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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Mar 22. 2021

글쓰기, 아니 인생 권태기가 왔다

05. 글쓰기

글쓰기 권태기


 제목 그대로 최근 글쓰기 권태기가 왔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복잡한 상념들,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그동안 마음에 켜켜이 쌓였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글로 풀어 밖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숨이 막혀버릴  같았다. 그래서 뭐에  것처럼 퇴근하고 고단한 몸을 이끌고도,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기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주주장창 무언가를  내렸다.


 그중 몇몇 글들은 브런치를 통해 공개됐고 특별한 기회를 얻어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렇게 세상에 고정되어 박제되어 버렸다. 나머지 몇몇은 치열한 자기 검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고 노트북 개인 폴더 한 구석에 조용히 봉인되어 있다. 언젠가 조금 더 용기가 생기고 내 마음이 넓어지면 그것들도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장담 못하겠다. 그저 내가 끈기가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내 안에 불꽃같았던 그 무언가가 그새 사그라들었는지 글을 쓰는 행위가 예전만큼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부담감 때문일까?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며 좋았던 점은 '익명'으로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인데, 출간 작가가 되고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고자 동네방네, 사돈의 팔촌에까지 책의 출간 소식을 전하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지금도 내 브런치를 주기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가족, 친인척들과 지인들에게 혼자만 마음의 소리를 공개하는 것 같다. 상대의 의중은 모른 채, 나만 일방적으로 구애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달까. 혼자 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어느덧 숲의 대나무 마디 하나하나에 지켜보는 눈들이 달린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자유롭게 고성방가는 고사하고 이제는 대숲에 발을 디디는 것조차 망설여진다.



생존 시그널


 갑자기 꽁꽁 숨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세상과 단절되고 싶지는 않다. 지켜보는 눈이 많아졌어도, 나만의 일방적인 목소리 일지라도, 생존 시그널을 세상에 흘려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이 오락가락, 복잡하다 보니 몇 개 글들을 포스팅하고 마무리하지 못한 매거진들이 쌓여간다. 애초에 특별한 목적 없이 써 내려간 글들이 정처 없이 부유한다. 그 와중에 새로 쓰고 싶은 주제들이 또 스멀스멀 떠오르는데, '이미 벌려놓은 것이나 마무리하고 시작하자'는 마음에 가로막혀 입도 뻥긋 못하고 있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후진도 못한 채 중간에 '턱' 막혀있는 것 같다. 정체된 느낌에 의욕 없음. 그것이 바로 권태로움이 아닐까.


 사실 글쓰기만 권태기가 온 것이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인생 전반에 권태기가 왔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욕심내고, 치열하게 노력해서 얻는 일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쉬이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몸이 아프니 마음도 병든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글을 쓰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내게 글쓰기는 '힐링'이자 '치유'의 행위였다. 쌓아두면 곪아서 터질 것 같았던 감정의 찌꺼기들을 건전하게 방출할 수 있는 출구이자,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하고 더 큰 생각들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었다. 지켜보는 눈들이 많으면 어떤가. 당장 내가 살고 봐야지.


 오늘부터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4주, 챌린지를 해보기로 했다. 7일 x 4주= 총 28개의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든, 인생이든 이놈의 권태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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