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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Sep 15. 2024

12년 차 직장인, (완전)퇴사를 선택하다.

06. 흑백이 되어버린 혼자만의 일상

코로나가 익숙해진 일상

해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 한국의 코로나 대응 정책은 더 강화되었고, 해외 출입국을 위해서는 자가격리를 비롯해 코로나 백신 접종, PCR테스트 등 해야하는 여러 절차들도 생겼다. 차라리 코로나를 처음 만났던 2020년 상반기가 해외를 드나들기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남편이 있는 나라는 외국인의 입국을 아예 제한했다. 거주권이 있는 체류 외국인들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입국' 제도가 있었지만 정기적인 것도 아니었고, 갑자기 모든 휴가를 써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코로나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나는 애써 그 감정을 회피하려 했던 것 같다. 남편도 그 상황에 점점 익숙해졌고 나도 혼자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표면적으로는 시니어로 성장했다

다행인 건지 일은 재미있었다. 경력도 10년을 넘어서고 있었고, 내게 주어진 업무와 책임이 싫지 않았다.

일에도 경험과 요령이 생기니 갑작스럽게 어떤 프로젝트의 PM을 맡더라도 준비와 실행을 허둥대지 않게 할 수 있었으며, 나보다 이 분야에 도가 튼 팀장님 덕분에 이것저것 간접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인턴부터 대리급의 후배까지 함께 팀원으로 일하면서 실제 관리자는 아니지만 중간 역할을 해보기도 했다. 요즘 이력서를 작성할 때 이 시기에 경험했던 것들이 서류합격과 면접의 기회를 주는 것 같아 허투루 보낸 시간은 아니지 싶다.


이 시기에 대학원 공부를 잠깐 고민했었는데, 4학기의 전체의 학비를 듣고 나니 분양받은 아파트의 중도금과 잔금이 아른거렸다. 현실과 타협하며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은 것도 참 아쉬운 결정이었다. 만약 이때 업무 관련 석사를 밟았으면 스펙, 인맥 등이 더해져 2024년의 내게 큰 힘이 되어줬을 텐데 말이다. 역시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이다. 미미한 나비의 날갯짓이라도 해볼걸!


육아와 생계에 치이는 누군가는 기혼자인데 온전히 나만의 일과 휴식의 시간을 갖는 나를 부러워했고, 미혼의 동료들은 결혼도 일도 잘하고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내 속은 하루하루 타들어 가고 있었는데..


혼자 해 내야 하는 일들

솔로 아닌 솔로인 나는 신혼집의 전세 계약자이자 세대주였고, 분양받은 아파트의 공동소유주* 이기도 했다. 이 말은 세금, 은행, 계약관리 등 다양한 잡무들도 다 처리해야 함을 의미한다. 혼자 지내며 가장 큰 이벤트는 아무래도 이사와 입주였다. 둘 다 처음 해보는 '어른'의 일이었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께서 하셨던 일들을 나 혼자 처리해야 한다니 새삼 남편의 빈자리가 컸다. 상의는 할 수 있었지만 모든 준비와 실행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분양을 받고 초기에 남편에게 지분의 50프로를 넘겨 공동명의가 되었다. 미래를 알았다면 절!대!해줬 텐데


분양받은 아파트가 다 지어졌다. 나는 바로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3년간 아파트가 올라가는 과정을 보며 내 집마련의 꿈을 이룬 것을 실시간으로 (혼자) 기뻐했었다. 입주 시기가 다가오며 분양사에서 사전점검 안내를 하는 '내 집 방문의 날' 초대장을 보내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했는데 갔다 오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부의 인생에 한 페이지를 채웠을 사전점검을 혼자 하는 것도 서러웠고, 남들처럼 신나고 벅차게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없었던 것도 슬펐다. 동영상으로 집을 찍어 남편에게 보내줬지만 그저 집이 생겼다는 것을 기뻐할 뿐, 혼자서 감내해야 하는 나의 공허함과 슬픈 감정을 공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입주기간이 정해졌고, 기한 내에 들어가려니 신혼집의 전세 계약보다 1년 일찍 퇴거를 해야 했다. 당연히 세입자를 구하는 것도 내 몫이었다. 감사하게도 신혼집의 집주인은 내가 그 집에서 지내는 내내 연락을 하거나, 전세금을 올리거나 하지도 않았고 큰 사건 사고 없이 잘 살았다. 이제 세입자만 잘 구해주고 나오면 되는데, 갑자기 집주인이 바뀌었다. 한참 '벼락거지'가 사회 신조어로 등장하며 영끌로 자가를 마련하는 게 사회현상이던 시기였다.  새 집주인은 전세가 아닌 월세로 세입자를 구해달라고 요청했고, 그 동네에 월세 매물은 많지 않아서 이러다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입주가 늦어지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그날로 동네에 있는 10군데의 부동산을 방문해 월세 매물을 내놓았다.


걱정과 다르게 얼마 지나지 않아 월세로 살 세입자를 구했고, 이제 이사준비만 남았다. 신혼집에 있던 남편과 나의 해묵은 짐들을 정리하고 버리느라 꼬박 이주일이 걸렸고, 동시에 이사업체들의 견적을 받아 계약도 진행했다. 이제 중도금 상환과 잔금대출의 은행업무만 남았다.


공동명의자인 남편이 해외에 체류 중이었기에 생각 이상으로 골치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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