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동자 시인이 바라본 격변의 19세기
『풀잎』은 미국의 국민 시인 월트 휘트먼이 평생에 걸쳐 집필한 시집이다. 40대까지 인쇄공과 편집자, 교사 등을 전전하며 궁핍하게 살았던 그는 36세에 처음 자비로 『풀잎』을 출판한 뒤 새 작품을 추가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새로운 판본을 지속적으로 출간했다. 심지어 그가 73세로 사망한 1892년에도 마지막 판본이 나왔고 이는 ‘임종판’이라고 불린다. 학업도 직업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어렵게 살아오던 시절부터 뒤늦게 유명세를 얻지만 건강이 악화된 채 오래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기까지, 『풀잎』에는 휘트먼이 보고 듣고 느낀 세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그토록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으나 『풀잎』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그의 세상에 대한 시선은 적나라하면서도 따뜻하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와 이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량 빈곤 사태, 노동 착취, 제국주의와 인종차별 문제, 미국의 남북전쟁 등으로 당시는 혼란하고 비극적인 시기였다. 이에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서양 지식인들의 태도는 대체로 냉소적이고 비관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가난한 노동자로서 그 비극적인 세상 한복판을 이리저리 나뒹굴던 월트 휘트먼의 시선은 낙관적이고 따뜻하다.
그렇다고 그가 작품을 통해 허황되고 과장된 환상의 나라를 그리거나 꿈꿨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의 작품에는 노동자들의 땀냄새와 사랑하는 이의 숨결, 길가의 풀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그대로 느껴질 듯 세상의 다양한 모습들이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표현된다. 특히 그의 시선과 생각이 멈추는 곳곳에 대한 길고 긴 나열식 묘사는 많은 작품들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렇게 누구보다 삶을 가까이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본 듯한 그가 세상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으니 나와 같은 염세주의자도 이 세상의 면면이 가진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풀잎』의 시들은 자유시로 쓰였다. 일정한 운율과 리듬이 있거나 구성과 형식이 정형화된 기존의 시들과는 달리 그가 세상을 보는 적나라한 시선처럼 그 어떤 규칙성 없이 자유로운 표현으로 가득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작법임에도 『풀잎』은 세상의 인정을 받았고, 이후의 자유시에 큰 영향을 미침으로써 휘트먼은 자유시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한다. 이렇게 자유시로 표현된 『풀잎』의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 그 주제를 더욱 부각한다.
휘트먼은 본 시집 서문에 긴 분량을 할애해 미국과 미국인, 그리고 미국의 시인에 대한 생각을 늘어놓았다. 서문이라지만 역시 시적인 표현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글의 의미와 맥락이 쉽게 파악되지는 않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를 느껴볼 수 있다. 거기에는 미국이라는 국가와 국민들, 그리고 그 영토와 그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휘트먼의 시선이 담겨있다. 서문을 통해 미국의 영혼을 노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관점이 낙관적인 만큼 서문 역시 대체로 미국에 대한 찬가로 느껴지는데, 그것을 읽는 미국인이라면 으레 강렬한 자부심과 애국심에 고취될 만하다. 물론 그 내용이 미국인들에게만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니다. 서문에서부터 시작된 미국에 대한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시선이 뒤에 이어지는 작품들을 통해 온 세상으로 확장되면서 작품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풀잎』을 통해 들려주는 그의 인간 찬가는 평등과 개인 존중, 자유, 희망을 노래한다. 노예 제도를 두고 남북 전쟁이 일어난 당시 상황에서 이런 메시지는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명예나 돈과 같은 세속적인 가치가 아닌 자유, 평등, 평화를, 뛰어난 소수의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노래하며, 이는 모두 나 자신으로 귀결된다. 모든 세상이 나이고, 내가 모든 세상이 되는 존재성의 확장으로 인종, 성별,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노래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집의 제목이자 시집 내 여러 작품에서 자주 언급되는 ‘풀잎’은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매우 흔하고 하찮은 존재이지만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존재의 확장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돌무더기, 돌벽, 포장도로 틈새를 비집고 나와 생명력을 발산하는 풀잎은, 19세기 어둡고 비관적인 사회 속에서 열악한 노동자이자 시인으로 두각을 나타내 인간과 이 세상의 생명력을 발산해 낸 휘트먼을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