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허먼 멜빌 『모비 딕』

병든 19세기 미국 사회를 침몰시키다

by 이내

19세기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은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작품이다. 멜빌은 실제 포경선에 탑승해 포경업과 고래를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있었고, 그 경험을 살린 덕분에 포경업 관련 장면들은 마치 르포를 보는 듯 생생하다. 고래에 대해서는 종별 분류, 생태와 습성, 사냥, 해체 등의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어 학술지나 백과사전을 보는 듯하다. 뛰어난 통찰을 기반으로 한 경구가 많고 감탄을 자아내는 메타포가 가득하며 표현력이 뛰어나 산문시처럼 읽히는 부분도 있다. 또 신화와 성경을 활용한 비유와 희곡의 형식을 활용해 극적이고 감성적인 연출을 하기도 한다. 한 작품에서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단테, 세르반테스가 모두 느껴진다. 그러나 출간 당시에는 이렇게 다양한 장르와 작법이 섞여 있는 난해함에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멜빌은 사후 30여 년이 지나서야 많은 작가와 비평가들을 통해 재평가를 받았고, 오늘날 『모비 딕』은 미국 고전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모비 딕』은 메타포의 향연이다. '모비 딕'부터가 거대한 상징적 존재이며, 각종 고유명사와 등장인물의 이름, 대사, 여러 상황과 장면들, 작품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사물 하나하나에도 의미와 상징이 가득하다. 특히 다양한 인종과 종교의 선원들이 섞여 있는 '피쿼드 호'는 다인종·다문화 국가인 미국의 축소판이다. 이를 통해 멜빌은 거대한 미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냈다. 그들은 공동의 목표를 두고 협력하거나 화합하기도 하지만, 선장 에이해브라는 독선적이고 고압적인 백인 남성 지도자의 집착과 광기에 이끌려 파멸을 맞이하고 만다. 작품이 출간된 19세기 중반 미국에서는 흑인 노예 제도를 두고 첨예한 갈등이 두드러지고 있었다. 더욱이 노예제 존속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적 가치관과도 연결되어 있었기에 당시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과 종교 갈등 문제는 더없이 심각했다. 이는 결국 1861년 남북전쟁을 촉발시키기에 이른다. 『모비 딕』 출간 연도가 1851년이니, 멜빌은 이 작품을 통해 미국의 운명을 예견한 셈이다.


인종과 종교 문제는 작품 전반에 걸쳐 다루어진다. 출항 전 화자 이슈마엘이 식인종 이교도 작살잡이인 퀴퀘그와 만나고 친해지는 과정에서 당시 인식으로는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백인과 흑인, 기독교인과 이교도, 문명인과 식인종인 두 인물이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펼쳐지는 브로맨스는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들이 피쿼드 호에 탑승하면서 인종과 종교 문제는 개인을 넘어 사회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피쿼드 호에는 백인, 흑인, 황인이 뒤섞여 탑승해 있으며 종교도 기독교, 배화교도, 알 수 없는 이교도 등 가지각색이다. 일반 선원들을 제외한 주요 등장인물들의 구도를 보면, 정점에 전형적인 백인 남성인 에이해브가 있고, 그 아래 세 명의 백인 항해사가 있으며, 그 아래 세 명의 유색인종 작살잡이들이 있다. 이들의 위계가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그려지면서, 다민족이 섞여 있지만 백인이 지배자처럼 군림하는 당시 미국 사회 모습을 빗댄다.


그러면서 멜빌은 유색인종 작살잡이들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백인 항해사들보다 더 뛰어나게 묘사해 당시 상황을 비꼬기도 하고, 선원들이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협력하고 화합하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이상적인 미국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기도 했다. 더욱이 피쿼드 호 선원들이 맞서야 하는 거대한 고래들, 거칠고 위험천만한 바다, 그리고 모비 딕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대자연, 심지어 신으로 대변되기까지 하면서 그 앞에 선 한 줌의 인간들에게 인종이나 종교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인종과 종교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에 다원주의적 가치관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사회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해보게 했으나, 멜빌의 비판적 시각과 진보적 가치관은 당시 기독교인들과 백인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모비 딕에게 다리 한쪽을 잃고 살아남은 뒤 모비 딕을 죽이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 피쿼드 호의 선장 에이해브는 당시 미국 사회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면서 독선과 아집으로 사회를 병들게 하는 리더를 상징한다. 그는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부하들을 세뇌시킨다. 모든 선원들이 에이해브와 한 뜻이 되어 움직일 수 있었던 동력은, 모비 딕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갑판에 박아 놓은 금화 하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출항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향유고래뼈 의족을 달고 나타난 신비로운 선장이 선원들의 모험심과 명예심을 자극하는 강렬한 연설을 쏟아냈을 때, 거친 바다 사나이들은 에이해브에게 매료된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몇 년씩 인생을 바다에 던져 넣는 포경선 선원들에게 에이해브가 제시한 모비 딕이라는 표적은 단순히 거대하고 특별난 고래 한 마리를 넘어서서, 그들 인생의 원대한 목표이자 그들이 바다에서 보내는 길고 지난한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적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게 선원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한 에이해브는 화합의 가능성이 있는 이 다양성의 공동체를 지배하고 억압하며 파멸로 이끈다.


에이해브와 피쿼드호가 파멸할 거란 암시는 작품 내내 계속된다. 항해 중 마주치는 배들은 다들 위험과 슬픔을 겪고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반면 피쿼드 호는 그들이 왔던 길을 따라 그 위험과 슬픔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셈이다. 바다에 빠졌다 겨우 구조된 난쟁이 핍은 자신의 영혼이 바다에 빠져 죽고 껍데기만 남았다며 절망과 허무에 빠진다. 마치 피쿼드 호가 중요한 것을 바다에 두고 모비 딕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에이해브는 후반부에 이 핍을 자신의 선장실로 들이며 친근하게 지내는데, 이는 마치 리어 왕이 자신의 파멸과 어리석음을 조롱하는 어릿광대를 가까이 두고 의지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에이해브의 모자를 낚아채 먼바다에 빠뜨리고 날아가는 물수리와 같이 불길한 징조들도 계속된다.


가장 결정적인 장면은 관을 끌고 가는 피쿼드 호의 모습이다. 항해 중 퀴퀘그가 병으로 죽을 위기에 처하자 관을 만들었는데, 퀴퀘그가 회복하고 쓸모없게 된 관을 개조해 피쿼드 호의 부표로 사용하게 된 것. 피쿼드 호를 지나친 다른 포경선의 사람들은 관을 끌고 다니는 피쿼드 호의 모습을 불길하게 바라본다. 모비 딕에게 다가갈수록 에이해브의 심경 변화도 도드라진다. 처음엔 복수심에 불타는 전사의 모습이지만, 갈수록 복수심은 분노와 불안으로 변한다. 끝내는 자기 인생의 최종 목표가 모비 딕이며 그것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데, 거기에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의연함과 체념이 묻어난다. 이 모든 장면과 상황들은 피쿼드 호가 모비 딕에게 다가갈수록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결국 피쿼드 호가 모비 딕을 만나는 건 작품 최후반부다. 사흘에 걸쳐 모비 딕과의 추격과 사투가 벌어진다. 첫째 날은 새벽, 둘째 날은 낮, 그리고 셋째 날은 저녁에 모비 딕과 마주하는 것 역시 어둠(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듯 보인다. 마지막 사투에서 모비 딕은 자신을 괴롭히는 근원이 피쿼드 호라고 생각했는지 거대한 몸으로 돌진해 피쿼드 호를 침몰시킨다. 그 과정에서 에이해브는 작살 줄에 목이 휘감겨 바다에 빠져 죽고, 다른 선원들도 피쿼드 호의 침몰이 만들어내는 소용돌이에 휩쓸려 모두 수장된다.


이때 피쿼드 호 망루에 올라 돛대에 풍향 표시용 깃발을 박아 넣고 있던 작살잡이 타슈테고는 어떤 광기에 휩싸인 건지, 종교적인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배가 침몰하는 순간까지 돛대에 망치질을 하는 기이하고 섬뜩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완전히 침몰하기 직전, 돛대 위를 날던 물수리 한 마리가 타슈테고의 망치질에 끌려 들어가 함께 수장된다. 이는 당시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의 갈등으로 곪아가고 있던 미국(독수리)의 몰락에 대한 암시라는 해석이 있다. 피쿼드호라는 다문화 공동체는 화합과 상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구시대적이고 독선적인 에이해브와 같은 잘못된 통치자가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모비 딕'을 중심으로 작품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 모비 딕은 특별난 고래이기는 하지만 결국에는 그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모비 딕에게 어떤 구체적인 의지나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 또는 동료들을 해하려는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파괴하려 하고, 거기에 휩쓸려 죽거나 다치는 인간들은 대자연에 맞선 대가를 받을 뿐이다. 그러나 에이해브는 모비 딕에 거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의 운명에도 그에 비견하는 의미를 둔다. 모비 딕을 신격화하면서, 그를 자신의 라이벌이자 운명의 상대로 삼은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에이해브는 신에 대항하는 오만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한다.


끝내 에이해브를 파멸시키는 모비 딕은 에이해브의 생각과는 달리 특별한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모비 딕에게 신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면 아무 죄 없는 다른 선원들까지 몰살시키지는 않았으리라. 심지어 그 몰살의 원인마저도 모비 딕의 의지가 아니다. 모비 딕은 며칠 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며 괴롭힌 피쿼드 호를 공격했고, 에이해브도 선원들도 그저 피쿼드 호의 침몰에 휩쓸려 죽었을 뿐이다. 이러한 모비 딕과 피쿼드 호의 구도는 신과 인간 사회를 닮았다. 신(종교)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한 뒤, 그에 따른 갈등으로 파멸해 가는 인간들과, 그에 휩쓸려 영문도 모른 채 함께 고통받는 보통의 서민과 노동자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멜빌은 모비 딕이라는 신격화되었지만 자연 그 자체일 뿐인 존재를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종교 갈등의 무의미를 드러내고, 나아가 신의 부재를 암시하며 종교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들을 조롱한다.


이 장엄하고 비극적인 멸망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은 화자인 이슈마엘이다. 『모비 딕』 초판에는 이슈마엘이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하는 에필로그 부분이 없었다고 한다. 이 에필로그는 『욥기』에서 욥의 집안사람들이 모두 몰살당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하인이 욥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부분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이슈마엘은 피쿼드 호 침몰 직전 보트에서 튕겨져 나가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았다. 그리고 피쿼드 호에서 떨어져 나온 부표, 그러니까 그의 단짝 퀴퀘그의 관을 발견하고 거기 매달려 있다가, 근처를 헤매던 레이첼 호에 발견돼 구조된다. 이슈마엘은 퀴퀘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를 적대시하고 두려워했으나 인종과 종교의 벽을 넘어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끝내 그의 관 덕분에 목숨을 건진다. 그런가 하면 이슈마엘을 발견한 레이첼 호는 바다에 빠진 선장의 아들을 찾아 근처를 떠도는 중이었다. 이들은 에이해브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한 바 있다. 그런 레이첼 호가 피쿼드 호의 유일한 생존자 이슈마엘을 우연히 구조한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이슈마엘과 퀴퀘그의 관 그리고 레이첼 호는 화합과 연민으로 인한 운명적인 구원을 보여준다. 멜빌이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세태를 풍자하고 비판하며 조롱하기까지 했지만, 에필로그에서 이 갈등 가득한 사회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희망을 읽는다면 세상에 대한 그의 따뜻하고 포용적인 시선 역시 느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36.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