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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Aug 02. 2020

아랫사람에게도 예의를 지켜주세요.

남의 집 귀한 자식입니다

 나의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중 한 분은 반 아이들에게 일과의 시작과 끝, 조회와 종례 때마다 입버릇처럼 '예의를 지켜라'라고 말했다. 귀에 딱지가 않도록 봄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내내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1년 내내 부르짖던 그놈의 '예의 타령' 은 나를 포함 반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1도 행사하지 못하고 공허한 메아리처럼 공중분해됐다.


 그렇다고 우리가 스승에 대한 기본 예의를 지키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가 말하는 예의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지켜야 하는 예의'만 포함되고 정작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는 해당 사항이 없다는 것을 그분의 평소 태도에서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에 그놈의 '예의 타령'은 반 아이들에게 전혀 무게감을 가지지 못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선조들의 말처럼 예의는 기본적으로 '쌍방'이 포인트다. 하지만 조직 내에 내가 경험한 상황들은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 예의'였다. 그 옛날 '우리 서로 예의를 지킵시다'도 아니고, 백 번 양보해서 '예의를 지켜주세요'도 아니고, '(니들이 나에게) 예의를 지켜라'라고,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부터 명령형 어미를 구사던 담임 선생님의 사고방식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팀장에서 팀원들에게, 선배에서 후배들에게 흐르던 일방 예의. 요즘 화두가 되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사내 갑질'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꼭 짚어서 표현하긴 애매하지만, 일종의 '예의 없음' 혹은 '무례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가령 내가 경험한 상사 A는 조직 내에서 악바리로 통하며 어떤 일이든 기필코 성과를 내는 것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회의 중 팀원들의 말을 중간에 툭툭 자르는데 선수였고, 본인보다 직급이 낮은 아랫사람들과의 회의 시간은 늘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늦으면 조금 늦는다고 언질을 주는 것도 아니어서 번번이 약속한 회의실에서 하염없이 사람들을 대기하게 하거나, 5~10분 늦게 나타난 것도 엄밀히 늦은 것인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저 본인보다 아랫사람들은 팀장이자 연장자인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 언제든 대기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가장 최악은 보고를 마쳤을 때,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없이 하는 손짓이었다. '수고했어요' 또는 '이제 그만 자리로 돌아가세요'라는  한마디 없이 '   봤으니 이제 그만 꺼져' 내포하듯, 부하직원들을 마치 벌레를 쫓듯이 허공에 손을 휘이휘이 저으며 자리로 돌아가라 손짓했던 그녀. 이게 참 직접 당해봐야 기분이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는데 막상 글로 표현하려 하니 내 부족한 필력으로 그 무례하고 예의 없는 제스처를 고스란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 외에도 당사자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하루아침에 이제까지 해왔던 포지션과 전혀 다른 직무로, 타 부서 전배라는 엄청난 사실을 발령 당일에 갑자기 통보하던 상사들. 아무리 실수를 했다 해도 다 큰 성인을 굳이 다른 사람들이 다 있는 오픈된 공간에 세워두고 큰 소리로 질책하며 모욕감과 수치심까지 얹어주던 선배들. 아무리 후배에게 맡기는 업무 지시 메일이라지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도, 혹은 말미에 '감사합니다. (이름 석자)드림' 같은 기본 인사 매너도 없이 반말로 찍찍 포워딩되던 메일들. 셀 수도 없는 무례함에 나의 감각이 무뎌질 만 하지만 타고난 기질 때문인지 상대가 누구든 나는 매번 '윗사람의 무례함'에 매번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윗사람의 '예의 없음'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거나 개선 요청을 하면 여지없이 나는 오히려 '예의 없는 아랫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꿋꿋이 투사처럼 지치지 않고 싸워나갔는데, 몇 년에 한 번 꼴로 '무례한 윗사람'들은 죽지 않는 좀비들처럼 계속 나타난다. 억울하면 내가 출세하고 높히 올라가는 방법뿐이지 싶은데 이건 피라미드 최정점인 CEO 자리까지 꿰차지 않는 한 대기업에서 '무례함 바이러스'는 코로나처럼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총칼을 내려두고 투항의 백기를 흔들며 이렇게나마 읍소의 메시지를 외쳐본다.



 "제발, 아랫사람들에게도 예의를 지켜 주세요.

  내 자식한테 누가 그렇게 무례하게 군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들 남의 집 귀한 자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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