귤 값이 내려가기를 기다린다. 한, 두 주를 그렇게 기다리면 맛은 좋아지되 값은 부담 없어진 귤을 무게를 늘려가며 사게 된다.
귤 앞에서 통이 커지는, 그래서 귤을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11월이 좋다. 어째 공휴일 하루가 없는 11월은 열두 달 중 내게 가장 밋밋한 달이었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에, 무언가 시작하기에도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핑계대기 좋은 달이었다. 길거리에서 옷깃만 스치고 간 인연 없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의미 없이 지나쳐버리기 쉬운 달이 11월이었다. 하지만 소쿠리 위로 소담하게 쌓아 올린 귤을 보고 흐뭇해질 수 있는 11월이 이제는 좋다.
귤 하나는 마음껏 까먹을 수 있었던 내 어린 날도 좋았다. 추운 겨울, 어둑하고 서늘했던 창고 방 한편엔 늘 귤 상자가 놓여있었다. 귤 상자는 내게 노란빛 보물 상자였다. 귤 한 소쿠리를 다 먹고 나서도 나는 또 다른 귤을 찾아 창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릴 때 네 손가락이 노랬어. 하도 귤을 까먹어서."라고 엄마는 요즘도 말씀하실 만큼 나는 귤을 좋아했다.
지금처럼 별다른 간식거리는 없던 시절이었지만 귤 하나 만으로도 어린 내 몸의 비타민은 충분했다. 두 손 가득 귤을 집어 들고 나와 따뜻한 아랫목에 자릴 잡으면 세상 행복했다. 귤을 까며 노르께해진 손가락 사이를 킁킁대고, 노래진 혓바닥을 내밀고, 노란 오줌을 싸며 웃었을 것이다.
귤을 하루 종일 까먹을 수 있는 겨울 하루는 그렇게 노란 행복들로 가득했다. 그런 어린 내 모습이 좋아, 나의 할머니나 엄마는 귤 하나만큼은 10kg씩 상자 채 쟁여두지 않으셨을까. 많이 사 두어도 우리 집에는 귤 귀신이 있어 귤이 굴러다닐 일은 없다 생각하시면서 말이다.
우리 집 식탁 위의 작은 소쿠리도 뒤돌아보면 금세 귤 허물만 가득하다. 학교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순식간에 귤을 먹어치운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아이들 입엔 물리지 않는 맛이 귤 맛인가 보다. 어느 날은 귤 향기가 찌개 냄새를 압도할 만큼 진하게 느껴진 적도 있다. 하루 저녁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는데, 식탁에 앉아 귤을 까는 아이를 둘러싸고 그 향내가 주방 가득 풍겼다. 그 상큼함에 기분 좋게 갇히며 생각했다. 귤 소쿠리는 겨울 내내 식탁 위에 항상 두어야지.
사실 귤 맛이 좀 덜해도 아이들은 상관없이 잘 먹는다. 한 번은 매주마다 서는 집 앞 장터에서 아주 달지만 비싼 귤을 사 갖고 들어왔다. 과일 가게 아저씨는 자신에 찬 표정과 말투로, "오늘 들어온 이 귤, 맛없으면 전액 환불해 드릴게요!" 라며 내게 권하셨다. 어차피 사려고 했어요.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나는 배테랑 주부 흉내를 내며 "진짜 달아요?"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저씨는 "진짜라니깐. 먹어봐요." 하시면서 귤 하나를 건네주셨다. 귤은 진짜로 깜짝 놀랄 만큼 달았다.
일전에 산 귤이 크기만 컸지 영 싱겁고 맛이 덜했기 때문에 아이들도 나만큼 놀래며 맛있어할 줄 알았다. 나 역시 자신에 찬 목소리로 큰 아이에게 새로 산 귤을 먹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자기는 큰 귤이 더 맛있다며 그것만 먹었다. 아이들의 입맛이란 정말 아리송하다.
아이들이 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아이들 주먹 안으로 쏙 들어오는 귤은 어쩜 크기마저 딱 안성맞춤이다. 까고, 까고, 또 까고. 내어놓기만 하면 제 손으로 껍질을 까서 먹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문어 다리처럼 쫙 뻗은 귤껍질을 식탁과 소파, 거실 바닥까지 줄줄이 늘어놓는 재미(?)를 엄마인 나도 알고 있다. 좀 어질러지면 어떤가. 귤껍질이라면 봐줄 만도 하지 않은가. 작년 이맘때 똑같이 귤을 먹던 아이들이 일 년 새 많이 자라 있었다. 이제는 늘어놓고도 저희들끼리 엄마 눈치 보며 치울 줄도 안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나는 얼마나 고민했었나
동글동글한 귤 알맹이를 입 안으로 집어넣는 아이들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이맘 때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단골로 선곡하는 노래, 재주소년의 '귤'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발표된 해가 2003년도라니. 아니,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니.
지난겨울 코트 주머니에 넣어두고 먹다가
손에 냄새 배긴 귤
그 귤향기를 오랜만에 다시 맡았더니
작년 이맘때 생각이 나네
찬 바람에 실려 떠나갔던 내 기억
일 년이 지나 이제야 생각나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나는 얼마나 고민했었나
<재주소년 '귤' 중에서>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화를 내고 한숨을 쉬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 이제는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고민을 덜 하고 싶다. 대신 늘어놓은 귤껍질의 향내를 느긋하게 즐겨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 속에 여유라는 이름의 공간이 생긴다. 귤껍질의 수분이 마르는 동안 집 안 가득 그 향기는 퍼져나갈 것이고, 고민으로 울적했던 마음도 바싹 마르며 가벼워질 것만 같다.
식탁 위에 귤 소쿠리가 사라지는 시점이면 어느덧 새 봄이겠다. 길고 긴 겨울을 아이처럼, 귤을 친구 삼아 노란 행복으로 채워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