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이성의 함정

by 이내

『죄와 벌』은 살인을 저지른 가난한 대학생의 내면을 깊이 있게 다룬 심리소설로,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는 자신만의 강한 신념에 매몰되어 그것을 실현시킬 목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만, 그 행동은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었기에 정신적으로 무너져 간다. 작가는 그런 주인공의 내면을 다양한 사건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세밀하게 그려내면서, 인간의 이성이 가진 한계와 그로 인한 몰락 그리고 종교적 구원의 메시지를 담았다.


가난한 대학생 라스꼴리니코프(로쟈)는 지극히 이성적인 인간이며 자신의 이성을 맹신한다. 그는 세상의 인간들을 ‘범인’과 ‘비범인’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범인’은 냉철한 이성과 논리로 나머지 범인들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력 있고 위대한 소수의 사람들이다. 나폴레옹, 카이사르와 같이 소위 영웅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그에 속한다. 이런 비범인들이 능력을 발휘하여 인류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면 전쟁, 독재, 살인 등 사회적·윤리적 규범을 벗어나는 그 어떤 행동도 용인되어야 하며, 비범인이라면 그런 행동들을 기꺼이 실행에 옮길 수 있어야 한다고 로쟈는 생각한다. 즉, 소수의 비범한 사람들에 의한 결과주의와 공리주의를 주장한 것이다. 그는 학생 시절 이러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동시에 로쟈는 자신이 그런 비범한 사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탓에 능력과 꿈을 펼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던 중 탐욕스럽고 악독한 고리대금업자인 한 노파가 그의 눈에 든다. 로쟈의 입장에서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회의 기생충 같은 존재다. 그는 노파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그녀를 죽이고 그녀의 돈을 비범인인 자신의 입신양명에 사용하는 것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마땅히 허용되어야 할 행동이라 여긴다. 무엇보다, 로쟈는 자신이 비범인임을 이 살인을 통해 증명하고자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와 같은 생각과 그것을 과감히 실행에 옮기려는 로쟈의 모습은 얼핏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독자는 그가 결코 이성에 의해 움직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무색하게도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망설임을 반복하고, 그런 자신을 비범인답지 못하다며 부끄럽게 여긴다. 실제로 그가 살인을 저지르는 결정적인 계기는 이성과는 거리가 멀다. 로쟈는 우연히 만난 주정뱅이 마르벨라도프와 그녀의 헌신적인 딸 소냐의 이야기를 듣고 감화되어 살인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지만, 예상치 않았던 절호의 기회가 생기자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살인 도구인 도끼를 훔친 일부터, 노파를 죽이고 우연히 마주친 그녀의 동생까지 죽인 일, 문을 열어 놓고 도둑질을 한 일, 다른 사람에게 발각될 위험에 처하자 아무 데나 되는대로 숨고 주의 없이 현장을 빠져나온 일까지, 가장 이성적이어야 할 순간들에서 우연과 충동이 반복될 뿐 그의 이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이 시점에서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후로도 이성과 더욱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인다.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한 충격과 범행이 드러날 거란 두려움에 휩싸여 정신발작을 일으키고 점차 피폐해져 간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거나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며 주변사람들에게 의심 살만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줄곧 이성을 되찾으려 상황을 분석하고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의 범행을 확신하는 예심판사 뽀르피리와 범행 사실을 엿들어 알고 있는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등장에 무너지고 결국 자수하기에 이른다. 로쟈가 자수를 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지난하다. 3인칭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뇌와 두려움은 지극히 생생하게 느껴진다. 더운 날씨와 좁고 답답한 로쟈의 방, 술에 취한 사람들, 심리적으로 포위해 오는 뽀르피리, 그를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들에 대한 작가의 탁월한 묘사가 지켜보는 독자의 숨통마저 조인다.


이 작품에서 이성의 함정에 빠지는 주요 인물이 또 있다. 로쟈의 동생 두냐를 유혹하려는 호색한 스비드리가일로프다. 쾌락주의와 회의주의에 빠져 있는 그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세와, 그런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가지고 이성적인 태도로 로쟈에게 접근한다. 같은 이성주의 자라서일까, 로쟈는 자신의 동생 두냐를 노리는 두 남자 중 루쥔은 대놓고 경멸하며 쫓아냈지만 스비드리가일로프에게는 자못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비록 자신을 위협하고 동생을 유혹하려는 적대적인 위치에 있는 인물이지만 그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가 로쟈로 하여금 동질감과 호기심을 이끌어 내는 듯하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목적이 천박할지언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태도만큼은 로쟈가 주장한 ‘비범인’이 갖추어야 할 모습이다. 그는 자신의 하인을 학대해 죽게 만들었고, 어린 소녀를 성추행해 자살하게 만들었으며, 자신에게 헌신했던 아내를 (정황상) 독살했다. 그럼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듯 받아들인다. 이런 모습은 살인 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로쟈와 대비된다. 실제로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로쟈의 안티테제로, 둘의 관계는 마치 『햄릿』의 햄릿과 포틴브라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토록 이성적이었던 스비드리가일로프도 결국에는 이성의 함정에 빠져 한순간에 무너짐으로써 그저 추악한 범죄자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화려한 언변과 계략으로 두냐를 속여 그의 방에 단 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지만, 두냐는 총을 쏘기까지 하면서 그를 완강히 거절한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신도 모르게 진심으로 두냐를 사랑하고 있었고, 두냐 역시 자신에게 조금이나마 마음이 있을 거라 여겼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결국 두냐의 마음을 돌릴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그토록 자신하던 이성을 잃어버리고 정신 나간 상태로 방황하다 권총으로 자살한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이성이 무너지는 장면은 로쟈의 운명과 대비된다. 로쟈 역시 끝내 자살을 생각하지만, 소냐의 존재가 그를 붙잡는다. 만약 로쟈가 소냐의 아버지 마르벨라도프를 우연히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소냐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최후는 스비드리가일로프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소냐는 로쟈가 그토록 맹신하던 이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사정이 어려운 가정을 구하고자 창녀가 되었고, 그런 그녀가 가져다주는 돈을 술로 탕진하는 아버지와, 그녀를 구박하고 그녀가 창녀가 되도록 부추긴 계모에게까지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러한 삶을 저주하거나 한탄하지 않고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희생하며 살아갈 뿐이다. 소냐의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은 합리성과 논리를 따지는 이성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로쟈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이끌린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믿음과 사랑, 그로부터 나오는 연민과 희생이 로쟈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될 것임을 무의식 중에 느꼈던 게 아닐까. 로쟈가 살인 사실을 고백한 뒤에도 소냐는 그에게 거리낌 없이 손을 내민다. 심지어 그에게 살해된 피살자 중 한 명인 노파의 동생이 소냐의 친구였음에도. 이러한 소냐의 모습은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도스토옙스키는 이후에도 자신의 작품들에 예수를 다양한 형태로 등장시키며, 소냐가 그 시작이자 가장 기본적인 예수의 형태다.


로쟈는 그런 소냐에게 이끌려 자살을 포기하고 자수하지만 회개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자신이 ‘비범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허무를 느낀다. 그의 자수는 그저 범죄와 수사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성,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피폐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에 불과했다. 소냐는 시베리아 유배지까지 로쟈를 따라가, 곤조를 부리는 그를 살뜰히 챙긴다. 그런 소냐에게 점차 감화되어 가던 로쟈는 갑자기 며칠째 나타나지 않는 소냐를 걱정하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다. 그제야 로쟈는 소냐가 보여준 희생과 사랑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그의 갱생을 암시하며 작품은 막을 내린다. 결국 로쟈를 구원한 것은 거창한 이론도, 합리적인 이성도, 빈틈없는 논리도 아닌,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희생과 사랑이었다. 사랑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정의를 내리기 어렵고, 주체에 따라, 대상에 따라, 상황에 따라 해석이 무수한 만큼 이성과는 거리가 먼 개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다. 심지어 살인죄를 저지른 범죄자일지라도.


도스토옙스키가 활동하던 당시,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전으로 기존의 종교적, 전통적 가치는 힘을 잃고 합리주의와 실용주의가 급부상하고 있었다.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점차 삭막해져 가는 세상에서 그는 과거의 가치를 되살리려 했다. 이성과 합리는 오늘날 더욱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 하지만 도덕 없는 이성이 어떤 폐해를 낳는지는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준 바 있다. 잘못된 명제를 가지고 있을 경우 이성은 독이 된다. 게다가 인간은 태생적으로 완벽하게 이성적이지도 못하다. 그 두 가지 결점을 라스꼴리니코프가 여실히 보여줬다. 이에 대한 보완재이자 궁극의 해법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종교를 기반으로 한 사랑과 구원을 제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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