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 만큼 잔인하고 처절한 복수
『폭풍의 언덕(워더링 하이츠)』은 영국 여성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쓴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다. 그녀는 이 작품을 발표하고 1년 뒤 30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럼에도 『폭풍의 언덕』은 『리어왕』, 『모비 딕』과 함께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히며, 노벨 연구소가 뽑은 최고의 문학 작품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출간 당시에는 폭력적이고 반도덕적이며 비인간적인 인물 묘사로 강한 비난을 받았다. 주인공인 히스클리프는 미혼의 젊은 여성 작가가 창조해 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한 인물이다. 이런 히스클리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로맨스, 질투, 좌절, 복수의 이야기는 파괴적이고 야만적이며 때론 불쾌하기까지 하다. 주역으로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지독한 비극을 맞이한다. 이러한 전개와 묘사들이 당시에는 달갑지 않게 여겨진 건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낭만주의, 리얼리즘, 자연주의를 거치면서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들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러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폭풍의 언덕』은 20세기 들어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작품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어린 시절, 그리고 성인이 되어 재회하는 시점까지다. 우연히 입양된 히스클리프는 워더링 하이츠에서 양아버지의 딸인 캐서린과 친구처럼 지내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의 오빠 힌들리 언쇼가 그에게 보인 멸시와 악행들, 캐서린에 대한 오해, 이웃 린튼 집안과의 조우에서 느낀 신분 차이 등으로 괴로워하다 집을 나간다. 이후 부자가 되어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캐서린과 재회한다.
후반부는 캐서린의 죽음과 히스클리프의 복수극이다. 캐서린은 복수심에 변해버린 히스클리프의 매정하고 잔인한 모습, 그리고 그와 남편의 갈등에 시달리다 죽고 만다. 캐서린을 잃은 히스클리프는 복수를 시작한다. 언쇼 가문과 린튼 가문을 거의 멸문시키고 두 집안의 재산을 모두 차지한 뒤 그 자식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폭력을 가한다. 그러다 실질적인 복수의 대상들이 모두 사라지자 그는 일종의 허탈감을 느끼고, 심리적으로 피폐해져 죽은 캐서린의 유령에 집착하며 식음을 전폐하다가 죽고 만다. 그리고 남은 언쇼, 린튼 가문의 자식인 헤어턴과 캐시(캐서린의 딸로, 모녀의 이름이 같지만 구분을 위해 캐시라 칭함)는 지난한 오해와 갈등 끝에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결혼을 약속한다.
『폭풍의 언덕』을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을 그린 로맨스 소설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두 사람의 비극적이고 애절한 사랑이 히스클리프가 저지르는 모든 일의 원동력이 되는 것은 맞지만, 사랑 자체를 그렸다기보다는 두 가문, 세 세대에 걸친 비극이자 히스클리프라는 독특한 인물의 일대기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두 가문의 구도에서 보자면, 평화롭기 그지없던 시골 마을에 인종도 혈통도 나이도 불분명한 아이(히스클리프)가 입양되어 오면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낯설고 황량한 워더링 하이츠에서 친구가 되어준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게 전부였다. 자신을 아껴주던 언쇼 씨가 죽자 그 아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하인 취급하고 정서적으로 학대한다. 그러다 캐서린이 린튼 가문과 왕래를 시작하고, 에드거 린튼과 결혼하기로 하면서 히스클리프는 절망한다. 게다가 우연히 엿들은 캐서린의 말, 히스클리프가 신분이 낮아 결혼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그는 충격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간다. 캐서린은 이어서 그럼에도 자신은 히스클리프를 누구보다 사랑하며 그가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그가 없는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이야기하지만 히스클리프는 듣지 못한다. 히스클리프 입장에서는 가장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던 캐서린 마저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했으니, 자신을 학대한 힌들리 언쇼, 캐서린을 빼앗아간 에드거 린턴, 그리고 캐서린에게까지 복수심을 품을 수밖에.
그중에서도 캐서린에 대한 그의 태도, 복수심과 질투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며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재회의 기쁨과 그동안의 그리움, 깊은 사랑이 잠시나마 복수심을 이겨내기는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히스클리프와 남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캐서린이 결국 병에 걸려 죽고, 이는 히스클리프의 복수심을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된다.
히스클리프는 복수를 결행하며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친다. 힌들리의 도박벽을 이용해 재산을 빼앗고 병들어 죽게 만들며, 그의 아들 헤어턴을 방치하고 하인 취급하며 정신적으로 지배한다. 캐서린의 남편 에드거에게는 그녀를 죽게 한 것으로 이미 복수를 했으며, 그의 누이동생을 꾀어내 결혼하고 학대하여 죽게 만드는 것으로 복수를 이어나간다. 가장 악질적인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에 대한 악행이다. 제 자식임에도 끊임없이 학대하고 캐서린의 딸 캐시를 납치하여 강제로 결혼시킨 뒤, 아들이 병들어 죽자 상속법을 이용해 린턴 가의 재산을 모두 빼앗는 잔인한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2부에서 보여주는 히스클리프는 악당 그 자체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들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다닌다. 그의 끔찍한 신체적, 정신적 폭력 앞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을 괴롭힌 힌들리와 캐서린을 빼앗은 에드거에게 복수한 것도 모자라 그의 자식들까지 처절하게 이용하고 학대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잔인하고 지독하다. 그러나 문학의 힘은 그런 히스클리프를 절대적 악으로 생각할 수만은 없게 만든다. 마치 『롤리타』의 험버트처럼. 캐서린을 향한 그의 지고지순한 마음과 강렬한 사랑, 불행했던 어린 시절 그가 겪어야 했던 부당하고 잔인한 상황들, 그리고 그가 남들 모르게 모든 순간 생명을 깎아 내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연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는 악인의 그런 면면을 모두 파악하기 힘들지만, 문학을 통해 그를 깊게 알고 있는 독자라면 무작정 비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범죄자에게 서사를 만들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작품의 히로인인 캐서린 역시 입체적인 인물이다. 털털하고 당당하며 용기 있고 익살스럽고 해맑고 낙천적인 그녀는 당시의 여성관에서 동떨어진 독특한 캐릭터다. 한편 그녀는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만 그의 상황이나 감정보다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한 듯하다. 그런 그녀의 성격은 히스클리프가 타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에드거로부터 청혼을 받았을 때도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만 그의 신분 때문에 결혼할 수 없으니 히스클리프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에드거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나중에 재회하고서도 에드거와 히스클리프 모두를 놓지 못하고 본인을 포함해 모두를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당시의 계급과 혼인 문화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면서도, 히스클리프에게 진작 진심을 털어놓지 못했던 점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어렸을 적 상처로 비뚤어지면서 성숙해지지 못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서도 이성과 대화보다는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면서 파국을 맞는다. 다행히도 작가는 두 사람의 비극과 죽음만으로 작품을 끝내지는 않았다. 히스클리프의 복수와 학대로 망신창이가 된 두 가문의 자식인 헤어턴 언쇼와 캐시(캐서린) 히스클리프(캐시는 린튼과 캐서린의 딸이지만 히스클리프에게 납치당해 그의 아들과 강제로 결혼하면서 캐시 히스클리프가 된 것)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경계를 중심으로 히스클리프/캐서린 커플과 대칭적인 전개를 보인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서로 사랑하다가 오해와 갈등으로 멀어지고 재회한 뒤에는 서로를 파멸로 이끈다. 반면 헤어턴과 캐시는 히스클리프에 의한 파멸 속에서 만나고, 오해와 갈등으로 서로를 미워하다가 대화와 이해를 통해 끝내 사랑하게 된다.
히스클리프라는 혼돈이 등장해 모든 것을 파괴해 놓았지만, 그 후손들에 의해 정반대의 과정으로 회복되는 전개는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특히 헤어턴/캐시 커플이 히스클리프/캐서린 커플에게 부족했던 서로에 대한 이해와 대화를 통해 점차 관계를 회복하고 사랑에 이르는 과정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헤어턴은 교육받지 못하고 망나니처럼 자라나지만 정직하고 의로우며, 캐시는 원치 않는 결혼과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고 다정하며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헤어턴과 캐시(특히 캐시)가 일찍이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이 히스클리프라는 재앙을 겪었기 때문임을 생각하면 꽤나 아이러니하다. 둘은 마치 어린 시절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을 보는 듯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 사랑에 빠지고 서로를 보완하며 맺어지는 아름다운 결말을 향해 간다.
그래서 『폭풍의 언덕』이 엄청난 비극이면서도 결국엔 치유되고 회복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때문에 마냥 불쾌하고 찝찝한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역시 유령이 되어 재회하는 것으로 묘사되기에 이 주인공 커플에게서도 어느 정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