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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Sep 05. 2022

임원들의 신박한 가르침(2)

 나의 대리 진급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된 상무님과 1:1 티타임 자리에서 갑자기 내게 물으셨다.


 "OO아, 너 누가 팀장 되는 줄 아니?"


 "일 잘하고 리더십 있는 사람이 되겠죠."


 모범 답안이다. 사실 속으로는 단순히 일 잘하고 사람 좋아서 리더로 발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만한 연차였다.  


 "아니지. 아니란 거 너도 알잖아?"


  이어지는 익살스러운 질문에 어차피 회사에서 본심 숨기기는 애저녁에 글러먹었었던 나는 대답했다.


 "라인 잘 타야죠. 물론 운도 좋아아겠지만."

 

 '자 이제 원하는 답을 했으니 됐죠?'라며 회심의 미소를 날리자,


 "땡! 틀렸어."


 장난스러운 말투와 달리 표정은 웃음기 하나 없이, 눈빛이 깊어지셨다.


 "표면적으로는 네가 말한 것들이 맞긴 하지. 실력, 운빨, 평판 그런 것들. 근데 진짜 비밀은 말이야. 잘 들어라. 너한테만 특별히 알려준다."


 또 무슨 흰소리를 하시려고 이렇게 바람을 잡나 싶었는데 집무실 안에 흐르는 분위기는 제법 진지했다.


 "사실은 사람들한테 호불호가 없어야 해. 한마디로 무색무취. 그런 면에서 너는 탈락이야."


 당사자를 면전에 두고 '탈락'이라고 말하시니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 할지 주춤하던 찰나, 말을 이으셨다.


 "팀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 인사팀과 관련부서 임원들이 회의를 하지. 외부에서 채용할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올릴 경우에. 그럴 때 회의 테이블에서 팀장 할만한 애들 이름이 쭉 거론되는데 그중에서 팀장으로 낙점되는 애들은 니들이 소위 대세라고 말하는 뻔한 애들보다 의외인 애들이 되는 경우가 있지. 너 생각해봐라. 차기 팀장으로 거론되는 능력 있는 애들 중에서 물먹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잖아. 그건말야 백이면 백, 호불호가 강해서 그래."


 '오호~' 갑자기 상무님의 말씀에 귀가 쫑긋 세워지더니 천기누설 비밀을 듣는 것처럼 곧바로 자세를 가다듬게 되었다.


 "이번에 ㅁㅁ을 팀장 키면 어떨까요? 해봤자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ㅁㅁ이는 일은 잘하는데 너무 와일드하지.' 하거나 '일은 잘하는데 파트원들한테 그다지 신뢰받지 못하는  같은데?'라고 누구 하나 말을 보태는 순간 아웃이야. 일은  잘하지. 그러니까  정도 직급까지 다들 올라오지 않았을까? 그런데 올라오면서 일이든 회사 생활이든 잡음이 있었던 애들은 반드시 뭐라도 말이 나오게 돼있어. 그러면  반대표를 누를 아주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다들 고만고만하고 슈퍼맨이 아닌 이상  정도 능력들은 다른 애들한테도  있거든. 그래서 밀어붙이기가 힘들어."


 흥미로운 표정과 나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자 잠시 숨을 고르시고는,


 "그런데 의외로 그냥 무색무취인 애들 있잖아. 적당히 연차도 되고 일도 적당히 하는 애들. 그런 애들은 거론되면 '호'도 없지만 '불호'. 즉, 깔 이유도 없는 거야. 그러니까 두루두루 적당한 선에서 잡음 없는 그런 애들이 최종적으로 팀장으로 발탁되는 거지. 인사 발령 나면 다들 'oo도 아니고 ㅁㅁ도 아니고 XX이가 팀장이라고?' 이러면서 놀라게 하는 애들 꼭 한 둘씩 껴있지 않냐? 이런 케이스지."


 속으로 '허! 이거 새로운데?'라며 예상치 못한 말씀에 한층 흥미가 돋았다.


 "그러니까 너도 조심하란 말이야. 너도 사람들한테 호불호가 강한 편이니 그게 언젠가 발목 안 잡히게 조심해. 성질도 좀 죽이고. 너 따르는 선배나 너 좋다는 후배들 많은 만큼 네 이름이 나중에 리더 테이블에서 나오면 반드시 한 마디씩 반대 의견 보태는 사람들 있다는 거 명심해라. 기억해. 리더가 되러면 성과 달성하는 것만큼이나 조직 생활에서 스크래치 안 나게 집중해. 항상 조심 또 조심해라. 오늘의 면담은 끝! 나가봐!"


 라며 말씀을 맺으시는데 그대로 순순히 물러날 수 없었던 나는


 "리더 안 하고 싶으면요? 제가 팀장 안 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힘주어 응수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중간에 회사 그만둘 수도 있고. 그런데 적당한 때 올라가지 못하고 남아있으면 팀에서 그런 너를 가만 놔둘까? 알잖아. 회사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거. 물론 자존심 같은 거 버리고 만년 과장이나 부장으로 있을 수도 있겠지. 근데 그게 네가 앞으로 진짜 원하는 조직생활의 미래인지는 잘 생각해봐라. 빨리 나가. 나 회의 있다."


 상무님 방을 나와 자리로 돌아와 평소처럼 일을 하고 퇴근 버스를 탔다. 벌써 어둠이 내려 흔들리는 차장에 내 얼굴이 고스란히 비쳤다. 상무님의 말씀이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흰소리인 것 같기도 하여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최근에 임원 진급을 목전에 둔 사업부장님은 요즘 누구보다 엄격한 회사 생활을 하고 계시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개인적인 용도는 물론이고 절대로 십 원 한 장 허투루 법인 카드를 쓰지 않으시며 신입사원들보다 철저한 근태 관리에 집중하고 계시다고 사내에 소문이 자자했다.

 

 조직에서 리더로 발탁되고 싶다면
어떤 탈락의 빌미도 제공하지 말아라.


 소문의 주인공이 보여준 행보는 상무님이 말한 논리와 일맥상통했다. 반면 임원 후보로 거론되면서 몹시 들떠 계셨던 분들이 떠올랐다. 주변에서 '이번에는 반드시 될 거라고' 낙관적인 말을 보탰고, 본인이 생각해도 올해 성과가 나쁘지 않아 내심 기대를 하시는 눈치였다. 그런 분들은 유난히 걸음걸이가 당당해졌고 목소리는 커졌으며, 업무 시간에 자주 자리를 비웠다. 아끼던 후배들을 모아 따로 저녁 식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자리에 '어느 팀에 누가 참석했다더라.' 같은 뒷말들이 따랐다. 안개처럼 무성한 소문 끝에 정말로 임원 자리에 오르신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패를 까보면 의외로 쓰디쓴 탈락의 고배를 맛본 분들이 더 많았다. 팀장 임명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구나 인정하는 대세 중의 대세. 조직 내 에이스라 칭송받는 분들이 탈락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리더 발탁은 호불호가 강한 사람보다
오히려 무색무취한 사람이 유리하다


 리더가 되고 말고를 떠나 조직 내에서 '무색무취'인 존재가 되는 것이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인가?라는 의문에 나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젓는 쪽이다. 그렇다면 '나는 결국 아웃인가?' 싶어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나의 전 직장에서 동기들은 올해 벌써 부장 진급을 앞두고 있다. 각 회사별로 요즘 직급을 없애고 수평적인 소통 문화를 만드는 것이 대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리더'들은 존재한다. 우리 동기들 중 누가 부장으로 발탁되고 또 조직에서 리더로 지목을 받을까? 잘 모르겠다. 사원 일때부터 동기 중에 '리더감'으로 점찍혔던 것 같은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일도 잘하고 평판도 나쁘지 않았지만 상무님 말씀처럼 진짜 '스크래치'들도 많이 났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긴 시간 경쟁상황에서 완전무결의 존재가 되긴 불가능하니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면 그 때 상무님의 가르침이 일부는 옳고 일부는 틀렸다.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강한 호불호를 가지고도 리더가 되었고, 반대로 누군가는 무색무취인 존재로 조직 생활을 하다가 아예 존재감이 지워져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기억을 기록해 두는 것은 대리까지 달고 조직 생활에 대해 이제 알만큼 알만한 연차가 되었다고 자만했던 내게 새로운 관점의 생각들을 불러일으켰던 나름의 신선한 가르침이어서랄까.


 회사를 오래 다닐 수록 조직 생활에 대해 다 알 것도 같기도 하고 여전히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랭이인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인사 개편과 승진 발령이 시즌이 돌아오면 여전히 생각이 참 많아지고 조직 생활이 어렵게 느껴진다. 언젠가 통달하는 날이 오겠지? 통달이 아니라 해탈을 꿈꿔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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