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에도 정체기가 있습니다
내 스스로에 대한 실망
모든 취미와 열정은 그렇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있다. 그러다가 조금씩 익숙해지며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이 지나가면 어느 정도 취미로 하는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일반적인 사람들 보다는 조금 더 잘하는 경지에 올라간다. 그런데 그러고나서 그 기간이 계속 지속된다면?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초반 처럼 실력이 빠르게 올라가지 않는다. 정체되고, 가끔은 오히려 이전보다 잘 안될 때도 있다. 스펀지처럼 배우는 것을 쑥쑥 흡수해서 커져나갈 때는 마냥 신났었는데, 물을 잔뜩 머금어서인지 아무리 물을 불어도 이젠 더 커지지 않는다. 오히려 잘못 힘주어 잡으면 흡수한 물 마저 주르륵 하고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댄스에서도 비슷한 시기가 찾아왔다. 처음 문화센터에서 배울 때는 너무나 초창기였고, 정말 운동을 신나게 춤추는 걸로 대신하는 수준인지라 정체기가 오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집 근처 댄스학원을 본격적으로 다니게 되고, 주 2회 댄스학원 중급반 수업을 듣기 시작한 지 2년 반이 되어가면서 정체기가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댄스학원을 가기 전에 연습도 좀 덜 하게 되었고, 가서 춤을 출 때도 이전만큼 열정이 넘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여태까지 해온 가락이 있어 아주 못 추지는 않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이어나갔지만, 발전하는 느낌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위기가 온 것은 코로나 때 였다. 코로나 자체가 직접적인 영향을 준 건 아니었고,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댄스학원에 대한 사람들의 걱정이 생긴 것이 시작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댄스 학원에 대한 염려가 있다보니 초반에 수강생이 많이 줄었다. 그러면서 중급반 수업에는 중학생 친구들 3명과 나만 나오게 되었다. (당연히 거리두기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수업을 진행했다)
이 중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춰온 친구들로 다들 댄스 실력이 상당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아이돌을 꿈 꿀 만큼 춤에 대해 욕심이 많은 친구도 있었다. 무엇보다 공통적으로 아이돌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모든 아이돌의 노래와 안무를 알고 있었으며, 관련 영상들을 거의 다 찾아볼 정도로 열정이 많았다. 그 전에는 이 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 중학생 친구들 세명, 그리고 성인은 나 혼자라는 비율의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 늘 그렇듯이 댄스 학원 선생은 새로운 안무 수업을 시작하면서 노래를 틀어주셨다. 아직 수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 친구들은 모두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 전에도 몇번 해 본 가수의 노래였다. 바로 ITZY의 'wannabe' 였다. 노래만 알고 있으면 괜찮았을 텐데, 이 친구들은 안무까지 전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이 노래를 방금 처음 들어본 참이었다.
댄스 수업은 놀랄만큼의 수준 차이를 보여줬다. 아예 새로운 노래를 전부 모르는 상황에서 배울 때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이들과 내가 함께 같은 노래를 배우는 것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평균 수강생의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 마련이라 그날 수업은 내게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그것도 3:1의 비율로 내 속도가 소수에 속하니 더 압박적이었다. 멘붕인 상태로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자괴감과 원망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렇게까지 나 혼자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어버버하게 수업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미리 모든 노래와 안무를 다 알아놓은 건지 중학생 친구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결국 그 차이를 따라잡지 못한 내 스스로의 실력에도 화가 났다.
다음 수업 시간에 학원을 가야하는 데, 너무 가기가 싫었다. 중학생들 처럼 ITZY 안무 영상을 열심히 보고 미리 처음부터 끝까지 예습을 하고 가면 되는 일이었다. 어찌보면 해답은 이미 나와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의욕이 없었다. 지금 한 곡이야 어떻게든 따라잡으면 되는 일이었겠지만, 솔직히 나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을 중학생 정도로 끌어올릴 순 없었다. 나도 많이 좋아했어서 그걸 더 잘 알았다. 나는 직장도 다녀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친정과 시댁의 가족 모임에도 참석해야 했다. 내 나이 또래 직장인들 중에서는 아이돌 댄스에 열정이 많은 편에 속하지만, 중학생 열정의 정도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미 그럴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보고 연습 해야하는 데, 앞으로도 계속 그 정도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했다. ITZY 노래도 듣기 싫어졌다. 고민끝에 댄스 학원 선생님께 이번 곡은 넘기고 다음 곡부터 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사실 몰래 다른 학원도 알아봤다. 성인이 위주가 되는 댄스 학원을 다니면 해결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화도 해보고 시간표와 가격까지 물어봤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의 동네에는 없었지만, 지하철 한 두 정거장 거리에서는 갈 수 있는 댄스 학원들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니 내가 왜 집 근처 코 앞에 있는 댄스학원을 못 가야 하는지 억울하고 황당해졌다. 내가 왜 댄스학원을 가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건지, 중학생들이 댄스를 미리 알고 있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님에도 괜히 원망스러웠다. 지금 다니는 학원을 가기에는 부담이 있고, 다른 학원을 가는 건 내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남탓을 하며 보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징징거린다고 해결되는 게 있나. 결국 이 모든 문제는 내가 댄스학원에서 기대한 것 보다 스스로의 진도와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방법은 결국 하나였다. 꼭 중학생 친구들 만큼 해야겠다는 부담은 버리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더 하면 되는 거였다. 내가 만족할 수 있고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까지를 목표로 잡기로 했다. 그 이후로 댄스 곡이 정해지면 학원을 가기 전에 최소 10분에서 최대는 한시간까지 미리 복습과 예습을 했다. 일상에서 많은 시간을 안무 습득에 보낼 수는 없어도 최소한 댄스 학원에 가기 직전에는 왠만한면 일정을 빼 놓고 연습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미리 예습을 하고 가면 학원에서 느끼는 진도의 부담감이 훨씬 덜했다. 부담감이 덜어지니까 자신감도 생겼고, 이전만큼 중학생 친구들의 미리 알고 있는 안무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내가 할 수있는 범위 안 에서 노력을 했다는 것이 큰 차이였다.
그 때 느꼈다. 취미에도 노력은 필요하다고. 물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나에겐 큰 깨달음이었다. 나는 그 전까지 취미를 생각하면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즐겁고 재미있어서 시작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취미도 어느 선을 넘어서서 유지하려면 즐거움이 사라지고 노력을 해야하는 시기가 온다. 내가 취미를 꼭 스트레스 받아가면서까지 해야하나? 라고 지레 포기해 버렸다면, 댄스학원을 그만두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미여도 어느 기간 이상을 지속하고, 진지하게 단계를 올리고 싶다면 결국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가 온다. 나는 노래를 들으며 춤을 추는 것에도 고비가 찾아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삶의 많은 부분들이 그렇지 않을까. 달콤한 사랑의 기대로 시작하는 결혼생활, 미래에 대한 희망에 부푼 유학, 새로운 경험을 위한 여행들까지. 마냥 신날 것 같은 일에도 정체기가 있다. 다 하기 싫고, 관두고 싶어질 때. 좋아해서 하는 일이라도 때로는 그저 버텨내야 하는 시기가 있다는 걸 기억하면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