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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Jul 13. 2021

콘텐츠, 대체 어쩌란 말이냐

방구석 전문가




 요즘 어떤 기업이든 콘텐츠는 화두이면서 동시에 골치 아픈 영역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정작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으니 답 없는 회의는 늘 제자리를 뱅뱅 돈다. 그나마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콘텐츠 역량, 정확히는 ‘콘텐츠 제작 역량을 내재화 차원에서 안에서 소화할 것인가, 아니면 쿨하게 아웃소싱 줄 것인가’의 고민 정도랄까. 안에서 소화하자니 잘 만들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잘 나간다는 에이전시나 스튜디오에 아웃소싱 주자니 부르는 것이 값이다. ‘저 돈이면 차라리 내부 인력 채용해서 만들고 만다’라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하는 단가를 듣고 경영진은 고민에 빠진다. 그러나 곳간 열쇠를 쥔 사람이 전혀 아닌 일개 개미 입장에서, 내부 인력을 활용해서 콘텐츠를 제작하면 정말 경영진이나 주요 의사 결정자들의 마음에 쏙 드는 콘텐츠를 뽑아낼 수 있을까? Really?


  진짜 문제는 내부에 제작인력이나 조직을 세팅하고 말고가 아니다. 그보다 앞서 ‘콘텐츠’에 대한 생각과 원하는 바(목표)를 경영진을 포함한 리더들(중간 관리자)들, 실무자 모두 동일한 방향으로 세팅하지 못하고 무조건 일부터 착수하니 실망스러운 결과물만 산출된다. 각자 마음속에 유니콘 한 마리씩 품고 있지만 현실은 실체 없는 코끼리를 서로 다른 부분을 만지며 모두 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와중에 대부분의 경영진은 별생각 없이 ‘우리 회사 콘텐츠를 좀 강화해야겠어’라고 지시를 내리지만, 정작 우리 회사의 ‘어떤 콘텐츠’를 ‘어떻게 강화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원래 그렇다. 가끔 후배들이 리더들이 가이드라인을 정확히 주지 않고 일을 시킨다고 불평하지만 짧지 않은 사회생활 짬밥으로, 원래 그들은 답이 없다. 심지어 바라는 바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어디서 본 것은 많다.

 

  방향이나 목표점 같은 방점은 찍어주지 않은 채 어디서 자기가 본 것만 한 가득 가져다준다. 스크랩북인가? 싶어 실소가 나올 때도 있지만 일단 그거라도 정리해서 주면 양반이다. 가장 최악은 ‘느낌적인 느낌’만 있고 '그 느낌'을 '너희들이 알아서 잘 좀 표현해라' 케이스다. 혹여 이 글을 보고 공감 가는 사회 초년생들이 있다면 구내식당 밥 더 많이 먹은 자로서 가이드가 명확하지 않다고 불평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일단 제대로 알면 이 바쁜 현대사회에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업무를 지시하겠는가? 차라리 처음부터 우리는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는 눈 뜬 봉사같은 그들을 안내하는 인도자라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하다. 물론 나의 인도대로 쉽게 따라오지도 않고, 막상 도착해서 ‘여기가 내가 원래 내가 생각하는 도착점이 아니네’ 하고 딴소리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그마저도 ‘원래 그런 것이다’ 생각하면 자기 전 이불 킥 날릴 일도 없고, 정신 건강에도 좋다.




 무튼 다시 콘텐츠 이야기로 돌아와, 콘텐츠 종류는 크게 두 종류로 가르마를 탈 수 있다. 지금 당장 sales와 직결되지 않지만 특정한 이미지나 느낌을 전달하여 기업 혹은 제품의 브랜딩(Branding)이 주목적인 브랜디드 콘텐츠와, sales와 직결되는 커머셜 콘텐츠 정도로 이원화 가능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가 TV나 온라인 미디어(SNS/Youtube) 같은 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기업 주도로 발신하는 콘텐츠(이미지/영상)들은 대부분 특정한 느낌이나 목소리들을 전달하고자 하는 브랜디드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요즘 대세인 라이브 방송 콘텐츠나 제품을 구매할 때 도움을 주는 콘텐츠들 (온라인 배너, 상품 상세페이지, 대표 썸네일) 같은 것들을 커머셜 콘텐츠로 보면 되겠다. 그 둘 중에 뭐가 우선인지, 어디에 더 방점을 둘 것인지 의사결정자들이 이랬다 저랬다 하거나 ‘두 마리 토끼 모두 잡는 콘텐츠 만들어야지’ 같은 오더를 하면 죽도 밥도 안되기 딱 좋다.


 사실 콘텐츠가 어려운 것은 콘텐츠가 기업의 판매실적에 정확히 어떻게,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측정하기가 참 애매하기 때문이다. 이게 제품이 좋아서 대박을 친 건지, 아니면 모델을 잘 써서 대박을 친 건지, 기깔나는 브랜디드 영상 때문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웃자고 만든 B급 바이럴 영상이 예상보다 빵 터져서 그런 건지, 인플루언서들 활용해 사전에 바이럴 콘텐츠를 미리 잘 깔아놔서 그런 건지, 경쟁사가 뒤집어질 엄청나게 색다른 라이브 방송을 해서 그런지, 구매까지 이어진 고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귀인점을 ‘딱 집어서 바로 너!’ 이렇게 특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니 의사결정자들은 ‘이것저것’ 다 하고 싶어 하고, 실무자들은 죽어난다. 그런데 다 해도 된다. 어차피 모태 방향성, 콘텐츠가 원하는 결, 즉 우리 회사의 creative가 추구하는 방향성인 콘셉트만 명확하면 릴리즈 되는 플랫폼에 따라서 변주하는 일은 담당자들을 그렇게까지 미치고 환장하게 하는 포인트가 아니다.

 

 그러나 의사결정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남들 하는 거, 요즘 시장에서 핫하다는 콘텐츠를 짜깁기 해서 ‘명확한 방향성 혹은 통일된 콘셉트 같은 것은 잘 모르겠고, 일단 폼났으면 하고(트렌디하고 힙했으면 하고), 거기다 재미도 있어서(세련된 유머/고급진 위트/적나라한 현실, 팩폭에 기반한 냉소 안됨), 돈 안 쓰고 자동으로 바이럴 되었으면 하고, 그것이 지금 당장(롸잇 나우!) 매출 부스팅 하는데 일조했으면 함’라고 에둘러서 요구하면 그때부터 ‘다 함께 렛츠 고우. 대환장 파티 시작’이다.




 한술   creative 참신함이나 기발함을 바라보는 관점도  각양각색이라 그놈의 ‘취향 ‘감각 맞추는 것이 제일 어렵다. 하지만 의외로 일을 하다 보면 소속 기관의 최고 의사결정자들이 나름대로 세련된 감각과 안목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어려운 시절에 기업을 일으킨 1세대 오너들과 달리, 어릴 때부터 좋은 것만 먹고 자랐겠다 대부분 유학까지 다녀와 기업 경영 능력면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어도, 속된 말로 ‘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고매한 취향과 높은 눈높이를  짚어서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무수히 많은 평범한 중간관리자, 범인들이 끼여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실무자들은 최고 경영진과 직접 소통할 기회가 없어 가족오락관처럼 구전으로 전달되는 중간관리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 눈치껏 추측해야 한다. 그러나 머리쪽에서 실체 없는 무형 콘텐츠에 대한 의도가 분명히 ‘A’라고 지시했는데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다 보면 꼬리에서 ‘Z’ 되어 있는 경우 비일비재하고 원래 남의 속을 100%  수는 없는 노릇이니, A A-1이나 A-2 정도로 전달해 결과물을 가져가도 조직  핵심 인재요, 일등 리더 취급을 받는다.


가끔 ‘어디는 겨우 얼마 주고 창의적인 주니어(신입 사원 혹은 인턴)가 이렇게 만들었다더라’ 같은 소리를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1) 그 주니어의 초기 기획이 구전의 구전으로 오염되거나 변형되지 않고 최고 의사결정자에게 다이렉트로 갔다. 2) 의사결정자가 그 콘텐츠의 숨겨진 가능성을 알아보는 타고난 감각으로 픽(Pick)하는 능력을 가졌다.'가 모두 전제되어야 나타나는 결과지 중간 관리자들이 전달하면 할수록 한 입 씩 보태 초기 기획 의도와 달리 산으로 가거나, 최고 의사결정자들이 감각이라고는 1도 없는 똥촉에 심미안까지 없다면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결과다. 그러니 제발, 지시하는 자들이여. 옆 집에서 이렇게 했는데 우리는 왜 못하냐고 타박하기 앞서 1) 2) 번이 제대로 충족되긴 했는지 냉정하게 자아 성찰을 좀 해보자. 




 


 또 다른 이야기로 콘텐츠 바닥에서 ‘재미없다’보다 더 슬픈 평가가 바로 ‘촌스럽다’라는 소리다. 제작비 스케일과 상관없이 돈을 아무리 퍼부어도 최고 경영진, 그리고 고객들에게 ‘돈 많이 써서 때깔은 좋은데 어딘지 묘하게 촌티 나네’라는 소리를 들으면 바로 아웃이다. 대부분 저예산에 기발한, 동시에 촌스럽지 않은 콘텐츠를 바라지만 이 바닥 생활 10년이 넘다 보니 그건 아주, 아주아주 소수의 탁월한 재능을 가진 천재들이 구현하는 능력이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요원한 영역이다. 이리저리 돌려 말하는 바를 잘 해석해보면 결국 ‘저예산, 고퀄리티’ 다 똑같은 소리 하고 있다. 그리고 냉정하게 '적은 자본으로 고 퀄리티 콘텐츠 만들 수 있는 인재가 왜 거기 속해 있을까?’ 는 부분은 똑같이 생각을 안 하는가 보다.


 딴소리로 가끔 콘텐츠 바닥에서 촌스럽다. 비슷한 소리로 ‘감(각) 떨어지네’ 같은 피드백을 받으면 그게 그렇게 남 일 같지 않고 슬프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먹고살기 바빠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벅찬 평범한 소시민, 그럼에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아서 열심히 조사하고 따라가려 애써도 결국 그것들을 실제로 경험하고 누리는 소수 계층들의 생생한 현장감을 따라가기 벅차다는 사실이, 실무 처리 능력과는 별개인 부분이라 그 포인트가 그렇게 슬프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인들도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결국 경험의 부재로 취향이 빈곤하여 콘텐츠의 감도로 핀잔을 듣거나, 트렌디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듣는 모습을 보면 슬픈 것을 넘어 더럽게 서럽다. 우리도 좋은 데서 좋은 거 먹고 좋다고 할 줄 알고, 외국이나 국내 유명 핫플레이스 멋지다는 거 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못 먹어보고 못 가봐서 그런 것이지 감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흥.


  갑자기 일하다 머리가 복잡해 후루룩 써봤는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미지의 영역이자, 성역의 영역인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생각나면 또 써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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