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전문가
콘텐츠 바닥에서 요즘 가장 핫한 화두는 아마 '버추얼 인플루언서'에 관련된 내용들이지 싶다. 재밌는 점은 과거에 '아담'을 추억하는 자로서, '그때처럼 또 잠깐 반짝이다 사라질까?'싶은 생각보다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라는 촉에 온다. 다분히 어색한 몸짓으로 한 눈에도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 '딱티'나던, 그래서 대중들에게 반짝 흥밋거리가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던 아담 오라버니 때와는 확연히 다른 새로운 판이 짜여지고 있다는 점이 본능적으로 느껴진다.
가상인물 '로지'가 등장하는 신한라이프 콘텐츠가 처음 공개됐을 때 번개처럼 떠오른 생각은 '(비용) 저거 얼마 들었을까?'라는, 다분히 생산자스러운 발상이다. 연이어 '누가 만들었을까?, 자체 리소스로? 아니면 외부 리소스로?'라는 더욱더 공급자스러운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간단히 데스크 리서치로 조사해 봤을 때, '로지'는 애니메이션 제작이 핵심 사업인 기업 '루카스'의 자회사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에서 제작했으며, 자주 같이 언급되는 LG전자의 '김래아'의 경우 LG 자체 기술로 제작한 가상 인물로 보인다. 단순히 가상인물을 구현하는데 들어간 기술 비용뿐 아니라, 각자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 즉 콘텐츠 제작에 투여된 비용과 홍보&마케팅에 투여된 비용이 각각 얼마일까? 더 깊숙이 궁금하긴 한데 내부 관련자가 아닌 이상 공개된 자료로만으로 알기 어려울 것 같다.
기술적으로 얼마나 위화감 없이 실제 사람과 똑같이 구현했는지, 모션이 얼마나 생생한지 같은 테크니컬 한 부분보다 내 관심사는 역시 그들의 콘텐츠다.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외모를 보면 이 시대, 특히 GenZ 세대가 바라는 미적 기준이 무엇인지 쉽게 유추 가능하다는 점이다. 가상 인물들의 이름은 내 또래 수많은 밀레니얼 세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지어주고 싶은 워너비 이름과 맥이 닿아 있음을 바로 캐치할 수 있다. 미(美)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 패션/뷰티 회사라면 이들의 외모를 더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 요즘 등장했고, 앞으로 등장할 가상 인물들의 비주얼들을 면밀히 분석해보면 그동안 '애매모호하고, 사람마다 기준이 달랐던 대중적인 미의 표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아주 선명히 그려낼 수 있어 새로운 브랜드나 상품을 개발하는데 더욱 분명한 이정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잠깐 옆 길로 새서, 어쩌면 아직 분위기 파악 못하고 '대한민국 최고 미인은 당연히 OOO 지. 그러니까 모델로 섭외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임원들에게 가상 인플루언서들을 쭉 보여주며 '요즘 애들의 미인 or 워너비의 외모는 바로 이겁니다'라고 팩트로 조질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만 어깨가 들썩이는가!
다시 돌아와, 앞으로 버추얼 인플루언서들이 홍수처럼 밀려 나온다면 정작 기술력보다 핵심은 각 가상인물들의 세계관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구축되었는가. 그들의 목소리와 향후 행보들이 과연 어떻게 대중들을 열광시킬 것인가, 즉 '콘텐츠 싸움'이 이 바닥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키'라고 본다. 그런데 의외로 이 부분을 좀 만만하게, 가볍게 생각하는 의사결정자들이 많다. 콘텐츠 개발보다 오히려 '기술 개발을 어떻게 하지?'라는 부분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는데 기술은 외부에서 사 와도 된다. 버추얼 인플루언서를 시장에 선보였다고 끝이 아니라, 얼마나 정교하게 오퍼레이팅 하면서 효율적으로 매니지먼트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향후 더 중요하다고 의견내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냐는 얼굴들을 한다.
또 몇 년 전부터 꾸준히 '그놈의 세계관 구축 타령들'을 듣고 있는 입장으로서, 이게 '금 나와라 뚝딱!' 하고 도깨비방망이 휘두른다고 '옛다!' 하고 나올 수 있는 영역이 아닌데, '세계관/유니버스'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있어빌리티'의 품격이 느껴져서 그런지 너무 쉽게들 거론하는 것 같아 입이 쓰다. '세계관 구축'은 생각보다 굉장히 고도화된 creative 영역으로 특히 영리 기업에서 단순히 구전동화 창작하자고 모인 것이 아닌데 '세계관 구축= 이야기 짓기' 정도로 치부하는 현상을 자주 목도한다. 그결과 뜬금없이 어린 연차의 마케팅 사원들을 불러 놓고 '우리보다 창의적인 너희들이 세계관 구축 좀 해봐라'라고 오더를 내리기도 한다.
물론 발군의 재능 있는 인재들이 숨어 있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오기도 하지만 태생 자체가 상업성을 띤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세계관 구축 작업에는 '향후 상업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요소' 즉, '앞으로 돈이 될 만한 포인트'들을 아주 정교하게 심는 작업이 핵심이다. 그러면서 까도 까도 속을 알 수 없는 양파처럼, 연애 귀재들이 쓰는 밀당 스킬을 현란하게 구사해야 하고, 중간중간 대중들과 소통도 해가며 정교한 줄다리기 작업이 필요하다. 결정적으로 본인이 속한 조직의 핵심 사업과 향후 방향성까지 전방위적으로 염두에 둔 책임자가 사전 기획 단계부터 섬세하게 디렉팅해야 앞으로 본인들의 사업과 시너지가 발생 할 수 있는데, 자칫 그 포인트를 놓치면 아바타 혹은 회사의 마스코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내용들을 심도 있게 고민하지 않고 혹 '작가들 고용해서 이야기 좀 짜 와 봐라 or 신입 마케터들 아이디어 좀 없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면, 안타깝지만 그 회사에서 탄생할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미래는 얼마나 막대한 기술 비용을 투자했는지와는 별개로 우리의 추억 속에 고이 묻힌 아담 오라버니와 동일한 말로를 초래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