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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하이웨이 Sep 19. 2016

고산자, 대동여지도

디지털 시대와 김정호의 시대

기대만큼 관객을 모으진 못하고 있지만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보기에 따라서는 좋은 작품이다. 영화는 군사기밀이 담긴 지도는 나라의 것이라는 대원군과 안동김씨에 맞서 모든 백성이 지도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김정호의 주관을 또렷이 부각시킨다.    

사실 대동여지도를 제작했다는 고산자 김정호는 생몰이 불분명한 인물이다. 그리 오래 전 인물이 아님에도 그의 생몰이 불분명하다는 건 그가 적어도 양반이었거나 벼슬아치는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물론 추정하기에 따라서는 스스로 백두산을 일곱 번 오르고 전국을 세 번이나 돌았다는 전설과 달리 조정에서 녹봉을 받으며 지도를 제작한 공인(工人)이었을 수도 있다.    

무엇이 옳든 강우석 감독은 영화에서 김정호가 지도를 제작하게 된 동기를 어려서 부친을 잃은 데서 찾는다. 홍경래의 난에 소집되었던 김정호의 부친은 관아에서 지급한 잘못된 지도 때문에 산속에서 목숨을 잃는다.    

본인의 생몰도 알려지지 않은 판에 김정호의 아버지가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알 수 있겠나? 하지만 그럴듯한 상상이다.    

이 영화에서 지도란 곧 정보다. 예나 지금이나 정보를 가진 자는 권력도 얻는다. 대동여지도를 차지하기 위해 대원군과 안동김씨가 벌이는 암투는 다소 허황되게 그려졌지만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김정호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권력다툼으로 메우다 보니 영화가 매우 식상해져 버렸다는 점이다.    

사실 작가가 가장 자유로운 순간은 정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재구성할 때다. 작가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영화가 오롯이 김정호의 영화가 아니라는 점은 대단히 아쉽다.    

하지만 지도라는 정보의 독점과 공개를 둘러싼 갈등은 좋은 소재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나라에 바치기 보다는 모든 백성이 펀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저자거리에 배포하려 한다. 완성된 대동여지도 목판을 가지고 관아에 갔더니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불태워 버렸다는 가슴을 칠만한 기존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은 누구나가 정보를 생산하거나 가공하고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들어 발생한 저작권 문제라든가 미네르바 사태 등의 본질은 결국 정보를 누가 생산하고 공급하느냐의 문제다.    

과거에는 정보를 오직 소비만 하던 일반인들이 정보의 생산 과정이나 유통 과정에 참여하자 그것을 독점하고 있던 세력 즉 언론이나 음반산업 등이 맘대로 정보를 생산하고 함부로 유통한 네티즌을 상대로 일전불사한 것이 바로 위 사건들이다.    

허위정보 생산이나 불법유통이 잘 하는 짓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정보 생산이나 유통에 라이선스가 필요하다는 생각 즉 정보가 기득권의 전유물이라는 기본적인 발상은 영화에 비친 김정호가 살던 세상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    

아마 디지털 시대의 정보 문제가 김정호의 시대를 그렇게 보이게 했겠지만.    

2016.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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