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니콜라이 고골 『죽은 혼』

19세기 병든 러시아 사회를 재치 있게 고발한 걸작

by 이내

니콜라이 고골은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전 고골이 있었다. 두 작가에 비해 고골은 서사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부족한 듯하지만 보다 유머러스하고 러시아어를 감각적으로 사용하며, 무엇보다 더 '러시아적'이다. 애초에 『죽은 혼』은 제목부터 러시아의 정신, 러시아의 혼을 담고 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농노를 '영혼'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죽은 혼'의 표면적인 해석은 '죽은 농노'이다. 죽은 농노를 사들이려는 주인공 치치코프의 고군분투가 작품의 주요 내용인 점에서도 '죽은 농노'라는 의미가 가장 쉽게 드러난다. 동시에 '죽은'이라는 수식어에서부터 확연히 느껴지는 부정적이고 암울한 느낌은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과도 연결되는데, 작품 속에서 당시 러시아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면 '죽은 혼'을 '러시아의 혼이 죽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당시 러시아의 근간은 농업에 있었고, 농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인민들, 즉 농부, 농노에 러시아의 정신이 있다고 여기기도 했던 만큼 '죽은 혼'이나 '죽은 농노'는 모두 '죽은 러시아의 혼'으로 읽힌다.


『죽은 혼』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둘의 집필 시기에는 약 10년의 간극이 있다. 고골은 1부에서 주인공 치치코프의 모험을 따라가며 러시아 지주들과 귀족사회의 병폐, 저급한 윤리의식을 유머러스하면서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치치코프는 지주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부를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물이다. 다만 그 노력이라는 것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직업을 이용해 이윤을 취하거나 사기적인 수법이기에 치치코프 역시 타락하고 욕심 많은 관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수완은 좋아 보이나 운이 좋지 않았던 탓인지 그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하다가 죽은 농노를 사들이는 방법으로 부자가 되기를 꿈꾸는 시점에 작품이 시작된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주기적으로 농노 인구조사를 했는데, 다음 인구조사 전에 농노가 죽어도 그 농노는 살아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세금을 떼어갔다. 그러니 죽은 농노는 지주들에게 하등 쓸데없이 금전적 피해만 주는 서류쪼가리에 불가했고, 이를 사겠다고 나타난 치치코프는 지주들에게 의뭉스러우면서도 고맙게 여겨진다. 물론 치치코프도 속셈이 있었다. 그가 국고를 대출해 주는 업무를 맡으면서, 지주들의 재산을 저당 잡아 거액의 대출을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재산에는 농노도 포함되어 있었고, 지주들이 죽은 농노를 골치 아파한다는 점을 이용해 수천 명의 죽은 농노를 '서류상으로' 사들이기로 한 것. 이후 그들을 담보로 거액의 자금을 융통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다. 즉, 자신이 업무상 알게 된 내용과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려고 한 것.


이후 치치코프는 N시에서 그의 탁월하고 호감 가는 언변과 외모를 적극 활용해 지주들의 환심을 사고 그들에게 어렵지 않게 죽은 농노들을 대거 구입한다. 그러자 치치코프가 많은 농노를 거느린 부자라는 소문이 났고, 그 덕에 그는 사교계에 진출하여 큰 인기를 누린다. 그러다 한 16살 소녀에게 매혹되어 다른 여인들을 무시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그 여인들의 불만은 우연히 알려진 죽은 농노 구매에 대한 소문과 겹치며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심지어는 치치코프가 나폴레옹이나 적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다는 소문까지 나고, 이에 충격받은 지방검사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자 치치코프는 N시를 도망치듯 떠난다.


여기까지가 1부의 줄거리. 1부의 묘미는 치치코프가 만나는 다양한 지주들의 익살스러운 모습에 있다. 대부분의 지주들은 이기적이거나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당시 러시아 상류층의 병든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그들로부터 이익을 얻어내려 하는 치치코프를 응원하게 되는데, 1부 마지막에 치치코프의 과거가 그려지면서 치치코프도 마찬가지로 문제적 인물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온갖 악덕 루머에 의해 쫓겨나듯 도망치는 치치코프의 모습은 더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고골이 1부에서 러시아의 병폐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 냈다면, 2부에서는 그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던 듯하다. 그러나 고골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 작성한 2부 원고를 두 번이나 불태워버렸다. 결국 고골 자신이 2부를 직접 세상에 내지는 못했고, 그의 사후 남아있던 원고들로 2부가 출간된다. 그래서 2부는 소실된 부분들 때문에 내용이 갑자기 끊기거나 단어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고 결말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2부에 등장하는 새로운 인물들로부터 고골의 의도는 대강 파악할 수 있다. 2부에서도 치치코프는 죽은 농노를 사들이기 위해 떠돌아다니며, 역시 다양한 모습의 지주들을 만난다. 1부와 다른 점은 그 과정 중에 뛰어난 통찰력과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입신은 물론 주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주 코스탄조글로와 전매 독점상인 무라조프, 총독인 젊은 공작까지 세 사람이다. 코스탄조글로는 지주로서, 무라조프는 기독교인으로서, 총독은 통치자로서 갖추어야 할 신념과 행동들을 제시한다.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러시아의 근간을 이루는 농업, 종교, 통치를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골의 철학을 담고 있다. 작품 내적으로도 이들로부터 깨우침을 얻고 회개하거나 올바른 길로 인도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고골은 당시 러시아 사회에 퍼지고 있던 서구 문화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는데, 러시아와 맞지 않는 유럽 문명을 모방하다가 영락하고 타락하는 지주, 종교인, 정치인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앞서 언급한 세 사람은 각 분야에서 러시아를 구원할 수 있는 훌륭하고도 전통적인 러시아 인간상인 셈이다.


한편 치치코프는 2부에서도 악행을 반복하다가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만다. 한 부인의 유언을 조작하여 유산을 가로채려던 음모가 들통난 것. 그런 그는 무라조프의 종교적 훈계를 듣고 참회할 것을 다짐하나, 감옥에서 우연히 만난 모사꾼의 유혹에 굴복해 다시금 악행을 반복하게 될 것을 예고하며 작품은 끝난다. 고골은 치치코프가 이렇게 참회와 악행을 반복하다가 종국에는 시베리아로 유배를 가서 갱생하도록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모든 과정을 볼 수는 없지만 2부의 내용들만으로도 고골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러시아를 위한 향방을 제시하려 했는지 추측해 볼 수 있다. 고골은 당시 러시아를 비롯해 서구 문명 전반에 만연해 있는 비속함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그것들이 러시아의 정신과 맞지 않아 러시아에서 더욱 큰 병폐를 일으켰으며, 농업과 기독교, 전제정 등 러시아의 전통적 가치가 이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치치코프를 포함해 고골이 그리고 있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비속함과 정화 사이에 서 있다. 악덕한 지주들도 한편으론 인간적인 면을 지녀 갱생의 여지를 보인다. 그런 인물들이 앞선 세 현자와 같은 사람들의 인도를 받아 정화되고 구원받을 수 있으며, 이런 개인들의 정화를 통해 러시아 자체도 러시아의 정신을 되찾아 비속함을 물리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음을 고골은 제시하려 했던 것 같다. 물론 거기에 스스로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 못했기에 2부를 반복해서 불태웠지만, 세상은 그의 통찰력과 사상, 매혹적인 문체에 빠져들었고 다행히 『죽은 혼』은 미완임에도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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