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소리가 두려운 날, 나는 내 마음의 날씨를 살핀다

by 푸른 꽃

가끔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스팸 전화 때문만은 아니다. 화면에 뜬 익숙한 이름 앞에서도 종종 주춤거린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을 보일 때, 전화 벨소리는 두려움에 가깝다.


물론 모든 전화가 버거운 건 아니다.

마음이 맞는 사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전화는 흔쾌히 받을 수 있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붙잡고 있어도 괜찮다. 계산 없이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도 되는 사람일 때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긴 통화를 하고 나서도 “자세한 이야기는 조만간 만나서 하자”는 말을 자연스럽게 건넬 수 있는 관계. 그런 통화는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정리해 주는 묘한 몰입감을 준다. 얼굴을 마주할 때보다 목소리에만 집중할 때, 오히려 더 깊어지는 대화가 있다.

하지만 긴 통화는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하루를 탄력 있게 보내고 난 뒤, 혹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아내도 괜찮을 만큼 체력이 남아 있을 때에야 가능하다.

대하기 어려운 상대나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는 문자나 카카오톡을 찾는다. 친밀도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가까운 이들에게는 카카오톡을, 공적인 관계나 거리감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온라인 소통의 장점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데 있다.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전화와 달리, 텍스트는 생각을 거르고 문장을 다듬을 여유를 준다. 말보다 조리 있게 진심을 전할 수 있지만, 기록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또 다른 긴장도 따른다.

흥미로운 건, 대화창 안에서도 상대의 미세한 기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언니와 카톡을 나누다 평소와 다른 서늘함을 느꼈다. 대화 끝에 언니는 무심한 듯 자신의 환갑이 그냥 지나갔음을 언급했다. 평범한 생일이 아니었기에 섭섭함의 무게도 달랐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길로 꽃집에 들러 꽃다발을 사고, 퇴근길 정체를 뚫고 구리에서 동탄에 있는 언니 집으로 달렸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꽃을 건네고서야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없고, 오는 전화조차 가려 받는 나를 보며 가끔은 스스로가 까다로운 사람인가 싶어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결국 내 마음의 날씨 문제다. 감정의 기복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발신자 표시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전화도 잘 걸고 오는 전화도 늘 쾌활하게 받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신기하다. 아마도 그들은 몸과 마음이 제법 단단한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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