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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가 아니라 딱시라고요?

필리핀 세부 한달살기

by 눈 설


— 필리핀에서 영어를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나를 테스트 해보고 싶었다.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내가 얼마나 실제로 잘 말할 수 있을까? 영어권 여행은 처음이기도 해서, 영어로 대화하는 연습을 해보지 않았지만 내 안에 잠재되어있는 10년 이상 배운영어가 튀어나와 주기를 기대했다.


숙소에서 주변에 있는 mall 을 가려면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했는데, 그랩이 잘 안잡혀서 길가에 지나다니는 흰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다가 손을 번쩍 들고 외쳤다.


“Taxi please!”


그런데 택시는 지나가기만 하고 멈추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택시! 택시!”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옆에 있던 현지 가드가 내게 웃으며 말했다.


“딱시? ”


“네? 뭐라고요?”


그는 다시 한번 또렷하게 말했다.

“딱시”


반신반의하며 “딱시!” 하고 외쳐보았다.

가드는 어딘가에 전화를 걸거니 딱시를 불렀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영어를 문법적으로, 시험용으로만 배워왔던 것 같다.

발음은 “미국식” 아니면 “영국식” 정도로만 생각했고, 그 외의 억양이나 표현은 ‘틀린 영어’처럼 여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만난 영어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내가 배운 영어가 전부는 아니구나, 영어를 배웠다고 해도 의사소통이 안되면 그게 무슨소용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영어는 표준화된 교과서 속 영어일 뿐, 현실 속 영어는 그 나라의 문화, 억양, 일상 말투가 섞여 있는 생생한 언어다.

말이 통한다는 건 그 나라의 문화와 그 나라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있고 그 방식을 습득해서 나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내 발음을 조금 바꿔본다.

‘딱시’라고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분 좋게 따라 해본다.

내가 처음듣는 듯한 단어에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인다.

나의 영어가 이곳의 삶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언어는 결국,

그 사람이 익숙한 방식으로 말해주면, 마음이 열린다. 그게 진짜 소통이 아닐까.


필리핀에서 나는 영어를 다시 배우고 있다.

시험이 아니라 소통을 위한 영어를 말이다.


번외)

그렇다면 필리핀에서 영어를 배운다면 필리핀식 영어를 배우는게 아닌가요? 라고 묻는 부모님들의 우려가 들린다.


필리핀에도 미국식 발음으로 공부를 하고,

영어를 전공한 선생님들은 원어민처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으니 어느정도 감안하기는 해야되겠다^^

그걸 감수하고도 얻을 수 있는게 많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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