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막연히 바란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일상의 즐거움이란 거창한 것일까. 어릴 때는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그늘 한 점도, 추운 겨울날 따뜻한 집안에서 함박눈이 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그 순간으로서 그저 즐거웠다. 당연한 듯이 여겨지는 작은 그늘과 아늑한 집안에서의 편안함. 여유의 의미에 더 가까울 있지만 내게는 분명 즐거움이었다.
어른이 된 뒤의 일상은 때때로 지루했다.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즐거움의 순간을 어릴 때만큼 느끼지 못하고 막상 그것이 내 앞에 놓여도 진심으로 즐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간 날들의 일기장을 보면 나는 늘 즐거움을 찾아 헤맨 것을 알 수 있다. 내게 그것은 외적인 것보다 내면이 충족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은 일상은 내게 그저 무의미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즐겁게 일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일이라는 것은 일 자체일 뿐이었고 주변의 것들로 인해 도리어 힘들기만 했다. 단순한 노동이면 오히려 나았을까. 무엇이 그렇게 얽히고설키었던지 퇴근할 때면 가슴이 늘 묵직했었다. 그 안에서 비롯되는 사람과의 갈등도 그 원인이었을 것이다. 도무지 즐겁지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행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여행이란 준비하는 과정부터 시작되니 말이다. 꿈꾸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마법이 펼쳐진다. 여행하는 매순간 흠뻑 빠질 수 있어 기분이 한껏 고조된다. 그러나 여행의 끝은 너무도 짧다. 아무래도 외적인 즐거움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면의 즐거움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막연히 바란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었다. 방황하다 찾아낸 그것은 글쓰기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무엇보다 꾸준히 쓰기를 원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일상과 나의 내면이 충만하게 될 것 같았다. 글쓰기는 내가 나로 존재하는 일,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혼자 글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목표와 나름의 강제성이 있어야 했다. 한때 매일 글쓰기를 도전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일상은 활기에 차 있었다. 규칙적인 글쓰기 덕분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하루를 꽉 찬 느낌으로 보낼 수 있다. 글의 완성도를 떠나 매일 쓴다는 것, 그저 그런 일상에서 찾아낸 나만의 유희,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이해진 지금의 나는 다시 몰입의 즐거움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