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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청환 Jan 27. 2024

《기록이 쌓이면 뭐든 된다》

《기록이 쌓이면 뭐든 된다》

《기록이 쌓이면 뭐든 된다》


                     / 박청환

 

 

  샤워를 마치고 거울 속에 똥배 볼록한 사내가 눈에 들어온 어느 저녁, 큰 충격을 받았다. 당장 '뱃살 빼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뱃살 빼기에 특효라는 유튜브 속 필라테스 동영상을 따라 하는 것. 먼저 Before&After 비교를 위한 사진을 찍은 후 다짐했다. 


  '100일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실천하리라’

 

  1일차, 2일차, 3일차…… 겨우 200여명의 이웃을 보유한, 봐주는 이가 많지 않은 블로그지만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 매일 블로그에 보고하듯 기록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요가 매트도 구입하고, 나름대로 운동 강도와 노하우도 발전시켜 나가던 어느 날인가부터 블로그 앱을 열 때마다 자동 표출되는 문구 하나가 있었으니, 


  ‘기록이 쌓이면 뭐든 된다.’

 

  유튜브나 포털에 관심 단어를 검색하고 몇 번 클릭하다 보면 어찌 알고 그 다음부터 그와 관련된 동영상이나 광고가 수시로 뜨는데, 이번에도 아마 그럴 것이다. 매번 섬뜩함을 느끼고 기분이 개운치 않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을. 더구나 이미 완벽하고 철저하게 나를 간파한 포털이 내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가장 좋아할 만한 글귀를 만들어 격려까지 하고 있음에야.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어느덧 68일차로 접어들고 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겠다던 다짐은 독감으로 심하게 앓아누워 도무지 거동할 수 없었던 일주일의 기간과 가족여행으로 부득이하게 빠졌던 하루가 있어 조금 빛이 바래긴 했지만(3박 5일간의 가족여행 기간 동안 여행지에서도 운동을 했지만, 그 하루는 정말이지 운동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이만하면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라 자평한다. 무엇보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더 이상 사람의 얼굴을 한 올챙이 모습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난다. 위대하신 포털님(?)의 격려대로 ‘기록이 쌓이니 뭐든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읽고 찾아간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 어른 키보다 높이 쌓인 작가의 육필원고와 필사본 앞에서 느꼈던 장엄함을 잊을 수 없다. 『토지』를 읽고 찾아간 통영의 토지문화관에서 마주한 박경리 작가의 육필원고는 또 어떠했던가. 내게는 읽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린 그 대하소설들을 책상 앞에 앉아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원고지에 기록해 나간 그 시간들이 이루어낸 위대한 결과물 앞에 어느 누가 존경심과 경외감이 들지 않겠는가. 

 

  필자의 학창시절만 해도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오라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적어오는 가장 흔한 가훈이 ‘근면, 성실, 끈기’ 정도였던 것 같다. 졸업 후 취업을 위해 이력서와 함께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에도 대부분 이런 단어들이 필수 아이템으로 들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급변하는 사회와 생존환경에서 순발력 있게 적응해가는 센스와 민첩함이 강조되면서 이런 단어들은 고루하고 식상한 ‘꼰대’들의 언어인 것 마냥 취급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물론 모든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서두름과 임기응변, 그에 맞는 유연한 사고방식이 잘못된 것일 수는 없다. 다만 그 모든 것에 앞서 ‘근면, 성실, 끈기’같은 기초적 가치가 저변에 깔려 있어야 함도 여전한 진리임에 틀림 없다. 

 

  하다못해 똥도 쌓이면 작물을 키우는 거름이 되는 법. 무언가 이루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방법을 정했다면,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끊임없이 내디디는 성실과 끈기를 잃지 않아야 한다. 자신의 결심을 다잡고 발전시켜가기 위해서라도 그 발걸음의 흔적을 꼭 기록으로 남겨 보기를! 기록이 쌓이면 뭐든 되리니! 아니 뭐든 쌓이면 반드시 더 큰 무엇이든 되리니!

 

  한 해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다지는 세밑이다. 어느 날 시작한 뱃살빼기 결심에서, 그 결심을 응원하는 포털의 격려에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교훈을 되새겨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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