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 언니 Jul 31. 2021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생 첫 책을 출간하고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책을 출간한 지 반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전과 별다를 것 없는 인생을 산다.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긴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가끔 주변에서 '작가님'이라고 불러줄 때 처음에는 낯간지러워 몸 둘 바를 몰랐는데, 이제는 제법 그 호칭에 익숙해진 뻔뻔함 정도가 변화랄까. 가끔 책장에 놓여있는 내 책을 볼 때마다 슬며시 밀려오는 뿌듯함에 남몰래 광대가 승천한다. 인세 정산은 출간 후, 반년 뒤에 받기로 해서 아직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마주하지 못했다. 가계 경제에 미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도 않았거니와, 출간 초기 신나는 마음에 여기저기 자비로 구매해 선물하는 바람에 가계부에 선지출만 고스란히 쌓였으니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는 마이너스다.


  출간 전 이불속에서 매일매일 행복 회로를 돌렸다. 그중 제일은 내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꿈이었다. 마치 로또 1등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지 상상 버킷리스트를 짜는 것처럼 혹 내 책이 베스트셀러로 에세이 부문 1등을 차지한다면 밀려드는 인세로 무엇을 할 것인지 끊임없이 상상했다. '일단 집을 한 채 사야지, 그리고 가족들에게 소정의 현금을 좀 나눠주고 나머지는 그동안 힘들었으니까 흥청망청 써야지. 아냐, 그러다 거지되면 안 되니까 일단 동네에 별다방이라도 하나 차리고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전환하는 거야, 회사는 어떡하지? 당장 때려치워? 아니지, 딴 주머니 차고 입사 이래 늘 꿈꿔왔던 '저는 취미로 회사 다닙니다' 모드로 가방만 딸랑딸랑 들고 다녀볼까!' 같은 행복한 생각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했다. 그럴 때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천하는 입꼬리와 광대를 애써 지상으로 끌어내리려 애썼다.  


김칫국을 사발로 드링킹 하는 일들의 최고봉은 단순히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명세'를 얻게 되면 어쩌나, 과연 샤이한 내 성격에 그런 유명세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아니 이러다가 유 퀴즈에서 섭외 오는 거 아닌가?' 싶은 심하게 발칙한 상상부터, 행여 '회사 사람들이 알게 되면 정상적으로 업무 수행하는데 지장이 있지 않을까?' 하는 나름 현실적인 고민까지. 그 와중에 '누가 사인해달라고 하는 거 아냐? 사진 찍어달라고 하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다시 에스테틱을 끊어 말아' 같은 끝도 없이 밀려드는 고민까지.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회사원이자, 출간 선배인 이웃 작가님께서 '어쩌다 보니 출간 사실과 작가 활동을 회사에서 알게 되어 익명 게시판에 언급되는 등, 구설수에 올라 매우 곤란했다.'라는 생생한 수기를 보고 '아이고~ 남 일 같지 않은데! 나한테도 그런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지!' 같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까지 이중, 삼중으로 걱정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고민했던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동안 ‘사서 고민’해서 조금 행복했다.



 인터넷에 내 이름 쳐봐

 

 책을 출간할 때 실명으로 할 것인지, 필명으로 할 것인지 참 고민이 많았다. 전업 작가도 아니고 현재 조직에 근로 계약으로 묶인 몸이라 행여 내가 상상치 못한 그 어떤 방식으로, 출간 활동이 본업에 영향을 미칠까 봐 조심스러웠다. 고민하다가 근로 시간 외 개인 창작활동은 겹업 금지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과, 이놈의 회사가 언제까지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불신이 뭉쳐 시원하게 프로필 사진까지 얹어 실명으로 출간했다. 또 그것이 나중에 예술인패스 발급 같은 국가에서 창작자로서 예술활동을 인정받는데 조금 더 편리해 속된 말로 시원하게 실명 깠다. 개인 브랜딩이 대세인 시대에 편승하지 못하고 갑자기 발가벗겨진 느낌이다.


 출판사를 통한 출간이다 보니 국내 대형 서점들의 유통을 출판사에서 도맡아 했다. 요즘 워낙 온라인 판매가 대세라 오프라인 서점에는 재고를 많이 깔지 않는다. 나중에 회수도 힘들고 요즘 코 시국으로 서점을 직접 찾는 고객들도 점점 감소 추세라 온라인 판매에 집중하기로 했다. 출판사에서 서평단 모집이라는 사전 바이럴 마케팅도 미리 진행해 포털에 내 책을 검색해보면 정성스러운 리뷰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아직 네이버 프로필에 등재될 유명세까지는 아니지만 이름 석자 검색했을 때 나와 관련된 무언가 나온다는 것을 꽤 짜릿한 일이다. 그래서 가끔 뜬금없이 내 이름을 초록창에 검색해 보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ㅇㅇㅇ작가라고 제 이름 검색해보세요"라는, 귀여운 허세도 부린다. 하지만 어디까지 내가 먼저 제안하고 유도하는 행동으로 누군가 자의로 내 이름을 검색하는 행위는, 글쎄? 우리 부모님이 전부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여즉 아무 일이 없지.  



 첫 술에 배 부를까,


 기대와는 다른 소소한 현실 반응에 한동안 시무룩한 내게 심심한 위로와 격려가 쏟아진다. 부자가  상상에 한껏 들뜬 내게 '출간 활동은 수익성보다 개인의 명예 활동이라며' 사실 초임 작가가 대박 치는 경우는 확률적으로 매우 드물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던 친구들. '이건 시작일 뿐이잖아.  술에 배부를  없다며'. 그동안 네가 창작활동을 위해   노력들에 부응하는 멋진 스타트를  것이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격려해 주던 지인들. 애정 어린 격려의 홍수 속에서 울적했던 기분이 점점 나아지려 한다. 가장 와닿았던 조언은 "너는 회사에서 직장인 11 차지만, 작가로서는 아직 1 차야. 회사로 따지면 Baby 신입사원 주제에 대박 성과를 내보겠다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귀엽고 노력이 가상하긴 하다만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쉽게 되겠니? 그러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말아라"라는 조언이었다.


 그래, 기죽지 말자. 나는 이제 겨우 Baby 작가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6개월 차 초보운전자의 고군분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