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드니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

운명론자가 운명을 대하는 자세

by 이내

본 작품은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와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작가 드니 디드로가 『트리스트럼 샌디』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본 작품의 큰 줄거리는 자크라는 이름의 하인과 그의 주인이 어딘지 모를 목적지를 향해 여행을 하는 도중, 그들과 주변 인물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다. 전체 작품을 관통하는 이야기는 자크의 사랑 이야기인데, 정작 자크의 이 이야기는 중간에 끼어드는 다른 이야기들이나 사건들로 계속해서 끊기기 일쑤고, 마지막까지도 제대로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끝이 난다. 다만 실제 화자의 이야기가 끝난 뒤 가상의 편집자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식으로 결론을 맺기는 한다. 어찌 되었든, 자크의 사랑 이야기가 주요 이야기인 듯 보이지만 결국엔 다른 곁다리 이야기들로 작품이 채워지는 이러한 형식은 『트리스트럼 샌디』에서 주인공 샌디의 인생 이야기라면서 정작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더 중요하게 펼쳐지는 것과 흡사하다.


그 밖에 작가(화자)와 독자가 대화를 하거나, 그 대화가 이야기의 내용에 영향을 주는 것, 풍자와 유머가 넘치는 것 역시 두 작품이 비슷한 점이다. 다만 『트리스트럼 샌디』가 정말 혼돈 그 자체였다면,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은 그보다는 훨씬 더 정리되어 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완결성을 가지며, 보다 이해하기 쉽고 맥거핀처럼 여겨지는 메인 이야기도 단정하게 끝을 맺는다. 두 작품을 비교하자면,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은 『트리스트럼 샌디』의 형식을 보다 정갈하게 다듬은 작품이라 느껴졌다. 그래서 본 작품이 『트리스트럼 샌디』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나, 『트리스트럼 샌디』 보다 더 느끼고 배울 점이 많았고 재미 면에서도 더 좋았다.


무엇보다도 본 작품은 철학과 소설이 훌륭히 접목되었다는 점이 독보적이다. 『트리스트럼 샌디』에도 철학적인 내용들이 들어가 있었으나 다소 난잡하여 정리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반면 본 작품의 작가 드니 디드로가 철학자인지라 그런지 유물론과 결정론에 대한 작가의 철학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단 주인공이자 주요 화자인 자크는 제목에서부터 운명론자이다. 그는 ‘저기 높은 곳에 쓰여 있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운명론적 입장을 취한다. 그렇다고 그가 허무주의나 패배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찾아 확인하려는 듯 보인다. 사실 디드로의 운명론은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기보다 ‘인과관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를 말하는 결정론이다. 다만 이 인과관계를 일으키는 현상과 사건들이 우연하고 통제불가능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그 정해진 운명을 알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니 자크는 운명론자이지만 자신의 운명을 확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자크는 진취적이며 똑똑하고 다소 건방지기까지 하여 주인을 당혹스럽게 하고 때로는 분노하게 만드는, 다루기 어려운 하인이다. 심지어 자크는 화려한 말발로 주인을 마치 하인처럼 취급하고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그의 주인은 수동적이고 무기력하며 다소 별 볼 일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애초에 그에겐 이름도 없고 상세한 성격도 부여되지 않는다. 다만 타고난 신분에 의해 똑똑한 하인을 부릴 뿐이다.


이렇게 주인과 하인이 역전된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현실은 벗어날 수 없다. '높은 곳에 쓰여있다'는 운명론적인 입장에서, 이들은 끝까지 각자의 신분에 맞게 행동한다. 이야기의 결말부에서도 주인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를 하인인 자크가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며, 주인은 인맥을 이용해 편안한 삶을 영위한다. 자크는 작품 내내 돈키호테처럼 행동하는 인간이지만 혁명가는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행동한다. 이는 실질적인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자 풍자로 느껴진다.


자크와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인간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만 작가는 자크와 같이 독특한 인물을 내세워 그러한 부조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의심하게 만들며, 저항하게 한다. 디드로의 결정론적 운명론 속에서 자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혹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러한 비극적인 운명 속에서 그의 자조 섞인 말과 행동은 독자를 웃게 하고 즐겁게 하고 안타깝게 하는 등 다양한 자극을 준다. 그래서 자크는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보통 인간들을 대변한다. 자크라는 이름 자체가 프랑스어권에서 매우 흔한 이름인 것에도 그런 의미가 있다.


작품 속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도 운명에 이끌리는 비극과 희극들을 마주할 수 있다. 여관 여주인의 이야기 속 아르시 후작은 한 여인을 배신했다가 엄청난 독기를 품은 복수에 휘말려 창녀와 결혼하고 만다. 그러나 아르시 후작은 창녀를 받아들이고 그녀의 과거를 용서하며 행복을 찾아간다. 복수를 한 여인은 계획을 성공시켰으나 결국 복수에는 실패한 셈이다. 아르시 후작 역시 자신이 창녀와 결혼해 살아가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또 주인의 이야기에서 주인은 사기꾼들에게 걸려들어 전재산을 날리고, 사기꾼 기사에게 속아 그의 내연녀와 결혼하고 기사와 여자의 아이 양육비까지 떠맡고 만다. 그렇게 운명에 이끌려 가던 주인은 우연히 기사를 마주쳐 그를 죽인 뒤 도망친다. 자크 역시 운명에 이끌려 군대에 입대하고 다리를 다친 뒤 착한 농부 가족과 사기꾼 같은 의사, 데글랑 성주, 주인의 범죄에 의한 감옥행, 탈옥 등에 의해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다가 결국 드니즈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와 사건들 속에서 인물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연히, 혹은 타인에 의해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일들은 자크의 말대로 저 높은 곳에 쓰여 있는 것들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은 매우 방관적이다. 어떤 가치판단을 하거나 악인과 선인을 구분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각자의 입장이 있고 그들의 상황과 신념, 가치관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지나치게 잔인한 복수를 해도, 타락한 종교인이어도, 살인자여도 그들은 각자의 운명 안에서 몸부림치며 자신이 가진 능력과 기질대로 행동한다. 드디로의 이러한 관점을 '상대적 도덕성'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지극히 메타적인 작품의 문체와도 잘 들어맞는다.


본 작품에는 디드로의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글쓰기, 그의 유물론적 결정론의 철학, 사회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행동들, 그 밖에도 다양한 사유와 관념들이 가득하다. 『트리스트럼 샌디』와 비슷하고 더 쉽게 읽히면서도, 들여다볼수록 깊은 철학적 고찰을 내포하고 있어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작품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을 접할 때마다 철학적 지식의 부족함과 아쉬움을 크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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