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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Mar 14. 2021

휴식, 인생에서 가당키나 한 것일까?

04. 기념품

 틈날 때마다 집안 구석구석 조금씩 뭉쳐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며 삶의 다양한 부분들을 간소화하는 중이다. 미니멀리즘을 실현한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저 틈날 때마다 지금, 혹은 미래에 정말 필요한 것과 더 이상 쓸모를 다한 것들을 구분 짓고 효용을 다한 것을 가져다 버린다. 그러다 보면 종종 휴가지에서 사 온 기념품들을 발견한다. 뭐 대단한 것들이라고 이렇게 사모았으며, 여태까지 바리바리 싸 짊어지고 있었을까.


 면면히 하나씩 살펴보면 딱히 값나가는 물건들도 아니다. 딱 휴양지에서 파는 기념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살짝 조악한 느낌을 물씬 풍기는 것들이다. 그나마 마그네틱류는 냉장고 한 구석에서 장식품으로라도 사용하고 있지만 언젠가 읽은 기사에서 냉장고 표면에 마그네틱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이 냉장고 기능에 좋지 않다고 해서 그마저 이제 멈췄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휴식을 위한 휴가를 떠난 적이 있던가? 위암 수술을 하고 긴 시간 회복을 위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이런 것이 정말로 '쉼, 휴식'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지난 10여 년의 직장 생활 속에 내가 떠났던 휴가들은 쉼이나 휴식이 아닌 그저 '일상으로부터의 필사의 탈출'이었던 것 같다.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기 전까지는 나는 1년에 1번, 일주일 이상의 휴가 기간 동안 부지런히 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운대가 맞아 동행이 가능한 이가 있으면 같이 떠났고 여의치 않으면 혼자 떠났다. 동선을 고려해 시간 단위로 치밀한 계획을 미리 세워 떠났던 적도 있었고, 별생각 없이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 뒤면 착륙할 도시에 대한 관광 책자를 성급하게 뒤지며 허술한 계획을 세웠던 적도 있었다. 낯선 곳에서 색다른 경험들은 늘 예상치 못한 결과를 수반 했다. 그동안 쿵작이 잘 맞아 소울메이트라 여겼던 친구와 하루아침에 철천지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돌아오기도 했고, 좋은 마음으로 떠났던 가족여행이 하루라도 빨리 귀국해 내 집에서 그저 두 발 씻고 자고 싶은 최악의 여행이 되기도 했다.


 지출은 또 어떻고. 아무리 가성비 좋은 여행이라도 기본적으로 '외국 여행'은 최소 백만 원대 이상의 목돈이 한꺼번에 들었다. 충동구매의 달인이자 '멋'과 '미'를 한창 추구했던 과거의 나는 현지에서 과감한 소비들을 단행했고 늘 염두에 두었던 여행 경비를 초과해 지출했다. 휴가에서 돌아온 나를 보고 '잘 다녀왔냐'는 후배의 살뜰한 안부 인사에 '나는 잘 왔는데, 내 카드값은 아직 못 왔어. 아마 다음 달에나 귀국할 모양이야'라고 울상 짓고 농담하기 일수였다. 물건 소비만큼이나 '경험 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나는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남들 한다는 건 다해봐야지. 여기 또 언제 올지 모르는데'라는 마음으로 색다른 체험들, 이국적인 음식들에도 지갑을 활짝 열었다.  


 돌이켜보면 물건을 사든, 무언가를 체험하든 나는 항상 휴가지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렸다. 아마 동행들, 혹은 가족들과의 여행지에서 불화도 그런 조급한 마음에 기저에 깔린 , 낯선 곳에서 무언가 계획이 어긋나면 갑자기  신경이 곤두서 마음속에서 뾰족한 가시가 돋아났고, 그것이 상대를 할퀴고  스스로도 내상을 입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느슨하게 계획을 세우고 떠나도 휴가지에서 휴식은 머나먼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내게 휴가란 '일상에서의 필사의 탈출' 가까웠고, '리프레쉬' 역시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이었으며, 오히려 물질적 보상들에 집착한 시간들이었다.


 그 집착의 산물들이 바로 지금 내 집 한 구석에서 먼지 덩어리를 쌓은 채 발견되고 있다. 증거라고 하기에는 좀 과한 느낌이 있지만, 그동안 그토록 사모았던 기념품들은 내게 일종의 '휴가의 증거품' 들이다. 휴식은 일단 모르겠고 일단 그곳에서 다녀왔으며, 그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어찌됐던 간에 내가 잠시나마 일상을 탈출을 했다는 증거들. 그런 증거품들을 지금 당장 쓸모가 없다고 처분해 버리려니 영 망설여진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보면 사건이 종결되어도 일정 기간 동안 '증거품'들을 고이 보관하지 않는가.


사진으로 남겨둘까? 사실 휴가지에서 완연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놈의 '사진'들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그놈의 인증샷 욕심. 환상적인 풍경과 느낌을 눈과 머리에만 담아두기에는 나의  용량은 형편없이 부족했다. 기술의 발전으로 손안에 스마트폰 카메라가 거의 24시간 쥐어져 있는 마당에 이걸 놀릴 수도 없지 않은가. 얼마나 비싸게 주고 샀는데, 이왕이면  뽑을 만큼 써야지. 그러나   장이면 족할 기념사진도 SNS 업로드용 인생  욕심으로 연이은 셔터 세례를 날렸고, 똑같은 장소에서도 수십 장의 사진들을 찍어댔다. 추억과 기념이 되어야  사진들의 귀국하면 오히려  방대한 양에 지레 질려 한동안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 귀국 후처리 해야 하는 ''처럼 느껴졌다. 이럴 거면 그냥   장씩만 아껴찍었던 필름 카메라가 차라리  적합하지 않았을까. 이미 감당이  되는 수백 장의 기념사진 속에 굳이  기념품 사진들까지 억지로 보태고 싶지 않았다.


 휴식. 어쩌면 인생에서 휴식은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눈을 감고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에서야 진정한 휴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매일 하루하루를 힘겹게 생존하는 우리들에게 완전한 휴식이라는 것은 어쩌면 평생 이룰 수 없는 허상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휴가 기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다고 투정 부리고 싶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애초에 인생에서 온전한 휴식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이룰 수 없는 것이 아녔을까? 하는 심오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혹은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아서 'OO는 요즘 쉰다'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도 사실은 쉬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애초에 인생에서 '완전히 쉰다'는 것 자체가 불가한 것이므로.


 휴식을 위한 휴가도 처음부터 가당치 않은 일이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 기념품들을 휴식의 증거물이라고 붙잡고 있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비워버리자. 어차피 나중에 진짜 휴식, 혹은 안식을 맞게 되면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비워버리자고 단호히 마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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