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넘게 로맨스 장르의 교본이 된 작품
『오만과 편견』은 고전문학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특히 로맨스 소설의 고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로에 대한 편견을 가진 귀족 남성과 젠트리 계급 여성의 정신적 성장과 연애, 그리고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집안, 연애, 결혼에 대한 여러 사건들이 주된 내용이다. 당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와 여성 문제, 계급 간 갈등, 다양한 인간군상, 결혼에 대한 통념 등을 풍자적이고 해학적으로 다루었지만 흔히 ‘고전’이라 불리는 문학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역사, 철학, 심리, 종교, 사회 등 다방면에 걸친 깊은 고찰에는 다소 못 미친다는 평가가 흔하다. 실제로 푹 빠져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으나 책장을 덮고 무엇이 남았느냐를 생각했을 때는 좀처럼 떠오르는 것이 없다. 다만 이 작품이 가진 독보적인 가치는 대중성에 있다.
문학은 물론 모든 예술 분야에서 대중성은 예술성과 대립되는 개념처럼 여겨지며 예술작품의 가치를 논할 때 항상 첨예한 주제가 되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인 것만은 분명하다. 2003년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 2위에 오르기도 한 『오만과 편견』의 압도적인 대중성은 200년도 더 지난 오늘날에도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본 작품을 드라마, 영화, 연극 등으로 미디어화 한 것만도 모두 세기가 힘들고, 『오만과 편견』의 플롯은 로맨스 장르의 교본이 되어 다양한 장르에서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 작품의 가치라고 할 수는 없다. 다른 고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뿐이지,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파생된 셀 수 없는 양산형 작품들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불성설이다. 이야기의 짜임새와 완성도, 등장인물의 개성과 다양성, 사회 풍습에 대한 풍자와 해학, 작가의 수려한 문체와 작법 등에서 아류작은 범접하기조차 어려운 높은 수준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감탄한 부분은 등장인물의 다양성과 개성, 그리고 일관성이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작품 전반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유지된다. 그래서 앞뒤 상황을 놓치고 대화문만 읽더라도 어떤 인물이 하는 말인지 알아챌 수 있을 정도다. 훌륭한 번역의 영향도 있겠지만 대화문의 내용에서 드러나는 인물의 사고방식만으로도 가능하다. 여성 특유의 뛰어난 관찰력과 미묘한 감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한껏 발휘된 듯하며, 이는 『겐지모노가타리』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창조된 등장인물들은 독자를 흐뭇하게 하는 인물이든, 꼴 보기 싫은 인물이든 모두 매력적으로 만든다. 다만 베넷 가문의 다섯 딸이 모두 뚜렷이 구분되는 제각각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같은 집안에서 자란 딸들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만큼 인물 표현력이 뛰어나다. 직접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현대 영상물에서도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기 어려워 쉽게 잊히거나 구분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작가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가 하면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선역과 악역으로 확연히 구분되어 입체감이 떨어진다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작품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회적인 문제들, 가부장제, 상속제, 여성 차별, 허영 가득한 결혼 풍습 등이 주요 인물들의 사랑과 결혼이라는 단순한 방법으로 모두 해소는 것 역시 아쉽게 느껴지기도 한다.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도, 그렇다고 문제를 제대로 고발하는 것도, 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이나 실마리를 찾는 것도 아닌, 문제를 문제로 덮어 버린 듯한 결말이 다소 맥이 빠지는 부분이다. 특히 개인적으로 사랑과 결혼을 문제 해결의 수단이나 이야기의 결말로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는데, 사랑이라는 것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감정이며, 보편적으로 그것을 영원불변한 듯 묘사하는 것과는 반대로 현실에서는 더없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 감정으로써의 사랑만으로 맺는 결말은 상당히 불안정하게 느껴지며, 심하게는 대책 없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혹은 그러한 결말마저도 결국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 문제에 대한 풍자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기에는 결말부의 묘사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행복한 모습이어서 설득력은 부족하다. 다만 작가인 제인 오스틴 자신이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았던 것을 보면 본인은 그러한 사회 문제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제인 오스틴은 20세 때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는 일을 겪기도 했으며, 그즈음에 『오만과 편견』을 집필했다.
작가 본인의 의도나 신념이 어떠했든 간에, 『오만과 편견』이 훗날 ‘판타지’라고 불릴 만큼 현실과 동떨어진 신데렐라식 낭만주의적 작품들을 양산해 냈다는 점에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동시에 이 신데렐라 스토리가 200년이 지난 지금도 로맨스 장르를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은 로맨스 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확고하게 만족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가진 대중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