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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n 13. 2019

#5. 산후조리원 생활,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라떼파파, 고마워요

드디어, 산후조리원


산후조리원에 들어오던 첫날, 첫째를 낳고 왔던 때와 같은 산후조리원에 온 덕에 모든 것이 익숙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방, 담백하고 정갈한 매 끼 식사, 임신 중 생긴 부종을 시원하게 날려주는 하루 한 번 마사지.

아, 임신 후기에 이 조리원 라이프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첫째 때는 한 공간에 갇힌 듯한 답답함과 수시로 울리는 수유콜, 그때마다 문득문득 느꼈던 육아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왜 산후조리원을 천국이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이 곳이 왜 천국인지.

이번엔 남이 해주는 밥, 청소, 빨래, 그리고 육아. 마음껏 누리고 돌아갈 테다.

조리원 입소 첫날의 마음가짐이었다.


매일 엄마가 하는 일, 그리고 아빠의 눈물


그러나 이번엔 그때와 또 다른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집에 남겨진 첫째 아기와 남편이었다.


조리원에 올 때면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남편.

남편은 회사로부터 일주일의 출산 휴가를 받고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여유 시간을 즐기는 라떼파파를 상상했다.


그러나 한 달째 코감기를 달고 사는 데다 급기야 출산 직전 열감기 까지 온 탓에 아빠와 있을 때면 종일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고 병원에 데리고 가느라, 열심히 식사를 준비했건만 먹지는 않고 장난만 치는 아기를 봐야 하거나 하는 등 마음처럼 되지 않는 육아 생활에 남편은 지쳐가고 있었다.


남편이 홀로 바다를 처음으로 등원시킨 날,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동안 혼자 매일 이 여정을 해주어 고마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동안의 고충을 남편이 진심으로 공감하고 이해해 주고 있음이 위로가 되었고, 고마웠다.

남편은 바다의 식사를 챙기느라 자신의 밥을 챙겨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말하며, 등원 후 어질러진 집 거실 소파에 앉아 매일 이러했을 나의 하루를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고 말했다.


사실 남편은 평일에는 얼굴도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쁘지만, 주말이면 최선을 다해 아기와 놀아주는 열성 육아대디이다. 그 덕분에 거의 주말에만 보는 아빠임에도 아기는 아빠가 있을 때면 엄마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때문에 남편은 아기와 종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쉽게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등원 후엔 자유시간까지 생긴다니!


하지만 주말에 엄마 아빠가 함께 아기를 보는 것과 둘 중 누군가 홀로 아기를 보는 것은 달랐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집안일을 촘촘히 해내지 않으면 집은 금세 어질러지고 그 와중에 또 해야 할 집안일이 쌓이게 된다. 또 아기는 단 둘이 있을 때는 혼자 노는 것이 지루한 지 유독 칭얼대고 함께 놀아달라며 매달린다. 그래서 또 할 일은 쌓여가는 쉼 없는 노동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아마 남편은 나의 부재로 인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육아와 집안일에 작은 구멍들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했다.


남편과 아기가 생각난다. 보고 싶다.


그렇다면 이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어땠을까.

나도 마음이 무거워 온 신경이 남편과 첫째 아기를 향하고 있었다. 집 거실에 설치된 CCTV 영상을 수시로 보면서 아기의 컨디션은 어떤지 남편은 육아 과업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곤 했고, 아기가 엄마를 부르며 울기라도 하면 함께 울었다.


임신 후기에 그렇게 꿈꾸던 조리원 라이프가 즐겁지 않았다. 결국 아기와 남편에 대한 걱정과 보고 싶은 마음에 3일에 한번씩 외출하는 나 자신을 보며, 이래서 둘째 엄마들은 산후조리원 중도 퇴실이 많다고들 하는구나 이해가 갔다.


중도 퇴실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일과에 적응해 갔고, 첫째 아기가 갑작스러운 엄마의 사라짐으로 인해 느꼈을 정서적 불안감도 아빠의 애정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또 출산휴가가 끝나고 남편이 출근한 이후에는 시어머님, 시아버님 두 분이서 아기를 넘치는 사랑으로 돌봐주신 덕에 아기는 여느 때처럼 밝은 모습으로 어린이집에 등하원 했다는 후문도 어린이집 선생님을 통해 들려왔다.


무사히 2주의 기간을 마치고 나갈 수 있을까 고민했던 첫 몇 날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을 놓고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 산후조리원 퇴실이다. 조리원 기간을 마칠 수 있게 된 것은 온전히 남편의 육아 전격 지원 덕분이다. 둘째 아기 햇님이 덕분에 얻은 것은 또 한 명의 가족 구성원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체감함, 그리고 이해와 공감이었다. (이래서 둘째를 낳아야 하는가 보다. 아빠에게 진정한 독박 육아 체험기를 선사하고픈 분들에게 둘째를 추천합니다.)


“라떼파파, 고마워요”


남편과 바다가 함께한 날들. 아빠가 목욕도 시켜주고, 머리도 묶어주고, 밥도 차려주고, 결혼식장에도 데리고 갔다. 바다가 늘 웃음 가득할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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