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

음식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

by 푸른 꽃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세상 음식에 거부감을 느꼈다. TV에서는 맛 기행 프로그램이 연일 나오고 있었지만, 화면 속 음식들은 군침이 아니라 구역질을 불러왔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지만, 모래를 씹는 듯한 음식들을 사람들이 무슨 맛으로 먹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뱃속의 아이를 위해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어릴 적부터 먹어오던 엄마의 투박한 밑반찬만이 그나마 입에 맞았다.

특히 고기는 힘들었다. 출산을 하루 앞두고 힘을 내보겠다며 남편과 식당에 갔지만 남편마저 입덧을 한 것처럼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우리는 고기를 절반 넘게 남긴 채 돌아왔다.


태어난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의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듯, 유난히 고기를 좋아한다. 덕분에 지금 냉동실에는 여러 종류의 고기가 채워져 있다.


돌이켜보면 임신 중의 음식 거부감은 갑작스러운 변화였지만, 먹는 행위 자체를 불편해하던 마음은 이전부터 내 안에 뿌리 깊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은 사춘기 시절 좋아하는 친구 앞에서도, 연애를 하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먹는다는, 본능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먹는 모습을 보인다. 아니, 혼자 있을 때도 자주 무언가를 먹고 있다. 나의 본능에게 지나친 자유를 주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렇다고 맛을 좇는 미식가도 아니다. 내게 먹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내가 지향하는 삶은 필요한 만큼만 가볍게 먹고 자족하는 삶이다.


음식 앞에서 필요한 만큼만 취하려 애쓰듯, 인생이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도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인생은 나보다 힘이 센 괴물이라, 감히 이겨보겠다고 덤빌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불평만 하며 서 있을 수도 없다.


나무가 심긴 자리를 탓하지 않듯, 볕이 부족하든 비가 넘치든 주어진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다. 내 안의 허기를 다스리고, 허락된 만큼 조금씩 나아가는 일. 느리더라도 이 자리에서 꽃을 피워내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음식과 인생을 대하는 가장 성실하고 아름다운 태도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벨소리가 두려운 날, 나는 내 마음의 날씨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