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 라이브 시대를 열다
알려졌다시피 비틀즈의 마지막 공식 라이브 무대는 1966년 8월29일 샌프란시스코의 캔들스틱 파크 공연이다.
비틀즈가 영국에서 공식 데뷔한 해가 1962년이며 해산 연도가 197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라이브 시대는 불과 4년 남짓했던 것이다.
론 하워드 감독의 신작 ‘비틀즈 : 에잇 데이즈 어 위크 – 투어링 이어즈’( The Beatles: Eight Days A Week - The Touring Years)는 바로 비틀즈의 라이브 시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영국의 리버풀에서 결성되어 독일의 함부르크를 오가며 활동하던 무명의 밴드가 세계 최정상의 뮤지션이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후를 소개한다.
스트립 바에서 분위기 돋우는 음악이나 연주하던 비틀즈는 다른 영국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전후 공업도시로 성장하던 독일의 함부르크로 건너갔지만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다시 고향인 리버풀로 돌아온다.
이 시절에 만난 사람이 바로 비틀즈의 매니저가 된 브라이언 엡스타인이었다. 리버풀에서 레코드 샵을 운영하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어느 날 비틀즈의 음반을 찾는 소녀로부터 비틀즈라는 밴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한다.
비틀즈가 활동하던 캐번 클럽을 찾은 엡스타인은 무엇에라도 홀린 듯 그 자리에서 자신이 매니저가 되어 보겠노라고 제의한다.
어떻게 보면 세계사적으로 아주 결정적인 순간임에도 영화는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비틀즈의 만남을 특별한 감동 없이 그린다.
비틀즈가 해산한 이유는 여러 설이 있지만 밴드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갑작스런 사망(1967)도 작용했을 것이다.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밴드의 맏형 격이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사망하자 멤버들이 머리 잃은 닭처럼 당황했다고 했다.
영화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이야기는 멤버 가운데 대규모 공연에 처음 회의를 느낀 게 조지 해리슨이었다는 것이다. 비틀즈는 1965년 8월 프로야구단 뉴욕 메츠의 홈 구장인 셰이 스타디움에서 무려 5만6천 여 명의 관중 앞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제대로 된 음향 시설을 갖추지 못해 야구중계 장비로 음악을 송출했다고 한다.
무대 위의 밴드멤버들조차 서로의 목소리와 연주소리를 듣지 못해 화음과 리듬을 맞추는데 애를 먹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별 탈이 없었던 것은 관중들의 함성이 모든 것을 덮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기절해서 실려 나가는 소녀들의 모습과 스타디움의 야구 중계 스피커를 잡아 주며 이 날의 분위기를 전한다.
이 공연을 마치고 조지 해리슨은 매니저 브라이언 앱스타인에게 이런 공연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앞에서 말한 대로 비틀즈는 1년 후인 1966년 8월 이후 공식 라이브 무대를 가지지 않았다.
이후 레코딩을 취입할 때만 서로 모여 밴드의 명맥을 이어가던 비틀즈는 결국 1970년 공식 해산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비틀즈의 연대기를 쫓아가지만 비틀즈가 결성 초기 5인조 밴드였다는 점과 드러머가 피트 베스트에서 링고 스타로 바뀐 과정 그리고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멤버들에게 끼친 영향 등 흥미로운 사실을 간과해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 2012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무려 208분짜리 조지 해리슨 다큐 ‘Living In The Material World’가 개봉했다. 2001년 세상을 떠난 조지 해리슨에 대한 충실한 전기였지만 그 작품을 보고 리뷰를 남기지 않은 건 거장의 작품임에도 조지 해리슨을 새롭게 조명한 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론 하워드의 ‘Eight Days A Week - The Touring Years’ 또한 그렇다. 영화는 비틀즈라는 거대한 산에 입산하지 못했다. 그저 멀리서 산을 바라본 느낌이랄까? 본편이 끝난 후 부록처럼 수록된 30분짜리 비틀즈의 셰이 스타디움 공연 실황이 아니라면 아쉬울 뻔한 130여 분이다.
PS1 : 영화에서 공식 데뷔 이전 리버풀의 캐번 클럽에서 연주하는 비틀즈의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당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무명의 밴드가 연주하는 모습을 촬영했을까?
PS2 : 영화 개봉에 맞춰 출반된 비틀즈의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Hollywood Bowl’은 1964년과 1965년 비틀즈가 LA의 헐리우드 볼에서 가졌던 실황앨범으로 지난 1977년 발매되었다가 절판된 ‘The Beatles At The Hollywood Bowl’의 리마스터링 음반이 아니라 마스터 테이프를 새로이 손질한 것이다.
이십 대 초중반 젊은 비틀즈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비틀 마니아들의 거대한 함성도.
앨범의 프로듀싱은 1977년 판을 작업했던 조지 마틴의 아들 자일스 마틴이 담당했다. 현대의 기술은 50년 전의 열악한 공연 녹음을 선명하게 복원했다. 언젠가 야구 중계 장비로 송출했다는 셰이 스타디움 실황도 깨끗하게 복원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016.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