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인데

재주소년(才洲少年) '귤'(2003)

by 혜일

1kg, 2.5kg, 5kg...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늘어만 간다. 겨울 과일의 대표 주자, 귤을 사는 양이 말이다. 아이들이 길을 가다가 "귤이다!"를 외치며 과일 가게 앞을 지나치지 못할 때는 이제 막 귤이 나왔을 시기다. 하지만 그때는 한 바구니 정도 사는 것도 고민스러울 만큼 귤이 비싸다. 일 년 만에 각별한 친구를 만나듯 귤을 반가워하는 아이들 때문에 사주긴 하지만, 그야말로 적은 양에 맛만 볼 수 있다. 주부이자 엄마인 나는 호시탐탐 귤 값이 내려가기를 기다린다. 한, 두 주를 그렇게 기다리면 맛은 좋아지되 값은 부담 없어진 귤을 무게를 늘려가며 사게 된다.


귤 앞에서 통이 커지는, 그래서 귤을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11월이 좋다. 어째 공휴일 하루가 없는 11월은 열두 달 중 내게 가장 밋밋한 달이었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에, 무언가 시작하기에도 너무 늦은 것 같다고 핑계대기 좋은 달이었다. 길거리에서 옷깃만 스치고 간 인연 없는 사람들처럼 그렇게 의미 없이 지나쳐버리기 쉬운 달이 11월이었다. 하지만 소쿠리 위로 소담하게 쌓아 올린 귤을 보고 흐뭇해질 수 있는 11월이 이제는 좋다.


귤 하나는 마음껏 까먹을 수 있었던 내 어린 날도 좋았다. 추운 겨울, 어둑하고 서늘했던 창고 방 한편엔 늘 귤 상자가 놓여있었다. 귤 상자는 내게 노란빛 보물 상자였다. 귤 한 소쿠리를 다 먹고 나서도 나는 또 다른 귤을 찾아 창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릴 때 네 손가락이 노랬어. 하도 귤을 까먹어서."라고 엄마는 요즘도 말씀하실 만큼 나는 귤을 좋아했다.


지금처럼 별다른 간식거리는 없던 시절이었지만 귤 하나 만으로도 어린 내 몸의 비타민은 충분했다. 두 손 가득 귤을 집어 들고 나와 따뜻한 아랫목에 자릴 잡으면 세상 행복했다. 귤을 까며 노르께해진 손가락 사이를 킁킁대고, 노래진 혓바닥을 내밀고, 노란 오줌을 싸며 웃었을 것이다.


귤을 하루 종일 까먹을 수 있는 겨울 하루는 그렇게 노란 행복들로 가득했다. 그런 어린 내 모습이 좋아, 나의 할머니나 엄마는 귤 하나만큼은 10kg씩 상자 채 쟁여두지 않으셨을까. 많이 사 두어도 우리 집에는 귤 귀신이 있어 귤이 굴러다닐 일은 없다 생각하시면서 말이다.



https://youtu.be/KQF-6g-3-s4

1집 재주소년(才洲少年) - '귤'


우리 집 식탁 위의 작은 소쿠리도 뒤돌아보면 금세 귤 허물만 가득하다. 학교와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순식간에 귤을 먹어치운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아이들 입엔 물리지 않는 맛이 귤 맛인가 보다. 어느 날은 귤 향기가 찌개 냄새를 압도할 만큼 진하게 느껴진 적도 있다. 하루 저녁은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는데, 식탁에 앉아 귤을 까는 아이를 둘러싸고 그 향내가 주방 가득 풍겼다. 그 상큼함에 기분 좋게 갇히며 생각했다. 귤 소쿠리는 겨울 내내 식탁 위에 항상 두어야지.


사실 귤 맛이 좀 덜해도 아이들은 상관없이 잘 먹는다. 한 번은 매주마다 서는 집 앞 장터에서 아주 달지만 비싼 귤을 사 갖고 들어왔다. 과일 가게 아저씨는 자신에 찬 표정과 말투로, "오늘 들어온 이 귤, 맛없으면 전액 환불해 드릴게요!" 라며 내게 권하셨다. 어차피 사려고 했어요.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나는 배테랑 주부 흉내를 내며 "진짜 달아요?"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아저씨는 "진짜라니깐. 먹어봐요." 하시면서 귤 하나를 건네주셨다. 귤은 진짜로 깜짝 놀랄 만큼 달았다.


일전에 산 귤이 크기만 컸지 영 싱겁고 맛이 덜했기 때문에 아이들도 나만큼 놀래며 맛있어할 줄 알았다. 나 역시 자신에 찬 목소리로 큰 아이에게 새로 산 귤을 먹어보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자기는 큰 귤이 더 맛있다며 그것만 먹었다. 아이들의 입맛이란 정말 아리송하다.


아이들이 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아이들 주먹 안으로 쏙 들어오는 귤은 어쩜 크기마저 딱 안성맞춤이다. 까고, 까고, 또 까고. 내어놓기만 하면 제 손으로 껍질을 까서 먹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문어 다리처럼 쫙 뻗은 귤껍질을 식탁과 소파, 거실 바닥까지 줄줄이 늘어놓는 재미(?)를 엄마인 나도 알고 있다. 좀 어질러지면 어떤가. 귤껍질이라면 봐줄 만도 하지 않은가. 작년 이맘때 똑같이 귤을 먹던 아이들이 일 년 새 많이 자라 있었다. 이제는 늘어놓고도 저희들끼리 엄마 눈치 보며 치울 줄도 안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나는 얼마나 고민했었나

동글동글한 귤 알맹이를 입 안으로 집어넣는 아이들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이맘 때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단골로 선곡하는 노래, 재주소년의 '귤'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발표된 해가 2003년도라니. 아니, 벌써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니.



지난겨울 코트 주머니에 넣어두고 먹다가

손에 냄새 배긴 귤


그 귤향기를 오랜만에 다시 맡았더니

작년 이맘때 생각이 나네


찬 바람에 실려 떠나갔던 내 기억

일 년이 지나 이제야 생각나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나는 얼마나 고민했었나


<재주소년 '귤' 중에서>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화를 내고 한숨을 쉬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니 이제는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고민을 덜 하고 싶다. 대신 늘어놓은 귤껍질의 향내를 느긋하게 즐겨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 속에 여유라는 이름의 공간이 생긴다. 귤껍질의 수분이 마르는 동안 집 안 가득 그 향기는 퍼져나갈 것이고, 고민으로 울적했던 마음도 바싹 마르며 가벼워질 것만 같다.


식탁 위에 귤 소쿠리가 사라지는 시점이면 어느덧 새 봄이겠다. 길고 긴 겨울을 아이처럼, 귤을 친구 삼아 노란 행복으로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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