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 언니 Aug 09. 2020

브런치에 왜 유독 퇴사 관련 글이 많을까?

남들 다 하는 퇴사_프롤로그 

남들 다 하는 퇴사 


 어떤 일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을 테니까, 일단 어딘가 입사했다면 퇴사는 피할 수 없다. 그저 사람에 따라 각자 들어가고 나오는 시점이 다를 뿐. 나도 8년을 조금 넘게 다닌 첫 직장을 작년에 퇴사했다. 10년은 채워야 어딜 가서 명함이라도 들이미는데 손색없을 듯하여 조금 아쉽긴 하지만, 나에게 8년의 세월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랫동안 특정한 조직에 소속된 시간이었다. 그렇게 20대 중반 발랄한 꽃청춘에 입사해 누가 봐도 사회생활 풍파 좀 맞아본 30대 중반으로 퇴사했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추 2개월이 조금 넘었다. 그동안 운 좋게 내가 쓴 글 몇 편이 다음 메인에 노출되어 분에 넘치는 관심과 조회수를 얻었다. 내 개인 SNS를 개설 이후 방문한 사람 수 전체를 합친 것보다, 짧은 기간 동안 기록되는 폭발적인 조회수를 보며 사실 난 속으로 잔뜩 겁을 먹었다. 그저 넋두리 같은 내 글을 다른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재밌다고 말해주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지만, 동시에 속으로 '이러다가 (전 직장/현 직장) 회사에서 필자가 나인 것이 알려지면 어떡하지?' 란 조마조마한 마음을 새가슴처럼 품고 다녔다. 


 쫄보지만 틈틈이 다른 사람들의 글들을 감상하며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브런치에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주로 브런치 홈에 소개되는 글들을 간간히 읽는 편인데, 자주 들락날락하다 보니 유독 빠지지 않고 꼭 1-2편씩은 소개되는 글 주제가 바로 '퇴사'였다. 내 발로 박차고 나온 것 치고는 여운이 참 길었던 첫 퇴사 이후, 어딘가 허무하고 쓸쓸했던 마음과 미래에 대한 불안, 걱정까지. 고스란히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던 글들이 참 많았다.  


 퇴사자들은 왜 브런치에 글을 쓸까? 


 봉인 해제. 쉽게 말해서 드디어 봉인 해제가 돼서 그렇지 않을까? 나 역시 재직 시에도 몇 번이나 브런치에 글을 써보려 노력했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아 차마 써놨던 글들을 최종 발행하지 못했다. 재직하던 회사의 비리나 부정, 핵심 사업 비밀들을 줄줄이 적어놨을 리 만무하다. 내가 그런 고급 정보를 알 리도 없고, 고작 조직 생활을 하는 일개 월급 개미의 개인적인 애환이나 소회, 후회나 통한을 솔직하게 적은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아무리 업무 시간 외, 퇴근 후 취미 생활이라 하지만 근로 계약에 묶인 엄밀한 '내부자'였던 나는, 지극히 개인적인 그 어떤 생각들도 함부로 세상에 내보일 수 없었다. 퇴사 이후, 드디어 내부자에서 벗어나 완전한 '외부자'가 되어서야 마침내 봉인 해제된 것처럼 자유롭게 글들을 발행할 수 있었다. 근로 시간 외 퇴근하면 남이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뭘 그렇게 쫄아? 싶겠지만 사시사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곳이라 재직 당시에는 사실 그 어느 순간에도 회사를 내 삶에서 완벽히 분리하긴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브런치에 유독 퇴사자들의 퇴사 관련 글들이 많은 이유가. 아마 나처럼 드디어 자유를 얻은 수많은 동지들이 그동안 참고 속으로만 삭혔던 감정들을 마침내 브런치에 사정없이 쏟아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전 직장을 나선 지 이제 고작 6개월 만에 벌써 나도 지난 8년의 시간들이 머릿속에서 흐려진다. 퇴사하면 꼭 써야지, 꼭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지 수없이 다짐했던 생각들조차 어느새 기억이 옅어졌다. 더 늦지 않게, 더 까먹지 않게 기록해두자. 그것이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고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너무 아프지 않길,

 

 퇴사도 사실은 이별이다. 그리고 과거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는 지난 이별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회사를 나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보냈던 내 시간들과 이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이별이다. 이별은 아름답든 추했든, 헤어짐이고 슬프다. 

 

 앞으로 '남들 다 하는 퇴사' 시리즈를 새롭게 써보며 퇴사에 관한 내 이야기를 드디어 본격적으로 오픈하려 한다. 쓰면서 혼자 눈물바다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한 번은 속 시원히 털어버려야 그간의 응어리가 풀릴 것 같다. 어쩌면 '개인의 속풀이용'이니,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마음처럼 아무도 봐주지 않고 혼자 남기는 기록으로 남아도 상관없다. 그리고 너무 무겁고 아픈 이야기만 남겨지지 않도록, 지난 시간 동안 분명히 즐겁고 소중했던 기억들도 꼭 잊지 않고 함께 남겨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랫사람에게도 예의를 지켜주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