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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하이웨이 Nov 11. 2016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익숙한 타인

평소 익숙한 사람이 낯설어 보일 때도 있고 낯선 사람이 익숙하게 여겨질 때도 있는데 사실 두 가지 상황 모두 상대를 잘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존하는 남녀관계에 있어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데 관계란 이성(理性)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홍상수 감독의 신작,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고나면 자연스럽게 그의 2008년도 작품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강연 차 제주에 들렸다가 선배 양천수(문창길)를 만난 영화감독 구경남(김태우)은 양천수의 아내가 대학동창 고순(고현정)이라는 걸 알고 놀라지만 서로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경남과 고순은 학창시절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지 경남은 양천수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고순과 섹스를 하다가 마을 사람에게 발각된다.    

겨우 현장을 빠져나온 경남은 바닷가에서 고순을 재회한다. 경남은 다시 고순을 원하지만 고순은 ‘나에 대해 뭘 아느냐’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면박을 준다.    

돌아서면 남이라는 말은 이런 남녀 간에 딱 들어맞는다. 떠나간 연인을 재회했을 때 상대가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물으면 과연 뭐라 답할 수 있을 것인가?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홍상수 특유의 화법으로 풀어간 작품이다.    

영수(김주혁)는 여자친구 민정(A, 이유영)이 다른 남자와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동네 형 중행(김의성)으로부터 듣고 민정과 크게 싸운다.    

민정은 당분간 연락하지 말자며 떠나고 영수는 민정(A)과 싸운 것을 곧 후회한다.    

한편 민정(A2)은 자신을 민정(A)이라고 부르는 재영(권해효)을 만나 술을 마신다. 재영은 자신을 안다고 말하지만 민정(A2)은 자신이 쌍둥이라고 한다.    

민정(A2)은 또 영화감독 상원(유준상)을 만나 술을 마신다. 역시 상원은 민정(A)을 알고 있지만 민정(A2)은 상원에게 초면이라고 한다.    

과연 민정(A)과 민정(A2)는 동일인일까? 아니면 쌍둥이일까?    

민정(A2)에 의하면 재영과 상원은 모두 처음 만난 남자들이다. 그런데도 민정(A2)과 재영, 민정(A2)과 상원은 처음 만나 잘도 술을 마시며 떠든다.    

사람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편 상원과 술을 마시던 민정(A2)은 다시 재영을 만나지만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재영이 만나 함께 술을 마신 여인은 민정(A)이었을까? 민정(A2)이었을까? 상원과 재영은 민정(A2)을 두고 싸우다가 서로가 중학교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어울린다.    

사람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어색해진 상황을 벗어나고자 민정(A2)은 자리를 뜬다.    

민정(A)을 찾아 헤매던 영수는 골목길에서 민정(A)을 만나지만 모르다고 하자 황당하다. 하지만 영수를 처음 봤다는 민정(A2)은 함께 술을 마실 것을 제의하고 두 사람은 영수의 집에 들어가서 섹스를 한다.      

그런데 영수는 민정(A)과 처음 하는 것처럼 설렌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민정(A)과 민정(A2)은 같은 사람일 수도 꼭 닮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남자들은 민정(A2)을 자신이 알던 민정(A)이라고 믿지만 민정(A2)은 자신이 민정(A)이 아니라고 한다.    

어쩌면 민정(A2)은 사람들이 모르는 민정(A)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는 서로 다른 민정을 술을 끊은 민정(A)과 술을 마시는 민정(A2)으로 구분한다. 영수가 아는 민정(A)은 술을 끊었다. 하지만 다른 남자와 술을 마셨다는 소문이 들린다.    

그런데 민정(A)이 다른 남자와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를 영수에게 전한 중행 역시 직접 목격하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고 영수에게 말한 것이다.    

결국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아는 트럼프와 박근혜와 홍상수는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201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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