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자연 속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노래하다
자코모 레오파르디는 단테 이후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시인으로 여겨지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시집 『노래들』은 2025년에서야 국내에 최초로 번역됐다. 애초에 외국어 시는 번역의 한계 탓에 잘 출판되지 않기도 하지만, 레오파르디의 경우에는 작품의 성격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시'라 하면 사랑, 자연, 가족 등 서정적인 주제와 내용을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레오파르디는 기본적으로 염세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써냈다. 그는 자연(우주)을 잔인하고 냉정한 존재로 보았고, 그에 따른 허무, 우울, 외로움 등을 주로 노래했다. 심지어는 자살을 암시하거나 자살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자살시도를 한 바 있다.
이러한 작품의 색채는 그의 불운한 인생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백작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냉정하고 무관심한 부모, 속물적이고 고립된 도시, 병약한 신체 등으로 평생을 고통받았다. 특히 척추가 휘어 굳는 증상이 나타나면서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고, 그에 따른 외모 콤플렉스도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 온 마음을 바친 사랑에 실패한 경험과, 건강과 재정 때문에 여기저기 떠돌던 객지생활 역시 그의 내면이 뒤틀리는 데 일조했다. 그나마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려서부터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여기에 현실 도피성의 독서와 공부가 더해지면서 그의 지적 활동은 우울한 삶을 이해하고 위로하며 감정을 분출시키는 탈출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과도한 학구열이 그의 척추가 휘는 증상과 병약한 신체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지적 능력은 비극적인 삶 속에서 철학적 사고들을 키워냈고, 이는 다양한 창작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사랑했던 그리스와 로마 문학의 영향으로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단테 등을 적극 인용하며 형식적으로는 고전주의적 색채를 보인다. 그런가 하면 표현과 내용 면에서는 본인의 감정과 내면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과도한 이성과 과학 발전이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낭만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한편 자연의 냉담함과 인간의 실존적 고통을 다루었다는 점은 현대 철학과 가깝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시대와 사상을 넘나드는 느낌을 준다.
『노래들』의 작품들은 대략적으로 그의 조국에 대한 견해, 자연의 냉혹함과 실존적 고민, 당시 세태에 대한(주로 낙관주의에 대한) 비판, 사랑의 열망과 실패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그는 고대 로마를 이탈리아와 동일시하며,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당시 이탈리아의 현실을 비판한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초 이탈리아는 나폴레옹의 프랑스에 침략당하고 강제적으로 러시아 원정에 참여했다. 원정이 실패로 끝나며 이탈리아 역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레오파르디가 수많은 고전들을 섭렵하면서 과거 유럽을 호령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로마 제국을 떠올릴수록 당시의 이탈리아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탈리아에게>는 그가 갓 성인이 된 20세에 집필한 작품으로, 혈기왕성한 정서가 자아낸 조상들에 대한 찬미, 위대한 과거에 대한 향수로부터 비롯된 민족주의적 사상과 현실적 좌절감이 선명히 드러난다.
이런 민족주의와 개인의 감정, 주관적인 표현 등은 그가 활동하던 18세기말부터 19세기 중반 유럽에 퍼져 있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찬미하고 인간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낭만주의 보편적 사조와는 달리 레오파르디는 자연을 잔인하고 무심한 존재로 보았다. 그는 심지어 자연을 '아이를 낳고 버려 방치하는 부모'에 비유했다. 이는 당시 유행했던 낭만주의 및 낙관주의와는 동떨어진 사상이었다. 레오파르디는 자신을 포함하여 이유 없이 고통받는 불운한 인간의 입장에서, 신에 의해 태어난 고귀한 존재인 인간이 만물의 주인으로 세상을 누린다는 관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는 인간의 오래된 철학적 사유이자 풀리지 않는 의문이기도 하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욥기』 역시 ‘신이 있다면 왜 선량한 인간이 고통받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종교적인 답이다. 물론 불가지론과 내세주의에 기대고 있기에 명쾌하지는 않다. 당시 기독교 사회에서 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상은 비주류적인 것이었고 자칫 신성 모독으로 여겨질 수 있음에도 레오파르디는 자연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평생 견지했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그의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지막 작품 <금작화 또는 황무지의 꽃>에서 두드러진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자연스레 당시의 낙관주의적 세태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그는 고전과 과학, 역사 등 다방면의 학문을 익히면서 ‘이성’의 부작용을 말했다. 지나친 이성과 기계적인 사고, 확고한 과학적 진실들이 인간들의 환상과 꿈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래서 인간은 불행해졌다는 낭만주의적 주장이다. 그는 여기에 자신의 염세관을 더해 사상을 확장시켰다. 이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작품이 <지노 카포니 후작에게 보내는 철회의 시>이다. 그의 비관적 사상을 비판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틀렸고 당신들 말이 다 맞다’고 인정하는 내용이다. 물론 지극히 반어법적인 표현이다. 이 작품은 당시 주류 사상과 세태를 찬양하는 척하면서 강하게 비꼬는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느끼기 힘든 유머(물론 블랙 유머)를 맛볼 수 있기도 하다.
사랑에 대한 작품은 그의 격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며 인간 레오파르디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중에서도 당시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던 귀부인 파니 타르조니 토체티에 대한 사랑과 좌절을 표현한 다섯 작품, 일명 ‘아스파니아 연작시’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레오파르디가 사랑에 빠지고, 그에 대해 성찰하고, 좌절하고, 심지어는 상대 여성을 비난하기까지 하면서 끝내 포기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지배적인 생각>에서 사랑이 가진 강력한 지배적인 영향력을 노래하고, <사랑과 죽음>에서는 강렬한 두 이미지를 서로 닮은 힘으로 묘사한다. 낭만주의적이면서 불길한 징조를 가지고 있어 레오파르디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콘살보>에서는 사랑의 감정을 의심하며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아스파시아>에서 결국 사랑에 좌절한다. 여기서 그는 파니를 ‘아스파시아’라는 역사 속 인물에 빗대어 표현한다. 그녀를 자신의 관념 속 이상적인 여인과 현실에 존재하는 흔한 여인으로 나누고, 본인이 사랑한 것은 현실의 인물이 아닌 관념 속 이미지였다고 자위한다. 염원하고 갈망하던 존재가 변질되거나 그것을 끝내 얻지 못하게 되었을 때 자기 합리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응인 셈인데, 사랑의 본질을 투사로 해석하는 관점이 흥미롭다. 그리고 마지막 <자기 자신에게>에서 레오파르디는 끝내 사랑을 포기함과 동시에 모든 것을 포기하는 듯한 태도로 그의 어떤 작품보다 비관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짧은 시에는 죽음, 공허, 허무, 염세가 가득해 그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레오파르디는 비관적이고 염세적인 작품들을 주로 남겼으나, 그가 전적으로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져있던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자연의 잔혹함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때문에 펼쳐진 비극에 대해 연민과 위로를 보낸다. 그리고 인간의 연대와 인간이 견지해야 할 태도를 강조한다. 그가 죽기 직전에 집필한 <금작화 또는 황무지의 꽃>은 그러한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39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하기 직전까지 그가 겪었던 불운과 좌절, 연민과 위로 등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이 뒤섞이며 세상에 대해 그가 내린 결론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베수비오 화산을 마주한 항구 도시 나폴리에서 머물던 그는 베수비오 화산에 의해 멸망한 도시와 죽어간 생명들, 그리고 그곳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가고 있는 금작화를 바라보며 자연의 잔혹함과 냉담함, 인간의 무력함을 강조함과 동시에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항상 진보해 나가는 위대한 존재라는 낙관주의적 태도의 오만함을 경고한다. 그러면서 금작화의 모습을 통해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겸손함과 한없이 나약하면서도 끝가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하고 이를 인간의 이상적인 태도로 본다. 즉, 인간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고 잔인한 자연의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오만함을 버리며 서로 연대하여 존엄을 지켜야 한다는 현대 실존철학적 메시지다.
언급한 것 외에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 많다. 특히 그에게 자연(우주)은 잔인하고 무서운 존재임에도, 그러한 자연을 바라보며 끝없는 우주를 상상하고 그 경이로움을 노래하는 <무한>은 그의 대표작으로 여겨진다. 젊은 여인의 죽음과 사라진 젊음을 노래하는 <실비아에게> 역시 그의 인생관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깊은 한이 느껴진다. 자코모 레오파르디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이 차오를 정도로 그는 불운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가 존재론적 고독과 슬픔을 노래하던 당시, 사회에는 낙관주의가 널리 퍼져있었음을 생각하면 그의 작품과 사상은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레오파르디를 높게 평가했다. 두 철학자는 공통적으로 세상을 잔인하고 냉혹한 것으로 보았고, 그들의 사상은 현대 철학의 근간이 되었다. 세기를 앞선 레오파르디의 사상과 노래는 후세에 영감을 주었고, 그의 작품들이 오늘날 실존적인 고독과 허무를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오히려 위로가 된다는 점은 그의 짧고 슬픈 인생을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