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 언니 Feb 20. 2022

P형 인간의 눈물겨운 환골탈태기

벼랑 끝에 매달려서 논문 쓰기 2

모태 P형 입니다.


 지구 상의 모든 인구를 인식형(Perceiving) 판단형(Judging)으로 정확히 양분할  없지만, 고백컨데 30 중반이  지금까지 조금 오버해서 족히 20번도 넘게 MBTI 성격 유형 검사를 받아 봤어도   번도, 정말   번도 J 인간으로 분류된 적이 없었다. 사고형(Thinking) 감정형(Feeling) 사이를 얇실하게 오락가락한 적은 많았지만 실생활에서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에서만큼은 언제나 확고한 P형이었다.


 학창 시절 그 흔한 스터디 플래너 한 번 써본 적이 없었고, 다이어리 역시 1월을 넘겨 본 적이 없이 번번이 서랍장 한 구석에 처박히기 일 수였다. 그렇다고 모든 일에 즉흥적으로, 속된 말로 '그냥 꼴리는 대로 아무 계획 없이 임한 것'은 아니었다. 남들이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세밀한 계획 따위는 없었어도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이뤄야 할 큰 목표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성취되어야 할 최적의 타이밍들이 늘 존재했다.  


 인생의 각 단계별로 도달해야 하는 결승점과 그곳까지 가야 할 목적의식이 '매우 뚜렷한 편'이었다. 무언가에 꽂히면 앞뒤 안 보고 '그것만 봤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던 나는 늘 인생을 100m 단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살았다. 단시간 폭발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 올인하고,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 또다시 레이더망에 원하는 다음 목표가 생기기 전까지 뇌의 한쪽 나사를 풀어버리고 해롱해롱 살다 다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삶.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삶을 살아온 방식이었다.


 큰 숲을 보는 일에 제법 소질이 있었는 나는 숲 안의 나무 따위는 관심 밖이었다.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작은 것들에 집착하느라 안절부절, 종종거리는 주변인들을 내심 은근히 까내렸다. 계획표를 만들고 체크하고, 수정하느라 시간을 쏟는 일들을 보며 '그럴 시간에 일에 되게끔 무언가를 하나라도 더 할 생각을 해야지, 시간 아깝게 뭐 하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노력을 폄하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안에 무언가 고장이 났다. 큰 병에 걸렸고 다행히 잘 치료받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관행처럼 단기간에 모든 것을 다 걸어 폭발적으로 몰입하고 오롯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했다가는 바로 몸에 무리가 갔고, 곧바로 몸져누웠다. 고도의 집중력은 언제나 고강도의 서슬 퍼런 스트레스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스트레스에 잠식당하기 전에 속전속결로 목표를 성취하는데 익숙했던 나는 병에 걸린 후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스트레스에 잠식당해 무너져 버렸다.


 그렇게 번번이 제동이 걸리다 보니 곧바로 형언할 수 없는 무기력감과 쓰나미 같은 우울함이 밀려왔고 결국 몸이 아닌 마음에 병을 얻었다.   



 나 너무 불안해


 시종일관 불안함에 몸서리쳤다. 남들 보기에는 '왜 저러지? 전혀 불안할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치료도 잘 받았는데 왜 저러지?' 싶은 상황에서도 나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롭게, 사시나무 떨듯 불안해했다. 결국 주어진 상황을 회피하고, 해야 할 일들을 외면했으며 세상과 단절되어 집 안에, 나만의 세계에 꽁꽁 숨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코시국은 불 난 곳에 기름 붓는 촉매제처럼 사회와 단절된 채 더욱 내 안에 나를 꽁꽁 싸매고 절망의 늪으로 침몰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단거리 선수에게 더 이상 단거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은 일종의 사형선고다. 물론 여전히 뛸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는 사람들 눈에는 나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도무지 이해 받지 못 할 영역이었다. 가까운 지인들, 어쩌면 누구보다 가까운 가족들조차 나의 엄청난 불안감을 온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큰 일을 겪은 후, 일시적 충격으로 치부하는 것 같았다. 이제까지 인생을 단거리 뛰기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이제 그 방법을 평생 쓸 수 없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는데 어떻게, 정말 아무렇지 않게 평온할 수 있을까?  


 '관행 같은 습성을 버리고 종래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만이 내 앞에 남은 유일한 선택지이며, 그 '다른 방식'이라는 것이 예전에 내가 은근히 무시하고 폄하했던 방식이라는 사실을.


 그것이 바로 오랜 상담을 거쳐 깨달은 불안감의 원천이었다.



그게 논문이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없기는! 논문 쓰기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데!


 책 한 권도 뚝딱 쓰던 사람이 석사 학위 논문 하나에 금방 못 쓰겠냐고. 왜 그렇게 절절매고 있냐고 핀잔을 주는 이들이 있는데, 뭣도 모르는 소리다. 지금 나는 논문이 아니라 지난 30년이 넘는 내 삶의 태도를 인위적으로 바꿔야 하는 절체절명의 기로에 서 있단 말이다. 100m 단거리 선수가 하루아침에 1500m, 아니 장거리 마라톤으로 전향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속이 얼마나 불안하고 시끄럽겠냔 말이다!


 저항하고 싶다. 격렬히 저항하고 싶었다. 갑자기 다 늦게 엄청나게 억울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도무지 내게 일어난 변화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마음의 병은 더 깊어졌다. 수많은 상담과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통해 나는 앞으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더 많다는 목소리에 좀 더 무게중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원망히기 보다는 변화를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다시 세상 밖으로 한 걸음씩 발을 딛기 시작했고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보행법으로 전진 중이다.


 그리하여 모태 P였던 나는 요즘 나는 계획을 세우고, 시종일관 널뛰는 감정 기복을 다독이며 기계적으로 계획을 실천하는 중이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든, ‘일단 하면 된다.'라는 마인드로 밀어붙인다. '해도 잘 안 될 것 같아’가 아니라 '안 하니까 안 되는 거다'라는 논리로 불안감을 잠재운다. 누군가에게는 가소로운 말장난 같갔지만 나는 지금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달리는 중이다.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조금조금씩 논문 작업을 한다. 영 속도가 지지부진하고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거리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밀고 또다시 전부 때려치우고 꽁꽁 숨고 싶다. 그럴 때마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평정심을 찾기위해 애쓴다. 눈에 잘 띄게 일주일 일과표를 대문짝만 하게 프린트해 집 안 방방곡곡에 붙여 놨다. 놀러 온 동생이 그걸 보고 "언니는 전형적인 J형 인간이네!"라고 내뱉는 감탄사에 "하...... 모르는 소리 마라."라고 뿜어져 나오는 콧김을 삭힌다. 솔직히 여전히 종종 화딱지가 난다. 갑자기 변할 수밖에 없었던 내 삶에 방식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여전히 가슴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습관화되지도 않아서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그럴 때마다 Peace를 외치며 이루고 싶은 목표에 집중한다. 논문을 써서 빛나는 석사 학위모를 쓰는 것! 단거리로 주파하든 장거리로 주파하든 모로 가든 석사 학위로만 가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계획표를 뚫어지게 노려본다. 모든 변화에는 고통이 수반되는 거니까. 그래도 가끔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해 미쳐 버릴 것 같으며 속으로 으-악. 으으-악. 으으으-악. 샤우팅 한 번 크게 갈기고 스타벅스로 달려가 최애 음료인 라임패션티를 아이스로 원샷하고 돌아온다. 이쯤 되면 참으로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모태 P형의 인간의 눈물겨운 환골탈태기가 맞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지옥으로 가는 논문 급행열차 출발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