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이었다. 창 밖을 보니 어둠이 둘러싼 건물들 사이마다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풍경에 이끌려 김 서린 창 유리에 코 끝을 댔다. 잠시 하늘 빛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저기 드높은 아파트 건물들만 없었다면,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까. 바다 근처에 살지만 머릿 속엔 늘 상상 속의 바다가 존재한다. 칠흑의 하늘은 주홍빛과 경계를 허물며 점차 푸른 빛으로 변해갔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찬 공기에 잠이 확 깨었다. 아침 7시가 넘어서야 바깥은 천천히 환해졌다. 겨울 하늘의 황홀한 그라데이션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붉기도 하고 노랗기도 했다가 이내 푸른빛으로 변하는 하늘. 한 가지 색으로 정의할 수 없어 하늘의 색을 그냥 '하늘색'이라 부르나보다. 하지만 자연의 색은 모두 조화롭다. 태초에 창조주는 수만 가지 색 중에서 서로 마음이 가장 잘 맞는 색 두세 가지를 골라내 그라데이션을 만든 것일까.
아름다움,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은 어느 특정한 색 한 가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연의 색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꼭 다른 색과 함께 어울린다. 자연 속에서 만나는 색의 관계는 늘 완벽해서, 볼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탄복한다.
가을이 저물어가던 어느 날,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자연물 팔레트'라는 이름이 써진 종이 한 장을 가져왔다. 종이 위에는 9가지 색상으로 칠해진 동그라미 위에 역시 9가지 색깔의 나뭇잎이 붙여져 있었다. 연두, 초록, 진녹, 황토, 고동, 노랑, 주황, 다홍, 빨강. 아이는 유치원 근처 공원에서 찾은 나뭇잎들이라 했다.
저마다 다른 색깔로 물들여진 나뭇잎들을 한데 모아놓으니 오묘하고 신비로웠다. 아이가 찾은 색은 9가지일 테지만, 세상의 나뭇잎들은 더 다양한 빛깔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뭇잎 색깔이 이렇게 다양한데도 나는 왜 그것을 평소에 의식하지 못하고 살까. 자연의 색은 단번에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서서히 물들어가기 때문일까. 내 안에도 그렇게 다양한 빛깔의 내가 존재하겠구나, 그것이 당연한 것이구나 싶다.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 미술 시간, 사과에 털실과 단추로 얼굴을 꾸미고 있었다. 집에서 교실로 가져온 사과는 반은 빨갛고, 반은 연둣빛이었다. 어린 나는 얼굴이 빨갛게 되는 게 싫어 연두색 쪽에 눈, 코, 입을 만들어 붙였다. 연두색 얼굴을 한 사과에 폭신폭신한 털실로 한참 머리카락을 꾸미고 있을 때였다.
"사과는 원래 빨간데. 빨간 쪽으로 얼굴을 꾸며야 예쁘지!"
어느새, 내 책상 앞에 서계신 담임 선생님 말씀에 나는 당황했다. 그제야 미술 책에도, 주변 친구들의 것도 모두 빨간색 얼굴인 게 눈에 들어왔다.
"사과가 원래 빨갛다니요. 보세요, 선생님. 사과는 빨갛기도 하지만 연두색이기도 해요. 저는 연두색 얼굴이 더 좋아요."
이렇게 당돌히 말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 부끄러웠다. 수학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미술 시간에도 그렇게 답이 정해져 있는 줄 알았다.
사실 나는 색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내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동그랗고 작은 병에 담긴 포스터물감이었다. 크고 각진 나무 화구 박스를 열면 물감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잘 쓰지 않아 굳어있는 물감도 있었지만 좋아하던 색 물감은 그 바닥이 드러나 아끼고 아꼈다. 좋아해서 동이 잘 났던 색깔은 분홍빛 코랄색이었다.
당시 나의 장기는 학교 숙제로 포스터를 그리거나 표어를 만들 때, 밑바탕에 죄다 '그라데이션'을 넣는 것이었다. 우리말로는 '바림한다'는 표현을 쓴다. 주제가 뭐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포스터 그림에 썼던 색은 기억한다. 포인트가 될만한 부분에 원색의 빨강과 무채색 하양을 섞어 그라데이션을 넣었다. 두 가지 색깔의 경계가 보이지 않도록 붓질을 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색을 칠하다 보면 빨간색이 흰색이 되어가는 것인지, 흰색이 빨간색이 되어가는 것인지 헷갈렸다. 하지만 그렇게 물감으로 바림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다. 피부가 백자처럼 고우셨던, 중학교 미술 선생님은 내가 이렇게 색칠하는 것을 반기셨다.
색의 세계를 제대로 경험하기 시작한 것은 학원에서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배울 때부터였다. 중학생 때처럼 도화지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절 색을 가지고 놀던 기분을 다시 느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선택하고 조합할 수 있는 색의 종류는 어마어마했다. 다만 크게 깨달은 것은 이런 것들이다. 쓰고 싶다고 모든 색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색과 색의 관계를 잘 맺어줘야 아름다움도 자연스럽게 빚어진다는 것. 그래서 색을 배우며 색을 고르는 게 참 어렵다는 것을 더욱 깨달았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나 역시 여러 빛깔로 삶을 바림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한 가지 역할에 집중하기보다는 안팎으로 여러 가지 역할을 경계 없이 오갔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살면서도, 기회가 닿는 대로 일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며 성장하고자 했다. 하지만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았고, 마음은 육체보다 더 연약할 때가 많았다. 어른의 모양을 하고서도 내 안엔 아직도 미숙한 아이가 산다는 것도 심심찮게 마주치곤 했다.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해 확실한 것이 없고 애매하며 경계가 모호한 나. 꼭 어설프게 그라데이션해놓은 그림 같기도 하다. 그래도 믿는다. 이것도 나, 저것도 나, 모두가 나라는 것을. 그리고 다짐한다. 그 모든 나를 사랑할 것을.
새해에는 누구보다 내 안의 나와 가장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 단번에 뒤바뀌진 않으나 서서히 물들어가는 자연의 그라데이션처럼. 그렇게 천천히 여러 색들을 통과하고 변화하며 가장 나다운 나로 아름다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