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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Mar 23. 2021

결과가 아닌 과정을 즐기는 연습

06. 행복


 행복한 순간 Best 3

 일상의 모든 것이 심드렁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는 요즘, 20살 파릇파릇한 청춘에 만나 세상 해맑던 나의 귀요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대학 동기가 물었다.


 "이제껏 살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 한 세가지만 말해봐"

 "글쎄......"


 가장 슬프거나 불행했을 때를 말해보라면 주저 없이 내리 열개는 줄줄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반대로 가장 행복했을 때를 말해보라니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 고민하다가,


 "대학 붙었을 때?"

   

 라고 말하고 나머지 2개 역시 "대학원 붙었을 때?  (첫 직장) OO 합격했을 때?" 대답하니 내가 생각해도 조금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다년간의 명상과 마음 수련으로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 반, 진담 반으로 '마스터님'라고 불리는, 내게 질문을 던졌던 친구는 그런 나의 대답을 듣고 갑자기 측은한 눈빛을 보낸다.


 그간 열심히 뽈뽈대고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기웃거리고 , 시간, 에너지를 그렇게 써대고도 고작 뽑아낸 ' 인생의 행복한 순간 베스트 3' 고작 어딘가에 '합격' 것들이 뿐이라니. 물론 그때는 그것들이 정말 간절히 원했던 것들이지만 이제 나는 안다.  행복감은 모두 '찰나의 순간'일뿐이었으며, 강의 황홀감에 도취되어 눈부신 골든 게이트를 통과했던 것도 잠시, 그것들은  다른 헬게이트들의 서막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결과 지향적인 삶


 시각을 달리해보면 그동안 나는 매우 '결과 지향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정보다 늘 결과가 우선시되는 삶이었다. 과정을 즐기라는 말은 그저 허무맹랑한 괴변이요, 실패한 결과에 대한 면피이자, 혼자만의 정신 승리 같은 소리라고 치부했다. 처음 세팅했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과정들은 그저 인생을 허비한 시간들로 생각했다.  


 단순히 물질적인 것 외, 정신적으로도 늘 여유 있는 삶을 지향했지만 막상 현실에서 늘 '결과 지향적인 삶'을 살아왔으니 그동안 사는 것이 늘 팍팍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내게, 대부분의 자원은 늘 한정적이였다. 무언가에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면 되지!'라고 외치는 긍정적인 마인드보다 오히려 '더 빠른 길, 실패하여 허비한 시간을 만회할 수 있는 길, 이미 이 길을 지나 다음 단계로 진입한 사람들을 한시바삐 따라잡을 수 있는 지름길'을 찾아 더욱 초조해하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원샷 원킬'로 한 번에 성공하지 않으면 다시 쏟아부어야 할 돈과 시간이 아쉬웠고, 또 아까웠다.


 그런데 무언가 하나씩 성취하고, 다음 목표물을 노릴수록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당연히 '원샷 원킬'할 확률은 점점 줄어들었고 동시에 그동안 내가 경쟁했던 필드들이 항상 페어플레이가 이뤄지는 곳들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 타율이 꽤 높았던 나는 최근 위암 수술로 신체 기능이 다운 그레이드 된 상황에서, 앞으로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은 삶에 굴복해야 만 할 것 같은 불안감까지 더해 잠을 설친다. 그동안 '무언가를 성취함'이 유일한 행복 지표였던 나는 어느덧 더 이상 크게, 자주 행복감을 느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것이 빙산의 하단처럼 나의 요즘 무기력함과 권태로움의 숨겨진 원인일까?


과정을 즐기는 연습


 정말 단 한 번도 결과가 아닌 과정이 너무 즐거워서, 행복했다고 느꼈던 순간은 없었던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깨알같이 몇 가지 순간들이 떠오르긴 했다. 차마 남부끄러워 공개적으로 기록하긴 힘들지만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은 내 인생에도 결과와 상관없이 순수히 과정을 즐겼던 순간들도 엄연히 존재하긴 했다. 참 다행이지 싶다. 내게도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낭만적인 DNA가 있긴 하다는 사실이.


 30년 넘게 살아온 까락이 있기 때문에 나는 어떤 행위를 시작할 때 여전히 습관적으로 결과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은 의도적으로 결과만큼 '과정'도 조금 되돌아보기로 했다. 과정을 즐기는 연습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덧 즐길 수 있는 날도 오겠지. 그러면 내 인생이 어쩌면 지난날보다 조금 더 자주,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때 누군가 내게 인생에 제일 행복한 순간을 세 가지만 뽑아 보라고 다시 묻는다면, 봇물 터진 것처럼 줄줄이 수많은 순간들을 나열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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