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소설의 위대한 선구자, 에드거 앨런 포
탐정 '뒤팽' 이야기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에드거 앨런 포는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집필했다. 내가 읽은 포 단편선은 5권짜리 전집으로, <미스터리>, <공포>, <환상>, <풍자>, <모험> 5개의 장르를 각 한 권으로 묶었다. 각 장르마다 문체와 표현이 다채로워 다섯 권을 읽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특히 공포·환상 장르의 기괴하고 혼란스러운 장면들과 추리·모험 장르의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서술은 각기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임에 감탄했다.
<미스터리> 편은 그 유명한 ‘뒤팽’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추리 소설들이다. 뒤팽은 셜록 홈즈의 모티브가 된 캐릭터로, 소위 ‘안락의자 탐정’의 원형이다. 뒤팽을 보고 있자면 코난 도일이 그저 참고를 한 것이 아닌, 대놓고 뒤팽 이야기를 끌어 와 셜록 홈즈를 탄생시켰음을 알 수 있다. 캐릭터의 성격과 행동, 말투, 주변 인물들까지 셜록에 그대로 대입 가능하다. 이 정도 존재감과는 어울리지 않게 뒤팽이 등장하는 작품은 단 세 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한 작품은 집필 배경에 께름칙한 의문점이 있는 데다 평가도 좋지 않아 실질적으로는 두 작품을 주요 뒤팽 이야기로 본다. 그럼에도 뒤팽이 남긴 강렬한 이미지는 훗날 추리소설의 교본이 된다. <미스터리> 편 포의 작품들은 지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이성적이다. 과학혁명과 1차 산업혁명을 거치며 사회적으로 과학적 지식과 사고가 보편화된 19세기 초중반에 쓰인 작품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사건이 진행되고 해결되는 모습은 기존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감상을 준다. 그런 시대적 배경이 추리소설과 환상소설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된 듯하다.
실제로 <미스터리> 편과 <환상> 편의 작품들 중에는 SF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과학적 내용을 중심으로 풀어 나가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환상> 편이 그러하다. 대표적으로 열기구를 타고 달까지 여행을 떠나는 ‘한스 팔의 모험’이 있다. 현재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작가는 그의 모험을 아주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냈다. 고도에 따른 온도와 기압의 변화, 그에 대한 생명체의 적응력, 공기를 압축해서 공급하는 방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관찰하는 모든 자연적 현상들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이야기는 한스 팔이 열기구를 타고 달까지 다녀온 내용을 적은 편지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것이 한스 팔의 거짓말인지, 실제 경험인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 것으로 보인다. 지금이야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작품 속 과학 이론들 중 틀린 점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거짓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사람들은 헷갈릴 정도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내용으로 꽉 차 있다. 작가의 탐구력과 상상력, 관찰력이 돋보인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것은 <공포> 편이다. 기괴한 상황 묘사와 표현들은 지금까지 보아 왔던 작품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었다. 특히 포의 개인적 트라우마로 보이는 ‘생매장’에 대한 공포와, 자아 분열 혹은 타인과의 동일시를 공포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이 많다. 포의 표현대로라면 생매장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공포이며, 이는 현실적인 위협과 그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발생하는 공포다. 반면 자아 분열 혹은 동일시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의 혼돈으로부터 오는 심리적 공포다. 혼령이나 괴물 등의 일차원적 소재가 아닌, 정신착란과 인식론적으로 설명되는 고차원적인 공포심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문학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공포의 정수라 할만하다.
<풍자> 편의 경우 당대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아 공감하고 이해하기에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풍자> 편에서는 다른 편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포의 유머감각과 익살성이 드러나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포는 자신이 업으로 삼고 있는 출판계를 주로 비판했는데, 특히 ‘블랙우드식 기사 작성법’과 같은 작품에서 당시 작가들과 출판업자들의 행태가 잘 드러나며, 자신이 속한 업계에 대한 신랄한 환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모험> 편의 경우 다른 편들과는 달리 단 두 개의 작품이 실려 있으며, 그만큼 분량이 긴 편이다. 다만 두 작품 모두 미완성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이 모험 소설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던 포가 분량이 긴 소설을 연재하는 방식으로 벌이를 늘리려는 의도가 있었던 만큼, 간략하고 강렬하게 핵심적인 내용만 담았던 기존의 단편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도 그 필력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여전해서 읽는 동안은 작품에 쉽게 빠져든다. 특히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뱃사람들의 이야기로, 포 자신의 실제 바다 여행 경험을 녹여낸 만큼 생생하다. 이 작품에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이 연상되는 장면이 많은데, 시기적으로 포의 작품이 먼저 나왔으며 실제로 이 작품이 멜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혼혈인 피터스나 흰색을 무서워하는 원주민들을 통해 드러내는 인종 문제는 『모비 딕』의 주요 주제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을 속여 죽이려고 한 원주민들과의 에피소드나 기아에 허덕이다 제비 뽑기로 동료를 잡아먹는 등 강렬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은 훗날 다른 작품들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대표적으로 영화로도 유명한 『파이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장르마다 작품마다 다양한 표현과 기법, 그리고 메시지가 담겨 있는 포의 단편들은 다채롭고 흥미롭다.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는 등장인물과 이야기들로 전개된다는 점에서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장르 소설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포는 장르 소설의 선구자로 여겨진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메시지와 인간 정신에 대한 보편적인 탐구가 들어있는 그의 작품들은 고전과 현대소설, 장르소설의 경계를 넘나 든다. 여기에 포의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논리와 방대한 지식까지 더해져 가히 천재적이라 할만하다. 포의 천재성은 그의 산문시 『유레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포는 20세기에나 등장한 빅뱅이론, 시공간의 동일성, 블랙홀 등의 개념을 서술했다. 그야말로 세기를 뛰어넘은 통찰력이다.
그러나 포는 생전에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미국인이었던 그의 작품은 당시 신생국이었던 미국의 시대적 분위기와 동떨어져 있었다. 과학적 통찰도 지극히 생소한 개념인 데다가 근거가 부족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평생 가난 속에서 음주에 빠져 지냈으며 정신 착란에 시달리다 40세에 요절한다. 그렇게 잊힌 그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눈에 띄었고, 보들레르는 포의 작품들을 번역해 유럽에 알렸다. 그렇게 거꾸로 유럽에서부터 명성을 얻은 포의 작품들은 프랑스 상징주의를 탄생시켰다고 여겨진다. 오늘날 그와 그의 작품은 인류 문화 곳곳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