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꼭 행복해야해.
우리는 오래도록 전화기를 붙잡고
끊지도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울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잊었노라 스스로 다짐했던 목소리에 무너졌다.
원망과 그리움, 이미 너무 많이 흘러버린 시간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번호를 누르기 전에 수많은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또 예상했지만
그에게 할 말은 없었다.
그냥.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였다.
잘 지내냐고 묻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잘 지낸다 하지 않았다.
충분히 힘들었기 때문에.
서로가 다시 어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래도록 전화를 끊지 못하였다.
전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그는 이제 막 만나기 시작한 새로운 인연이 있음을 나에게 고백했다.
그러냐고, 잘 만나라고 말했다.
왜 이제야 나에게 전화를 걸었냐 되묻는 그 물음에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 그 근처에서 맴돌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매일 너에게 가고 싶었다. 네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매달리고 싶었다.
너는 내게 그런 기회도 주지 않고 그렇게 가버렸잖아.
나 일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너에게 내 마음을 고백해본다.
오늘 하루만 아낌없이 내 미련을 다 말하고 매달려보고 싶었어.
살고 싶었다.
매일 보고 싶으면 달려와 잘못을 빌고, 눈물을 흘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던 그 수많은 날,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그저 참아냈다.
그래서 나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울부짖으며 말했다.
우린,
어쩌면 꽤 오래,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다.
한순간의 실수와 말로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고,
소중했던 지난날을 억지로 잊어야 하는 괴로운 순간들이 계속 온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 아직까지 잊지 못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또한 그만큼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린 서로에게 거울이었다.
상대방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 모든 잘못들이 보이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아파해야 하는 그런 슬픈 거울이었다.
5년이 넘는 시간은 우리에게, 서로에게 무거운 무언가를 남겼다.
문득 그 무게에 정신 차릴 수 없는 순간이 그 후로도 계속 왔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관계에 변화란 없었다.
기약 없는 만남을 약속했을 뿐.
내 청춘의 긴 장마 같았던 너를 이제야 보낸다.
우산도 아니 쓰고 흠뻑 젖어,
따뜻한 태양이 나를 비추어준다하여도 스스로 마르지 않았던 나는
이제 볕으로 나가고 싶다.
너라는 장마를 만나 뜨겁고 습했던 이 긴 여름 걸린
지독한 감기가 이제 끝나길 바란다.
그렇지만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또다시 여름이 오고 비가 내리듯,
어느 순간 내 마음에 그렇게 문득
또다시 네가 내릴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면 나는 또 너라는 비를 흠뻑 맞고
한동한 아파할 것임을 안다.
나도 너에게 그런 장마이기를.