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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Mar 24. 2021

당신을 정의할 수있는 키워드는 무엇입니까?(1)

07. 정체성


최후의 질문


 한창 호기심 많고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가입하고 싶었던 중앙 동아리 면접에서 똑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특별한 가입 목적이나 동기가 있었다기보다 그저 그 분야에 대한 순수한 동경과 호기심이 발동해 지원했었다. 소위 스펙 쌓기와 직결된 동아리들에 비해 가입 허들이 높지도 않았고, 당연히 사전 지원 자격 같은 것도 없었으며 면접 역시 기존 선배들과의 대화 수준의 캐주얼한 만남의 장이였다.


 그러나 소위 '라떼는 말이야' 시절, 2000년대 초반 그 당시 캠퍼스는 그때까지만 해도 솜사탕 같은 말랑말랑한 낭만이 조금은 남아있던 때였다. 요즘 후배들이 선호하는 취업용 스펙 쌓기가 주목적인 학회나 스터디 혹은 봉사 활동 같은 모임들에 견주어보면 딱히 나중에 큰 쓸모가 있어 보이지 않는, 오히려 순수한 취미 활동에 더 부합하는 그런 동아리들도 당시에는 꽤 인기가 있었다. 치열한 선발과정이 필요했다기보다 그저 수용 가능한 인원의 물리적 케파에 비해 나 같은 실속 없는 허당의 낭만파 새내기들의 수요가 넘쳤던 상황이었달까.


 그러니 뭔가 당락을 판가름할 결정적인 기준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곱씹어보면 그것은 바로 "당신을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나요? 사물이나 기타 다른 것에 비유해도 정의해도 됩니다"라는 가장 마지막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답변이 바로 합격자와 탈락자를 결정지을 한 끗이었던 것 같은데, 그 질문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낯선 이들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하는데 나름대로 고도의 훈련이 되어 있어 각종 수시 전형을 면접으로 쓸어버렸던 때라, 그 정도 캐주얼한 동아리 인터뷰는 의례 무난히 통과할 줄 알았다. 면접 내내 '하하호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해서 혼자 미리부터 김칫국을 사발로 마셨다.


 그러나 최후의 질문을 받자, 평소 제법 순발력이 있고 임기응변도 능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당황하여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를 무엇으로 비교한다?' 그전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였다. '나는 그냥 난데. 무엇으로 나를 표현한다고?'라는 생각에 순식간에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잔뜩 긴장한 내게 '편하게 대답해도 된다고' 재차 선배들이 힘을 보태 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망부석처럼 딱딱히 굳어 버렸다.


 그때 내가 뭐라고 얼버무리며 대답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바람이랬나? 공기랬나? 불꽃이랬나? 딱히 기발하거나 인상 깊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의미가 있지도 않은 그저 닥치는 대로 '아무  대잔치'같은 대답을 토해 냈던  같다. 그러니 뭐라고 했는지 제대로 기억도 안나지.   면접 장소였던 강의실 문을 밀고 나오며 속으로 '...... 망했네. 떨어질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하던 기억만 아직까지 선명하다.


 결과는 미리 말했듯 낙방했다. 당시에는 의욕 넘치는 새내기로서 첫 동아리 가입이 좌절되었다는 생각에 잠시 참담한 기분이 들기도 했으나 앞서 말했듯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되면 좋고, 안돼도 딱히 아쉬울 것 없는' 생각으로 찾아간 곳이라 우울한 마음은 안개처럼 금방 겉혔다.


풀지 못한 숙제


 시간이 지나 학기가 바뀌고 그새 다른 관심거리가 생겼던 나는 냉큼 다른 동아리에 들어갔다. 이후 전공 수업에 허덕거리며 정신없이 학교 생활을 이어가던 나는 끝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그 질문에 대해 여전히 클리어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그 질문 자체를 기억 저장소 '저어기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그러나 완전히 '삭제' 되지는 못한 질문은 잊을만하면 가끔 망령처럼 뇌리에 떠올랐고, 마치 해결할 수 없는 수학 숙제를 끌어안고 영원히 고통받는 이처럼 마음 한 구석을 늘 찜찜하게 했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여전히 그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그 물음과 답에 아직까지 집착하는 이유는 어렴풋이 깨달았다는 점이다. '나를 무엇으로 대변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바로 나의 정체성과 관련된 물음이고, 그에 대해 쌈박하고 명확한 대답이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나 스스로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 같기 때문에 나는 그 질문과 답에 계속 집착했던 것 같다.


 그러다 드디어 찾았다.

 나를 대변할 키워드들을

 심지어 두 개나 찾았다.

 드디어 약 15년 만에 스스로 만족할만한,

 속 시원한 대답을 찾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의도치 않게 갑자기 이글의 분량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 편으로 미뤄 내일 이어서 써야겠다. 독자님들, 투비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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