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낮잠

by 엘피스

시골의 여름은 노곤하다.

그것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 점심 무렵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들일에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땡볕이 한창인 오후 3시 이전까지 시골의 골목은

사람들의 인적조차 드물다.


그 시간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정에 모여 ‘빨간 지붕 집 할매가 딸 보러 서울에 갔대’, ‘대추나무집 손주 봤대’ 등 못다 한 수다를 풀어놓거나 시원한 그늘 밑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동틀 때부터 뙤약볕이 뜨겁게 타오르기 전까지 바쁜 일손을 놀렸기에 몸은 천근만근, 여기에 점심 식사 직후라 배까지 두둑한 터라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란 매우 힘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수에 즐기는 낮잠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시골의 여름 한낮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대학 때 여름방학이면 무조건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고된 부모님의 일손을 돕기 위해서였다. 면사무소에 다니시며 작은 복숭아, 배 과수원을 일구던 아버지는 동트기 전에 일어나 과수원 일을 하다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7시 넘어 퇴근하셨다. 퇴근 후에도 옷 갈아입고 들에 나가 해가 져 어둠이 깔릴 때에야 돌 아오시 었다.


과수원은 참 손이 많이 간다. 봄이 오고 분홍빛 복숭아꽃이 피면 꽃적과를 했다. 가지마다 빼곡하게 꽃이 피면 가지 아래쪽으로 향하는 꽃들은 그대로 두고 하늘을 향해 피어 있는 꽃잎들을 손으로 일일이 따주는데 이것을 어른들은 꽃적과라 불렀다. 꽃이 진자리엔 어김없이 작은 열매가 맺혔다. 잔가지마다 빽빽하게 매달린 작은 열매들 중에 단연 돋보이는 좋은 녀석들은 놔두고 나머지 작은 열매들을 따 낸다. 보통 손가락 한 마디 정도 간격으로 아기 복숭아를 남겨둔다. 영영분을 좋은 열매에게 몰아주자는 전략이다. 이렇게 두 세 차례 적과가 더 진행된다. 그러다 보면 한 가지에 많아야 4-5개의 복숭아만 남겨두게 된다.


아기 복숭아가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자라면 이젠 봉지를 씌울 차례다. 병충해나 산새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다. 복숭아 하나하나 빠지지 않도록 해뜨기 전부터 봉지를 씌운다. 머리를 위로 들고 하늘을 보며 작업하는 게 태반이다 보니 목과 어깨가 빠질 듯이 아프다. 높은 곳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봉지를 씌워야 한다. 떨어질까 겁나 다리가 후들거리기 일쑤다. 봉지 씌우는 작업은 1주일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봉지를 다 씌우면 복숭아 과수원의 큰 산을 넘긴 것이다. 이젠 복숭아 열매들이 잘 자라도록 거름도 주고, 땅속 영양분을 빼앗아가는 잡풀도 제거해 주어야 한다. 아버지는 복숭아 단맛을 끌어올리고 품질향상을 위해 쌀겨를 복숭아나무 주변에 뿌려주었다. 그리곤 볏짚으로 복숭아나무 주변을 덮었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우리 집 복숭아 맛은 꽤나 유명했다. 가락동시장에서 아빠의 복숭아는 경매 1순위, 최상품으로 분류되었다.


복숭아 과수원일이 좀 한가해져도 엄마는 여전히 바쁘다. 고추밭, 콩밭, 팥밭, 깨밭 등 우리 집 1년 먹거리에 필요한 농사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 마당과 주변의 잡풀은 또 어찌 그리 빨리 자라는지.

점심 식사 후 엄마의 손길은 집 주변 잡풀들을 뽑느냐 분주했다. 우리가 점심 식사 후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여름 내내 반복해도 엄마만은 단 한 번도 다디단 낮잠에 빠져본 적이 없으셨다. 그런 엄마가 신기했다. 늘 어김없이 새벽 5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하루를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는 피곤하지 않을까. 엄마는 왜 낮잠이 안 잘까.

궁금함을 못 참고 엄마에게 여쭤봤다.


“엄마는 밥 먹으면 안 졸려?”

“낮에 잠이 안 와.”

“새벽부터 일했는데 피곤하잖아.”

“피곤하지, 그래도 들일도 있고 집안일도 많은데 엄마가 움직이지 않으면 누가 해.”

“집에 잡초 좀 있으면 뭐 어때, 가을 되고 겨울 되면 죽을 텐데. 그냥 자라 게 둬. 엄마 힘들잖아.”

“그럼 못 써, 사람 사는 집에 잡풀 무성하면 사람들이 욕해.”

“사람들 욕하는 게 뭐가 대수야. 엄마가 덜 힘든 게 낫지.”

“엄만 괜찮아.”


아버지는 마당 안에 자리 잡는 잡초 걱정을 덜어주려 잔디를 깔았다. 초록색 잔디를 깔면 잡풀이 올라와도 신경을 덜 쓰지 않을까 해서. 하지만 여든이 넘은 엄마는 여전히 잔디를 뚫고 올라오는 잡초를 솎아내고 있다.

여름의 달콤한 낮잠의 유혹은 엄마에겐 여전히 통하지 않나 보다. 아니, 넉넉지 않았던 살림살이가 엄마의 낮잠을 빼앗아 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낮잠을 모르는 엄마의 모습이 마냥 안쓰럽다.

엄마의 낮잠을 훔친 것 아마도 우리인지 모른다. 엄마의 고운 손에 굵은 마디가 잡히고 거칠어진 것은 우리 5남매 대학까지는 보내겠다는 엄마의 굳은 신념이 가져온 결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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