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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하이웨이 Sep 19. 2016

이 자전거로 속초에 다녀오셨다고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처럼 (잘은 못해도)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그 동안 해본 짓도 많다. 친구가 자전거 함께 타자고 권했을 때도 문득 든 고민은 ‘이 나이에 자전거까지?’ 이었다.    

자전거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자전거를 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자전거를 사려고 하니 MTB니 로드니 하이브리드니 픽시니 자전거 종류가 많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브랜드도 다양하고 족보도 어지러웠다. 데오레, SLX, XT, XTR..    

도대체 무슨 말인가?    

3대만 올라가면 집안 족보도 꿰기 어렵거늘 저 복잡한 자전거 족보를 도대체 어떻게 외운단 말이냐?    

더 이상 고민과 생각이 귀찮아질 무렵 퇴근길에 집 앞에 있는 삼천리자전거 대리점에 들렸다가 충동적으로 아팔란치아 칼라스 70을 질렀다.    

“아저씨 이 자전거 좋은 거예요?”

“MTB로는 이 가게에서 제일 비싼 겁니다.”    

가게 문을 막 닫으려는 찰나 굴러들어온 손님을 놓치기 싫었던지 주인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칼라스 70의 장점을 늘어놓았다.    

“가격 대비 만족도 최곱니다. 헤헤, 수입 자전거라고 해도 알고 보면 부품은 다 똑 같은 거 쓰거든요. 이놈도 변속기, 브레이크 다 일젭니다. 한 마디로 한국에서 사는 일본인이라고 할까요?”

“아하..”

“타시다 문제 생기면 언제든지 오세요, 요 앞 8단지 사시죠?”    

그렇게 갑작스럽게 자전거를 장만해서 라이딩을 시작하고 장거리 네 번 째 만에 용문역을 출발해서 미시령을 넘어 속초에 다녀왔다. 누구는 껌 사러 다녀온다고도 하고 포켓몬 잡으러 떠난다고도 하지만 용문에서 속초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157킬로는 초보에게 지옥 길이 따로 없었다.    

터널(며느리고개 터널, 철정터널, 인제터널)은 왜 그리 많고 고개는 어찌나 높은지. 변속 도중 체인 이탈을 세 번씩이나 경험한 초보 라이더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샵에 들러 자전거에 이상이 없는지 살펴보게 했다.    

“자전거 좋지요?”

“저 이 거 타고 속초에 다녀왔습니다.”

“네?"

“미시령 넘어 속초에 다녀왔다고요.”

“그런 데 가는 사람들은 수백 만 원짜리 자전거 타고 가는데..”    

자전거 샵 주인은 말끝을 흐리며 다소 놀랐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다행히 자전거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너무 급하게 변속하지 마시고요..”    

자전거 브랜드도 족보도 몰랐으니 라이딩을 시작하기 전에는 당연히 수입자전거가 도로에 넘치는지 알 턱이 없었다.    

처음엔 자전거 샵 주인이 자전거 잘 지키라며 준 무거운 자물쇠를 쉴 때마다 채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자전거는 도난 위험이 거의 없는 싸구려라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반면에 수 백 만원 혹은 수 천 만원 한다는 비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자전거 잃어버릴까봐 매 순간 얼마나 시름하는지 알게 되었다.    

건강을 지키고 시름을 덜고자 타는 자전거. 그런데 그 자전거가 새로운 시름거리를 던져준다면?    

‘뚜르 드 프랑스’에 출전하는 것도 아니고 속초에 껌 사러 간다면서 수백, 수천 하는 자전거가 과연 필요할까?    

2016.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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