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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하이웨이 Sep 18. 2016

5부 바지를 입는 이유

라이딩을 위해 자전거를 살 때만 해도 자전거용 바지가 따로 있는지 조차 몰랐다. 오랜 친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라이딩을 늦게 시작한 것은 실은 엉덩이 아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해도 그르지 않다.    

십년 넘게 헬스장에서 몸을 만들었지만 엉덩이 근육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똥꼬는 어떻게 단련을 해볼 도리가 없었다.    

가끔 사이클 머신에 앉았다 내려오면 다음 날 틀림없이 보이는 혈변. 그동안 자전거 타지 못 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상은 적중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자전거를 구입한 날, 샵에서 불과 백 미터 남짓한 집까지 똥꼬가 아파서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갈 수가 없었다.    

이미 셈이 끝난 자전거를 도로 물리자고 할 수도 없고 나는 샵 주인에게 솔직히 말했다.    

‘저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요..’    

주인은 손가락으로 우리 아파트를 가리키더니 여기서 저기까지도 타지 못하냐며 안장에 젤 패드를 얹어 보라고 권한다.    

자전거 바지가 있다는 걸 알려준 건 라이딩을 권한 친구다.    

그런데 자전거 바지라는 게 완전 쫄바지라 저걸 어떻게 착용하고 다니나 싶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심하게 일명 속바지라고 하는 패드팬츠를 구입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패드팬츠를 착용할 경우 겉에는 도대체 뭘 입어야 한단 말인가? 등산복? 자전거 타고 산에 갈 것도 아니고.(물론 자전거 타고 산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래서 다시 구입한 게 긴팔 저지와 9부 바지였다. 저지를 긴팔로 한 것은 한 여름에 따로 토시 착용하기가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긴바지 구입 이유는 그래도 반바지보다 좀 덜 민망할 것 같아서 였다.    

9부 바지를 입고 옥수역에서 양평역까지 처음 나선 날, 오빈역 지나 날 괴롭힌 것은 의외로 패드가 지켜주는 똥꼬가 아니라 헬스장에서 단련했다고 자랑했던 대퇴부 근육이었다.    

똥꼬의 아픔과는 차원이 다른 근육 뒤틀림. 친구는 날 위로한답시고 긴바지라 원활하게 근육을 사용하지 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한다.    

옳거나 그르거나 난 다음 날 바로 5부 바지를 주문했다. 그리고 이후 9부 바지는 입지 않았다. 바지가 짧아서 그런가? 그동안 몇 차례 장거리 라이딩을 했지만 근육경련 현상도 많이 나아졌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비가 내린다는 구라청의 예보를 무시하고 양평까지 패달질을 했다. 이번에는 왕복이다. 비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날씨가 제법 쌀쌀할 것 같아 오랜만에 9부 바지를 꺼내 입었다. 다행히 다리에는 아무 이상도 발생하지 않았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일어났다.    

5부 바지를 입는 이유? 또 하나의 이유는 손빨래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손으로 빨기가 너무 어렵다. 9부 바지는.    


2016.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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