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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Jul 05. 2021

6개월 차 초보운전자의 고군분투

쪼꼬미의 수모

Hello, 쪼꼬미


 2020년 말, 기세 좋게 치솟던 S전자의 주식 덕에 난생 처음 차를 샀다. 물론 작고 귀여운 내 시드머니로 차 값 전체를 지불할 만큼 기적 같은 수익률을 거둔 것은 네버. 만약 그랬다면 차가 아니라 당장 회사부터 때려치웠겠지. 그저 국산 소형 중고차를 살까, 조금 더 보태서 새 차를 살까 망설이던 차에 약간의 자금 윤활유 역할을 해 새 차로 질렀다.  


 연말에 생산이 밀려 계약서에 사인하고도 무려 2개월쯤 지나 차를 받았다. 차는 자판기처럼 '돈 넣었으니까 당장 나와라!' 해서 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기다리는 사이 장롱 면허를 깨워 도로 주행 강습도 받고 틈틈이 한적한 시골길에서 아빠 차로 주행 연습도 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마침내 해를 넘겨 수령한 내 차는 '베뉴'다. 소형이지만 SUV 답게 차체가 높아 시야 확보가 잘되고, 차폭도 짧고 몸집도 작아 주로 혼자 타고 다니는 내겐 안성맞춤이다. 그동안 차를 가져본 적도 없고 차에 관심도 별로 없어서 처음에는 '뭐야, 작은 차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커?'싶었는데 막상 도로 위에 나가보니 덩치 큰 형아들 사이에 한낱 귀여운 꼬맹이였다. 그래서 애칭을 '쪼꼬미'로 지어줬다.



 쪼꼬미의 수모


 인도받고 반년도 안된 2021년 6월, 주행거리 고작 2000km도 채 안된 쪼꼬미는 벌써 2번이나 크게 다쳤다. 한 달 만에 지하 주차장에서 나와 좁은 골목길로 진입하려다가 지하 주차장 입구 근처에 불법 주차된 탑차를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탑차를 끼고 우측 커브를 크게 돌았어야 하는데 좁디좁은 서울 시내 골목길에 앞 벽에 부딪칠까 소심하게 작게 돌다가 탑차 모서리에 긁혀 보조석 뒷문이 아주 아작 났다. 머리는 나왔는데 꼬리가 못 나왔달까? 꼬리까지도 쪼꼬미 몸이 었는데 내가 아직 완전히 쪼꼬미의 덩치에 익숙하지 않아 벌어진 패착이었다.


 손상된 부분을  펴서 복원할 수준이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들이 '아이쿠 저걸 어째' 소리가 절로 나오게 처참히 구겨졌다. 커브를   '바지직' 소리가 났는데 처음에 그게  차에서 나는 소리인 줄도 몰랐다. 뭣도 모르고 계속 커브를 돌려고 하는데 어디서 '바지지직' 하고  크게 무언가 구겨지는 소리가 나길래 뒤돌아보니 ' 마이 '. 나야나 쪼꼬미.

 

 하필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벌어진 사단에 내 차 뒤로 출차 대기 중이 차와 앞에서 들어오려는 차까지 좁은 공간에 차들이 바트게 몰려있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당황하여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차를 더 긁어 아주 박살을 냈다. 새 차 뽑고 한 달만에 문을 통째로 교체했다. 그렇게 쪼꼬미는 멀쩡했던 생니를 통째로 뽑혀 임플란트로 교체당했다.


 그리고 바로 지난주,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와 골목길 진입하다가 또 사고가 났다. 지하 주차장 입구에서 나와 커브를 돌아 골목길을 빠져나간 후, 대로에 합류해야 했는데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좁은 골목길을 대형 이삿짐 차가 턱 하니 막고 있길래 조금만 후진해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는 것을 조작 미숙으로 주르륵 뒤로 밀려 지하 주차장 입구에 처박혔다. 차가 조금 뒤로 밀렸을 때 브레이크를 신속히 밟았어야 했는데 순간 놀라고 당황했던 나는 그만 액셀을 밟았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하로 밀려 내려가다 주차 차단기와 지하 벽에 굉음과 함께 힘차게 부딪히며 멈췄다. 쪼꼬미의 왼쪽 뒷바퀴가 찢어졌고 뒷 범퍼를 포함해 후면이 아주 너덜너덜해졌다.



 이불 밖은 위험해


 자기 분담금 한계치에 버금가는 거의 최고액을 지불하고 다시 돌려받은 쪼꼬미를 마주하자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이래저래 사고만 빵빵치고 십 원 한 장 아쉬운 판에 돈도 줄줄 깨지게 하는 원흉. 저놈의 쪼꼬미를 처분하고 다시 뚜벅이로 돌아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아~주 잠시' 들었으나 절대 안 될 말이다. 그간 서툴긴 해도 여기저기 쪼꼬미를 타고 누비던 안락함에 어느덧 익숙해졌다. 오히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더 굳게 먹고 더 쎄게 나가야지! 싶은 묘한 깡이 치밀자 새삼 놀랐다.


 사실 아프고 나서 한동안 바깥세상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다. 아니 정확히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무서워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집 밖에서 내 작고 쪼그만 위가 뜬금없이 탈이 날까 무서웠다. 한 번 그런 불안한 마음이 들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금방이라도 똑 죽을 것만 같았다. 수술도 잘 됐고 회복력도 좋은 편이었지만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내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들에 마주쳐 손색없이 무너질까 봐 무서워 방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간 농담처럼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조아리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 불안감과 공포감이었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작은 공간에 나를 가두고 물리적 안정감을 느꼈지만 정작 내면까지 평온하지 못했다. 이렇게 시간이 가면 곧 도태될까 봐, 누군가 내 자리를 금방 대체하고 '너는 더 이상 필요 없다'라고 할까 봐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선뜻 다시 세상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약해진 것이 육체인지 정신인지 잘 가늠되지 않았다.


 처음 문짝 사고를 내고 한동안 두려움에 또다시 운전하고 싶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전전긍긍하다가 '아냐, 여기서 포기하면 나는 계속 이상태일 거야. '싶은 마음이 조금씩 세력을 키웠다. 결국 두려운 마음을 지그시 눌러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그때와 달리 경미한 허리 부상까지 당한 이번 사건으로 다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불안하고 또 불안했고 모든 것이 또 무서웠다. 물건도 무섭고 사람들은 더 무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도 맞아 버릇하면 맷집이 생긴다고 불안한 마음 한 구석으로 스멀스멀 또 묘한 깡이 치밀기 시작했다. 이미 다 깨질 만큼 다 깨졌는데 뭐! 에라 잇! 싶은 마음이랄까. 그래서 또 조금 용기를 내고 쪼꼬미도 다시 타고 다닐 예정이다.


 그러니까 쪼꼬미. 우리 마음 단단히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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