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by 이내

『파우스트』는 괴테가 어린 시절부터 구상하기 시작하여 죽기 직전까지 집필해 완성시킨 작품이다. 주인공인 파우스트는 1500년대에 실존했던 요한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 실존 파우스트는 마술사, 허풍쟁이, 사기꾼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를 주제로 한 다른 작품들도 상당하다. 이 인물은 생전 수상하고 이상한 행동들을 많이 벌였고 죽음도 석연치 않았기에, 악마와 계약을 맺었으며 계약이 끝난 뒤 악마에게 처참히 살해당했다고 전해져 왔다. 괴테는 이 인물을 되살려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으로 만들었고, 그 답을 알아내기 위해 악마와 계약을 맺게 한다. 이 악마가 그 유명한 ‘메피스토펠레스’.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와 계약을 맺은 이유는 신과의 내기 때문이다. 언제나 끊임없이 고뇌하고 노력하는 학자 파우스트가 현실에 안주하는지, 아니면 계속해서 노력해 신을 향해 나아가는지를 두고 신과 메피스토펠레스가 내기를 한 것. 이렇게 한 인간을 두고 신과 악마가 내기를 벌인다는 점에서 『파우스트』는 『욥기』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 다만 주인공이 처하는 상황은 정반대다. 『욥기』에서 욥은 전 재산을 잃고 가족이 몰살당하는 고통을 겪었지만,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을 통해 아름다운 여인과 권력, 쾌락 등을 누린다. 『욥기』에서 사탄의 목적이 욥으로 하여금 신을 의심하고 저버리게 하는 것이라면 메피스토펠레스의 목적은 파우스트가 더 정진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해 신의 구원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유혹하고 타락시키기 위해 그에게 갖가지 쾌락과 만족을 선사한다.


그렇게 전개되는 『파우스트』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고 그레트헨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를 잃는 비극을 다룬 것으로 1808년에 발매되었다. 2부는 파우스트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들을 만나고 헬레네와 사랑에 빠지지만 역시 그녀와 아들을 모두 잃으며, 말년에 권력자가 되어 백성들을 다스리다 끝내 구원받는 이야기다. 2부는 1부 이후 24년 뒤, 괴테가 사망한 직후에 발매됐다. 20여 년의 간극이 있는 만큼 1부와 2부의 감상은 사뭇 다르다. 1부는 비교적 줄거리 중심이며 이해하기 수월하다. 반면 2부는 1부에 비해 암시와 상징, 비유가 더 많고 줄거리와 인과성 등은 모호하여 난해하다. 괴테가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경험하고 깨달은 모든 것들을 담으려 했기 때문이리라.


파우스트 박사는 앞서 소개했듯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이다. 이미 학문적으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다다랐으나 자신을 무려 신과 비교하며 만족하지 못한다. 끝없는 지식과 능력, 세속적인 쾌락에 목말라하는 그는 홀연히 나타난 메피스토펠레스를 거부할 수 없었다. 그가 신에 반하는 악마이고 사탄임을 알면서도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맺고 그가 제공하는 혜택을 모두 맛보기 시작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지식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경험하고 깨달으면서 진리를 향해 나아가 끝내 신에 닿겠다는 의지다. 즉, 파우스트는 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닿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계속해서 노력하고 고뇌하는 인간인 것이다.


욥이 그랬던 것처럼 파우스트 역시 신의 애착을 받는 인간이지만, 사실 파우스트는 정통적인 기독교인이라 볼 수 없다. 그는 별다른 망설임 없이 악마와 계약을 하고, 악마의 힘을 이용해 쾌락을 얻는다. 그레트헨의 오라비를 제 손으로 살해하고, 그녀의 어머니도 간접적으로 살해하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기독교적인 신앙심이 없다. '하느님을 믿느냐'는 그레트헨의 질문에 파우스트는 '신 혹은 신의 이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겠느냐'며, '그러니 믿는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면서 그는 '만물을 포용하고 보존하는 존재, 하늘과 대지, 별 등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이 신이며, 그래서 신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존재이고 그저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파우스트의 이런 모호한 대답에 그레트헨은 그에게 신앙심이 없다고 나름대로 판단하기도 한다. 여기서 보여 주는 신에 대한 파우스트의 생각은 '세상 모든 것이 신'이라는 범신론적 해석이며, 작가인 괴테가 대표적인 범신론자이기도 하다.


즉, 파우스트(또는 괴테)에게 신이란 특정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만물이 신이다. 그러니 신이라고 선량하기만 하라는 법도 없다. 악한 것도 세상의 일부, 그러니 신의 일부다. 실제로 그는 메피스토펠레스를 두려워하는 그레트헨에게 '그런 존재도 세상에 필요한 법'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정의할 수 없는 신 앞에서는 그저 신실한 신앙심과 기도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인간은 스스로를 구원해야 하며, 그 방법은 끊임없이 노력하여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뿐이다.


『파우스트』에는 구원받는 인물이 두 명 등장한다. 그레트헨과 파우스트다. 그레트헨이 자신의 어미와 자식을 죽이고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가 그녀를 구하러 왔을 때, 그녀는 파우스트를 따라가지 않고 참회하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에 메피스토펠레스가 ‘심판받았다’고 말하자 ‘구원받았다’라는 신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레트헨은 생명체라면 본능적으로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생명 보존의 본능을 강한 의지로 끊어 내고 스스로를 구원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로부터 온갖 쾌락과 욕망을 채우면서도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레트헨과의 사랑, 헬레네와 자식에 대한 사랑, 발푸르기스의 밤에서의 쾌락, 전쟁 영웅이 되는 영예, 통치자의 권력까지 모든 것을 얻지만 그는 계속해서 현실에 대한 고민과 다음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신은 메피스토펠레스와의 대화에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말한다. 이 한 문장에 파우스트라는 인간에 대한 설명과 그가 구원받은 이유가 들어 있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 내용은, 파우스트가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하면, 즉 그가 현실에 안주하면 메피스토펠레스가 내기에서 이기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빼앗는 것이다. 그리고 파우스트는 말년에 자신의 영지를 통치하면서, 미래에 자신이 원하는 순간이 오면 '순간아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라고 말하겠다는 의미로 그 계약의 문장을 입에 담는다. 메피스토펠레스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의미가 뭐가 됐든 그 문장을 말했으니 자신이 이겼다며 파우스트의 영혼을 취하려 한다. 그때 천사들이 나타나 메피스토펠레스를 저지하고 파우스트의 영혼을 구출해 간다. 천사들은 ‘정신세계의 고매한 일원이 악으로부터 구원받았다. 언제나 노력하며 애쓰는 자는 우리가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천상에 도달한 파우스트는 이미 구원받은 그레트헨을 만난다. 그녀는 성모 마리아에게 그의 구원을 청하고, 파우스트를 축복하는 말들과 함께 작품은 끝이 난다.


이 작품이 발표되고 많은 논란이 일었다. 악행을 저지르고 신을 믿지 않는 듯한 태도로 살아가도 노력하고 정진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기독교의 교리와 매우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을 했고 그를 이용해 온갖 쾌락을 즐기며 타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그레트헨의 오라비와 어미를 죽이고, 말년에는 언덕 위에 사는 노부부를 불태워 죽게 하기도 했다. 이런 인물이 끝내 구원받는다는 내용은 당시는 물론 현재에 와서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물론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가 그를 계속 유혹했기에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도 있다. 작품에서 신은 ‘선량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에 쫓기더라도 올바른 길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자칫 의도나 목적에 따라 과정은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로 『파우스트』는 히틀러 나치의 선전 도구로 이용당한 바 있다. 발전과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행동하는 파우스트의 모습은 계몽주의적이면서 행동주의, 절대주의, 제국주의와 연결되는데, 이를 나치가 '행동적인 독일인'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작품 속 신의 대사나 연출 등으로 미루어 괴테는 파우스트를 옹호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리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으로 끝내 구원받았다손 치더라도 그가 과연 이상적인 인간상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인공인 파우스트가 악인인지 아닌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파우스트』는 중세 기독교적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을 스스로 구원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보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기독교를 포함한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 종교들이 '예정론'과 같은 운명론적인 태도를 취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생각은 가히 도전적이다. 실제로 기독교에서 예정론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첨예한 주제다. 『파우스트』는 19세기 초반 신학자 슐라이어마허에 의해 자유주의 신학이 태동하던 시기에 세상에 나왔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문학적·예술적으로 보여준 『파우스트』가 자유주의 신학의 성장에 문화적 토양을 제공했음은 분명하다. 당시 괴테가 독일 지성인들에게 미친 영향력을 생각하면,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게 된 역사적 흐름에 『파우스트』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을 두고 신과 악마가 내기를 벌이는 내용은 『욥기』에서 모티브를 따 왔으나, 선량한 욥이 가혹한 운명에 속절없이 끌려다닌 것과는 달리, 파우스트는 쾌락에 빠지고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기에 이른다. 인간은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존재다. 숱한 방황과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뉘우치고 정진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몫이다. 스스로 살 길을 포기하고 참회하기를 선택한 그레트헨이 그러했고, 악마가 온갖 수를 써서 유혹했지만 끝까지 강한 의지로 자신의 이상을 찾아 노력하고 방황했던 파우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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